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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모든 역할 다할 것" 유승민 IOC 선수위원

요즘 이 사람만큼 바쁜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 최고의 탁구선수(2004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단체전 동메달,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단체전 은메달 수상)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탁구 코치로, 이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자리매김한 유승민(34) 선수위원 얘기다. 분초 단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유위원과 어렵사리 인터뷰를 잡았다.

"지난주 전국체전(10월 7~13일)으로 충남 도내 경기장 곳곳을 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관계자분들께 인사도 드리고 임원진을 만나 종목마다의 고충도 들어보는 등의 시간을 보냈죠. 그동안 탁구만 했지 다른 종목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스무 개 가까이 되는 종목들을 돌아보면서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유승민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유승민 IOC 선수위원(왼쪽 세 번째)이 꽃다 발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여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유 위원은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입후보자 23명 중 2위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4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그는 펜싱의 브리타 하이데만(독일), 수영의 주르터 다니엘(헝가리), 육상의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와 함께 선수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선수위원이 된 지 두 달 가까이 됐어요. 가장 큰변화라면 제 옆에 탁구 라켓이 있고 없고의 차이랄까요. 그 전까지는 (삼성생명 탁구단 여자 탁구팀) 코치로 활동하느라 항상 탁구 라켓을 들고 다녔는데, 지금은 각종 서류나 회의자료, 명함이 그 자리를 차지했어요."

유 위원의 선수위원 당선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선출돼 임기가 만료된 태권도 문대성 위원에 이어 두 번째다. 현재 한국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IOC 위원이지만 활동을 할 수 없어 사실상 유 위원이 유일하다. 그는 당선과 함께 "지난 25년간 코트에서나를 위해 뛰었다면 지금부터는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문대성 이은 우리나라 두 번째 IOC 선수위원
인지도 낮았지만 친화력과 진심 담은 비전으로 당선

"전임 선배들의 뒤를 잘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다가오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IOC와의 관계에서 작지만 기여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많이 부족하지만 빨리 배우고 파악해서 평창올림픽의 성공 개최, 국내 체육 발전, IOC가 추구하는올림픽 무브먼트(올림픽 정신을 넓히자는 운동) 등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유 위원이 IOC 선수위원을 처음 꿈꾸기 시작한 건 2008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올림픽 ‘메달 동기’인 태권도 문대성 선수의 행보가 계기가 됐다.

 

유승민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 탁구 남자 단체 예선전을 펼치고 있는 유승민 전 국가대표. ⓒ동아DB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함께 금메달을딴 문대성 전 위원과 친한 사이였어요. 그래서 그분이 2008년 IOC 선수위원에 도전한다는 걸 알게 됐고, 당선 후 활동하는 모습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죠. 선수들은 현업에서 뛰는 시기가 끝나면 지도자, 코치, 감독 등으로 굉장히 한정된 길을 걷게 되는데, IOC 선수위원이라는 새로운 길과 함께 우리나라의 스포츠 발전에도 기여할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직전 올림픽에 출전해야 선수위원 출마 자격이 있기 때문에) 2012년 런던올림픽에 도전하게 됐죠."

특히 선수위원으로 출마하고 당선되려면 유창한 영어 실력이 관건인데, 유 위원은 이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또한 유승민이 누구인지 알리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진심을 내비친 것이 결정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운동선수 은퇴 후 삶의 모범 사례로 남고파
지방 소도시 ‘평창’의 저력 확신

"주변에서는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당선되기 힘들다는 평가들을 하셨어요. 그걸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제 강점인 체력과 친화력을 활용하기로 했죠. 직접 발로 뛰며 선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요. 꾸준히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진심이 담긴 행동을 보이면 마음이 바뀔 거라고 확신했거든요. ‘내가 왜 너를 뽑아야 하지?’라고 묻는 선수들에게는 제가 가진 비전을 설명하며 열정을 보여줬어요." 그런 진심이 통했던 걸까. 열세라는 언론의 예상과 달리 유위원은 당당히 2위로 당선됐다.

"한 아프리카 선수가 오더니 ‘네가 인사하는걸 여러 번 지켜봤는데 정말 열심히 하더라. 너한테 감동받았고 그래서 너를 추천했다. 너같은 선수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하더군요. 정말 뿌듯했어요. 진심은 통한다는 걸알았죠."

이제 자신의 커리어에 ‘IOC 선수위원’이라는 직함을 하나 더 추가한 유 위원. 그는 자신의 행보가 다른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삶에 대해 고민합니다. 외국 선수들도 마찬가지고요. 선수들이 제2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데 제가 앞장서서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어요. 이 밖에 선수들의 복지 개선에 힘쓰고 싶습니다." 임기 중 맞는 첫 국제대회인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그가 수행할 역할에 대한 기대도 크다.

 

유승민

▶선수들이 만족하고 돌아갈 수 있는 평창동계올림픽을 만들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 이겠다는 유승민 I OC 선수위원. ⓒ지호영 기자

 

"전 세계의 눈이 평창에 쏠려 있어요. 작은 도시에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지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지방 소도시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지만 충분히 멋있게 치를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민들의 성원을 믿기 때문이죠. 선수위원으로서는 선수들이 중심이 되고, 선수들이와서 만족하는 대회가 되면 그게 가장 성공한 올림픽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수들이 불편함 없이 만족하고돌아갈 수 있는 평창올림픽을 만들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아직은 ‘수습사원’ 단계라 구체적인 역할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유 위원은 오는 11월 4일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에서 첫 위원회 실무 모임을 갖는다. 올해가 지나면 IOC와 평창 간 가교로서 유 위원의 구체적인 행보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88서울올림픽을 보면서 꿈을 키워온 세대예요. 그 작은 소년이 이제는 평창올림픽을 만들어나가는 IOC 선수위원이 됐죠. 88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열리는 평창올림픽에서도 어린 시절의 저처럼 또 다른 누군가가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1%라도 있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이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신설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올림픽에 참가한 각국 선수들의 직접 투표로 뽑는다. 투표 시점에 열리는 올림픽이나 4년 전 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 메달리스트만 출마 자격이 있다. 전체 선수위원 수는 15명으로 하계올림픽 종목 출신이 8명, 동계올림픽 종목 출신이 4명이다. 나머지 3명은 IOC 위원장이 국가, 종목, 성별 균형을 고려해 지명한다.

IOC가 선수위원 제도를 도입한 것은 선수 출신 위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고, 이들을 올림픽 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다. 선수위원들은 주로 선수 교육, 도핑 방지와 클린 스포츠 홍보 활동을 한다. 그 밖의 업무와 대우는 다른 IOC 위원과 같다. 올림픽 개최지와 올림픽 종목 결정, 올림픽 발전제도 의결 과정 등 IOC의 모든 사안과 의제 결정 과정에 투표권을 행사한다. 이번 리우올림픽 때 선출된 유승민 선수위원은 당장 내년에 열리는 2024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1표를 행사할 수 있다.

 

글· 김가영(위클리 공감 기자)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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