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대한민국은 광복 직후 북한보다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반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이 어떻게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가 되었을까? 그중 '하면 된다'는 정신이 만들어낸 기적이 있다. 바로 새마을운동이다.
제7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의 발판으로 새마을운동의 경험을 언급하며 "새마을운동이 각국의 특수성과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글로벌 농촌 개발 전략과 국가 발전 전략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72년 대통령 비서실 초대 새마을운동 담당이었던 류태영 박사(현 농촌·청소년미래재단 이사장)를 만나 '지금 시대의 새마을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개발정상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새마을운동 도입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8·15 광복 이후의 우리 선배들은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부강한 나라로 만들 것인가 고심했습니다. 특히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공산업(工産業)을 일으켜 경제 발전의 체력을 든든히 길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국가적인 경제 개발 계획사업을 추진해 전체 국민소득을 단기간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초 농촌에 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50년 만에 한반도에 큰 가뭄이 발생한 것입니다.
공산업이야 외국 기업이 자본과 원자재를 가져다 외국 기술로 만들어내면 가동은 되지만, 농업은 말도 못 하게 낙후됐습니다. 이때 농촌 문제를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 마을의 면장과 의용소방대장 등 마을 지도자들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자발적 소득 증대사업을 벌였습니다. 이후 초가지붕, 담장, 부엌 등 개량사업이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추진됐습니다. 이것을 도지사를 통해 보고받은 박 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새마을 가꾸기 사업'인 농촌 개발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게 됐습니다."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개발도상국들이 당면한 과제는 삶의 기초, 즉 의식주입니다. 이번 유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하셨듯이 새마을운동만으로 국가가 발전하거나 경제가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Can-do Spirit)'는 정신을 넣어줬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첫째, 의식개혁 운동입니다.
가치관의 변화 운동으로서 근면·자조·협동정신으로 무장시켰습니다. 둘째, 소득증대 운동입니다. 아무리 정신이 개조되더라도 수입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셋째, 환경개선 사업입니다. 아무리 소득이 늘어도 지출을 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면 국가는 발전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민통합 운동입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 공장, 직장, 학교 등 온 국민들을 조직화하고 협력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대통령 주도 아래 제게 전권을 줘서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발(大旱魃 : 큰 가뭄)로 농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당시 청와대에서는 홍성철 정무수석(이후 통일부 장관)에게 농촌을 살릴 방법을 연구해 시행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습니다.
홍 정무수석은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마을을 비롯해 곳곳에서 새마을운동이 목표로 하는 활동상을 보고 비결이 궁금해졌고, 마을 주민들을 통해 저의 농촌 부흥 특강 이후 동네가 발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청와대로 초청했습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담당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특강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곧바로 새마을담당실을 설치하고 새마을운동의 기본정신과 추진사업을 제안하는 특강을 제게 제안했습니다. 이후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양지회(장·차관 부인들의 모임), 전국 지방장관회의 등을 통해 내로라하는 국가 지도자들에게 새마을운동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류태영 박사는 새마을운동을 통한 성공 경험을 개발도상국들과 나눠야 한다며 새마을운동 국제화를 위해 국제연수원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발도상국에서 특강하실 때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50년 전 대한민국이 가난하고 고생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즉각 관심을 갖고 제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현재이기 때문이죠.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금해합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 개발을 뛰어넘어 가난한 사람을 잘살게 하는 운동입니다."
박사님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고학으로 학업을 성취하신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농촌 발전에 대한 마음은 어떻게 키우게 되셨나요.
"열세 살 때 예배당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오래 하다 보니 제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학으로 시작해 꼬박 3년을 공부했고, 나중에 서울로 올라와 6개월 동안 거지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꿈을 꿨습니다.
그때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운명을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새벽부터 밤까지 죽어라 일해도 자식들 밥 하나 못 먹이는 이 나라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농촌부터 개혁해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1968년 초청을 받아 덴마크로 유학을 갔습니다. 제가 본 덴마크는 천국과 다름없었습니다. 200년 전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못살았는데 어떻게 발전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배워서 우리나라 농촌 개발운동에 힘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의 세계화 의미 그리고 지금 시대의 새마을운동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우리가 먼저 경험한 것을 공유함으로써 과거 우리와 같이 못사는 나라를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세계 곳곳에서 지도자 교육 및 새마을 학교를 지원하는 등 새마을운동 관련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대만, 이스라엘 등은 국제연수원 형태로 개도국을 상대로 활발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국제연수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유엔과 합작해 '국제 새마을운동 연수원'을 만들어 개도국의 선도주자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유엔개발계획(UNDP) 후원 아래 발전이 필요한 30개국에서 2명씩 60명을 모집하고 3~4개월 과정으로 1년에 2~3번 모집해 교육하면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대한민국 홍보대사'가 됩니다. 대한민국의 위상은 저절로 올라갈 것입니다."
글·사진 · 정책브리핑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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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