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도로 곳곳에 놓여 있는 주황색 시설물이 있다. 중앙선 침범 방지, 불법 유턴 및 주정차 방지를 위해 설치된 시선유도봉이다. 도로에서 멀쩡한 시선유도봉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대부분 차량이 밟고 가서 부러지거나 아예 뽑혀서 도로에 나뒹굴고 있다. 그런데 외부 충격에도 쉽게 파손되지 않는 시선유도봉을 개발한 사람이 있어 화제다.

학창시절 ‘문학 소년’이라 불리던 남학생이 있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해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친구들이 영어 서적을 들고 다닐 때 그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옆에 끼고 캠퍼스를 누볐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입사해 편집기자가 된 그는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30대를 보냈다. 그런 그가 40대 중반이 되자 회사에 돌연 사표를 던지고 창업을 했다. 한국형 ‘시선유도봉’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는 이상표(48) 마음코퍼레이션 대표 얘기다.
신문기자에서 아이디어 사업가로
경기 의왕시 인덕원IT밸리 사무실에서 이상표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주황색 시선유도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벽면에 걸린 칠판에는 시선유도봉 도면과 각종 아이디어들이 그려져 있었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은 온통 도로안전시설물로 가득했다. 기자였던 이 대표가 시선유도봉을 개발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2010년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 한 대형병원 홍보팀에 스카우트됐다. 기자와는 다른 업무를 하며 슬슬 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 마침 병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제하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 대표는 매일 출근길에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앞 도로를 지나다가 파손된 시선유도봉을 보게 됐다. 부러져서 도로에 나뒹구는 시선유도봉은 오히려 도로의 안전을 해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도로안전을 위해 설치된 시선유도봉이 오히려 운전자를 위협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었어요. ‘파손되지 않는 시선유도봉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바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표는 사업 아이템 회의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신 있게 선보였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병원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그렇게 이 대표의 아이디어는 병원 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갔다. 그런데 그가 몽골에 출장 갔을 때 들은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출장 때 만난 몽골 관계자가 저한테 몽골 남자들은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 대부분 자기 사업을 한다고 하더라”며 “그 말을 듣고 자극받아 본격적으로 창업을 마음먹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그는 병원에 사표를 내고 창업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형광등밖에 갈 줄 몰랐던 전형적인 문과생인 그가 아이디어를 기술로 구체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관련 도서를 찾아 공부했다. 기존에 널리 보급된 시선유도봉을 구해다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분석했다. 그러자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통안전시설물 개발 이어갈 것
정부에서 실시하는 각종 창업지원 정책들도 활용했다. 이 대표는 2015년 당시 창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크리에이티브 팩토리’ 지원 사업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편집기자로 지냈던 경험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작문부터 시작해 레이아웃까지 모두 수월했기 때문이다.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면접에서 최종 후보에 선정돼 출원비를 지원받았다. 이 대표는 “이때 심사위원들에게 반구형이 고체 역학상 가장 탄성구조가 크다는 조언을 받고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연달아 한국교통대학교에서 주최한 ‘마이더스 창업경진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경기도에서 실시하는 ‘소상공인 기술개발지원사업’에서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지원비까지 받게 됐다. 그의 사업진행 속도는 가속이 붙기 시작했고, 마침내 쉽게 파손되지 않는 ‘시선유도봉’이 탄생했다.
시선유도봉은 교통안전을 위해 설치되는 도로안전시설물로, 국내에서만 매년 수십만 개가 파손돼 교체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시선유도봉은 1980년대 말 일본의 도로안전봉 기술을 도입해 만든 제품들이다. 정작 일본에서는 쉽게 파손되는 문제점 때문에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 대표가 개발한 시선유도봉은 도로와 맞닿는 받침대가 반구 형태인 게 특징이다. 이 받침대 덕분에 자동차와 충돌하거나 밟혀도 충격을 바로 흡수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소재는 전부 재생 폴리우레탄 원료를 썼다. 받침대 위 몸체는 따로 분리해 수시로 교체할 수 있다. 밤에 잘 보이게 하는 반사지가 닳으면 기존엔 전체를 다 바꿔야 했지만, 이 제품은 몸체만 갈아 끼우면 된다.
가격도 개당 1만 원 초중반대로 저렴하다. 실험 결과, 파손율도 기존 제품 대비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안양, 의왕 등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 설치를 한 뒤 반응이 매우 좋다고 한다. 이 대표는 앞으로 시선유도봉뿐만 아니라 다른 교통안전시설물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전히 그의 노트는 각종 사업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다.
안주하면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인생 2모작을 시작한 그는 창업을 고민하는 중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보완해야 할 점들이 조금씩 보입니다. 자신만의 아이템이 생겼다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도전해보세요. 그 대신 계획은 꼼꼼하게 세우고 이를 장기적으로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분명 인생 2막이 열리게 될 겁니다.”
김태형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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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