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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해설위원으로 변신 ‘그라운드의 악동’ 이천수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선수’라는 단어 외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방송인’은 그의 강한 개성을 드러내기에 부족해 보이고 ‘해설위원’이라 하자니 너무 무겁다. 그냥 이름만 부르기로 했는데 불쑥불쑥 ‘선수’란 말이 튀어나왔다. 여전히 푸른 잔디 위에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는 ‘그라운드의 악동’이라 불렸던 사나이, 이천수(35)다.

사진기자의 익살스러운 포즈 요청에 더 과장된 몸짓으로 웃음을 자아내던 악동은 인터뷰를 시작하자 낯빛을 바꿨다. 마치 TV 중계를 할 때처럼. 재미있는 축구 해설을 기대했던 팬들은 그의 사뭇 진지한 모습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모험을 걸 필요는 없다. 해설은 재미보다는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우선이다"라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지난해 11월 선수생활을 끝낸 이천수는 올 9월부터 1년간 진행되는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 예선의 해설자로 변신했다. 지난 9월 1일 중국전과 6일 시리아전 해설을 진행했고 남은 여덟 경기도 모두 소화한다. 그라운드의 악동이 양복을 입고 마이크를 잡은 모습은 어색하지만 그의 해설은 먼저 데뷔한 선수 출신 해설위원들에 뒤지지 않는다. 해설 철학도 뚜렷하다.

 

이천수

▶그라운드의 악동 이천수가 방송인으로 돌아왔다. 카메라 앞에서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지도자로서의 꿈을 말할 땐 낯빛을 바꿨다. ⓒ홍중식 기자

 

"올 3월부터 전국을 다니며 매주 두 경기씩 K리그를 중계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처음엔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말로 쏟아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인터넷으로 중계 영상을 검색해 독학으로 공부했다. 하다 보니 목표도 생겼다. 축구 경기 해설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 가령 선수 때 나는 밀집수비를 어떻게 뚫었는지를 관전자가 아닌 경기자의 입장에서 입체적으로 해설할 수 있다. 난 해외 축구뿐만 아니라 K리그 경험도 많다. 해설을 하고 있는 (이)영표 형이나 (안)정환이 형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결국 K리그가 발전해야 한국 축구가 발전한다. 해설을 통해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매주 K리그 2경기씩 중계하며 초석 다져
"월드컵 예선 관건은 수비축구 이기는 전략"

이천수는 시종일관 "한국 축구는 아시아 최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에 대해서는 ‘기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음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에 대해선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축구 대표팀은 9월 예선전에서 힘겨운 경기를 치렀다. 중국전에선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하며 세 골을 먼저 넣고도 어이없이 두 골을 내줘 아쉬움을 남겼다. A조 최약체로 평가받는 시리아와는 0-0으로 비기는 데 그쳤다. 조 1, 2위만이 본선에 진출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조 3위. 벌써부터 언론에서는 ‘슈틸리케호’의 위기설이 나온다. 그러나 이천수는 우려를 일축하며 선수 기용 등에서 문제점을 지적받은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중국과는 골을 넣는 과정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다. 시리아는 ‘떡잔디’ 문제가 워낙 심각했다. 실수들은 보완하면 된다. 국가대표 선수 정도 되면 경기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본인 스스로가 너무 잘 안다. 중국전에서 선수들에게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해주며 부담을 덜어주는 데 집중한 슈틸리케 감독의 모습은 훌륭했다. 하지만 그간 약체팀을 상대로 높은 승률을 쌓아온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월드컵 전까지 강팀과 많이 맞붙어 실패 경험을 쌓을 필요도 있다. 또 해외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K리그 선수들을 더 많이 기용해야 한다."

 

이천수

▶그는 연령 제한이 있는 올림픽에 두 번이나 출전했고,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모두 골을 넣은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다. 2006 독일월드컵 첫 경기 토고전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넣는 장면.

 

한국은 올해 10월 6일 카타르(홈), 11일 이란(원정), 11월5일 우즈베키스탄(홈)과 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이천수는 중동의 ‘침대축구’, 약체 국가들의 ‘선수비 후역습’ 위주의 전략에 대해 철저히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그가 해놓은 해법은 ‘단순하게 하라’는 것.

"최종 예선 열 경기 모두 중국전과 같은 경기를 치르게 될 거다. 원정 경기에선 처음부터 패스로 만들어나가는 플레이보다는 공을 멀리 보낸 뒤 리바운드하는 등 단순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두 명의 선수는 역습을 대비해 수비로 더 내리고 신체조건이 좋은 원톱 공격수를 세워 장거리 킥으로 툭툭 공격하면 된다. 세계 최강의 영국 축구가 바로 이런 ‘킥 앤 러시’ 전략을 구사한다. 아름다운 축구보다 일단 승점 3점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악동도 떨게 한 ‘복면가왕’과 육아예능
"최종 꿈은 지도자로 그라운드 돌아가는 것"

한편 최근 예능 방송에서 보인 그의 활약은 이미 선수 시절부터 검증된 스타성 덕분에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MBC ‘복면가왕’에서 가면을 벗고 드러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깜놀’이었다. 은퇴한 지 5일 만에 나선 방송이었다. 방송인으로 본격 시작을 알린 그에게 개그맨 김구라는 "웰컴 투 정글"이라며 환영했다. 당시 너무 떨렸다고 말하는 그에게 "이천수도 무서운 게 있냐"고 물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한 지 3개월까지는 계속 떨렸다. 가장 어려운 건 ‘육아예능’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천수는 아내, 딸 주은과 함께 SBS ‘오! 마이 베이비’에도 출연했다. 공포의 대상은 방송이 아니라 아는 게 없어 무서울 게 없는 네 살배기 딸이었다는 후문.

앞으로는 하고 싶은 방송은 축구를 주제로 한 것. 그는 지난 2016 리우올림픽 때 브라질에 머물며 10개 종목의 태극전사를 응원하는 영상을 제작해 조회수 1건당 1원을 백혈병·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슛 포 러브’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그와 그의 16년지기 매니저의 팔에는 캠페인을 상징하는 팔찌가 야무지게 매어 있었다.

 

이천수

▶그는 연령 제한이 있는 올림픽에 두 번이나 출전했고,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모두 골을 넣은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다. 2006 독일월드컵 첫 경기 토고전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넣는 장면.

 

이제 ‘악동’이란 별명은 거둘 때가 됐을까. 스타의 영광과 악동의 그림자가 모두 스쳐간 그의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은 이제 누군가의 삶의 이정표가 될지도 모른다. 10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대학생 멘토로 임명될 예정인 그가 젊은이들 앞에 선다. 그는 "경험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건 없다. 선수 시절 내가 어떤 위기를 겪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는지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 이틀을 제외하곤 방송 스케줄로 일주일이 빽빽하다. 그래도 최종 목표는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가는 것. 축구지도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늘 놓지 않고 있다는 그는 한국 축구를 지키는 ‘그라운드의 파수꾼’이었다.

"평생 해온 게 축구다. 선수시절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축구 실력으로 욕을 먹은 적은 없다. 사람들은 축구장에 있을 때 내가 제일 멋있다고 한다. 방송을 하면서 꾸준히 지도자 자격증도 따고 있다. 나는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K리그가 흥행할 수 있는 화끈한 경기를 선보이는 감독이 되고 싶다."

 

글· 조영실(위클리 공감 기자)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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