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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희망, 장형철 오디너리 피플 대표

디자이너의 쇼룸 안. 패션은 계절을 앞서가고 있었다. 양탄자 카펫 문양이 새겨진 두툼한 코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무늬가 인상적이었다. 빨간색 원단에 소매 부분을 감색으로 마감하고 금색 줄로 포인트를 준 재킷은 멋스러웠다. 이 옷을 디자인한 장형철(32) 오디너리 피플 대표는 "코트는 호텔 입구에 깔린 레드카펫에서, 재킷은 벨보이의 복장에서 따왔다"며 "평상복이지만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호텔을 콘셉트로 삼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의 옷에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숨어 있다. 그는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군복에서 영감을 받아 슬림한 카키색 치노팬츠를 디자인했고, 매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을 오가며 본 은행나무에서 힌트를 얻어 은행잎 무늬가 새겨진 코트를 만들었다.

"‘평범한 사람이 입는 평범하지 않은 브랜드’라는 뜻을 담아 사명과 브랜드명을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이라고 지었어요. 이 옷을 입으면 평범한 사람도 멋있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거든요. 일상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에 독특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실제로 사람들로부터 ‘옷이 이름과 달리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아요."

 

 학점은행제로 패션을 공부한 후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 장형철 오디너리 피플 대표는 “실력을 쌓으면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온다”고 말했다

▶ 학점은행제로 패션을 공부한 후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 장형철 오디너리 피플 대표는 “실력을 쌓으면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온다”고 말했다.

 

군대에서 잡지 본 후 패션에 푹 빠져
학점은행제로 패션디자인 공부 시작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장 대표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트렌디한 패션의 도시 뉴욕에서 유학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그는 명문대 출신도, 유학파도 아니다.

학점은행제로 패션을 공부하고,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군대에서 패션을 접했다. 따분함을 달래려고 패션 잡지를 펼쳤는데 색감, 원단, 디자인, 부자재 등 다양한 요소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패션에 푹 빠진 장 대표는 제대하자마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패션전문학교(학점은행제) 3학년으로 편입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시작한 패션 공부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디자인을 할 줄도, 수선을 할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는데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장 대표는 신사동의 패턴 강습소와 학교를 오가며 디자인 실력을 키웠다. 틈틈이 패션 잡지를 보고, 패션쇼를 찾아다니며 트렌드를 읽는 눈을 키웠다. 이런 그의 끈기를 주목한 이가 있었다. 27세 최연소의 나이로 서울패션위크에 데뷔한 고태용 디자이너였다. 그 역시 학창 시절 미술을 배운 적도 없었고, 유학파 출신도 아니었다. 장 대표의 잠재력을 알아본 고 디자이너는 ‘비욘드 클로젯’의 론칭을 도와달라고 제안했다.

2008년 장 대표는 고 디자이너의 스태프가 됐다. 훈련은 혹독했다. 심부름과 청소, 잡무는 물론 원단과 부자재를 구하려고 동대문시장을 날마다 헤집고 다녔다. 공장 섭외도 그의 몫이었다. 대부분의 공장은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의 주문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디자인이 까다로운 데다 주문량이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공장으로 달려갔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공장장이 열혈 청년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4년간 패션의 A부터 Z까지 모든 과정을 거친 장 대표는 어느새 프로가 돼 있었다. 일이 손에 익을 때쯤, 그의 몸이 이상 반응을 보였다. 불규칙하고 고된 생활로 허리디스크에 걸린 거였다. 옷을 디자인하기는커녕 몸져누울 판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주저앉지 않았다. 몸을 회복하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독립 브랜드를 론칭하는 일, 바로 ‘창업’이었다.

2011년 오디너리 피플을 선보인 장 대표는 중저가 전략을 구사했다. 평범한 사람이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도록 셔츠 5만 원대, 바지 8만 원대로 가격을 대폭 낮췄다. 디자인이 독특하고 가격이 저렴한 오디너리 피플에 대한 고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브랜드 론칭 1개월 만에 15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잠깐 흥행하고 만 것도 아니었다. 꾸준히 성장세를 기록한 오디너리 피플의 지난해 매출은 첫해의 20여 배에 달했다. 세컨드 브랜드로 론칭한 ‘라뮤리나’는 홈쇼핑 시장에 선보였다. 새로운 판로를 개척한 이 브랜드는 지난해 약 300억 원의 판매고를 올리며 큰 성공을 거뒀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브랜드 표방
뉴욕 패션위크 진출… 한류 패션 선두주자로 우뚝

시장의 검증을 받은 장 대표는 디자이너로서도 인정받았다. 2013년 ‘서울패션위크’에서 신진 디자이너로 뽑힌 것이다. 그는 이 무대에서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젊고 어린 모델을 내세울 때 중?장년 모델을 기용해 관객들의 눈을 확실하게 사로잡은 것이다.

장 대표는 오디너리 피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기 위해 글로벌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5년 1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패션축제 ‘피티 우오모(Pitti Uomo)’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실용적이면서 색다른 디자인으로 패션 에디터들의 눈도장을 받은 장 대표는 그해 7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글로벌 프로젝트 ‘컨셉 코리아’의 일원으로 뽑혀 뉴욕 패션위크에 진출했다. 그가 한류 패션의 선두주자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저는 디자이너이기 전에 회사의 대표이기 때문에 패션쇼를 준비할 때는 모든 것을 다 챙겨야 합니다. 특히 해외 패션쇼에 나갈 땐 통역부터 현지 모델, 스태프 확보까지 신경 쓸 게 많은데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적극 도와준 덕분에 패션쇼를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었어요. 오디너리 피플이 세계 패션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준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 대표의 스토리는 단순히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점은행제로 공부하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그의 이력이 ‘헬조선’, ‘금수저’라는 단어로 패배감을 표현하는 청년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스펙에 울고 웃는 세상의 낡은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브랜드로 세상을 감동시켰음에도 장 대표는 거창하고 화려한 목표를 내세우지 않는다. "매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꿈은 원대하다. 오디너리 피플을 평범한 사람도 멋있게 만드는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다. 평범한 브랜드의 이유 있는 도전, 그의 스토리는 지금부터다.

 

장형철 오디너리 피플 대표의 창업 팁

창업하기 전 회사에서 철저하게 훈련받아라
사소한 업무라도 경험해두면 훗날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창업은 플레이어에서 경영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본업뿐만 아니라 상표 등록, 세금, 계약, 고용 등 잡무에도 능숙해야 한다.

기회를 놓친 이유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서다
스펙이나 환경을 탓하지 마라. 실력을 쌓으면 기회는 다시 온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들어도 흥이 난다
스트레스 받으며 꾸역꾸역 일하고 있다면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 김건희 (자유기고가) / 사진 · 지호영 기자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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