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웃 나라처럼 하면 죽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남들에 비해 내놓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과 다르고 나은 것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청렴이고 효율이며 성과주의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2007년 8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초대 총리로서 싱가포르를 최빈국에서 국가경쟁력 세계 1위로 일궈냈다. 특히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으며 한 세기를 풍미했다.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콴유 전 총리는 3월 23일 91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2008년부터 건강 악화로 치료를 받아오다 2월 폐렴으로 입원한 뒤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콴유 전 총리는 1959년 영국 식민지 자치정부 총리였다가 1965년 싱가포르가 영국과 말레이시아에서 완전히 독립한 이후 초대 총리 자리에 올라 25년 동안 재임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00달러에서 1만2750달러로 30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GDP는 우리나라의 두 배인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신화는 시장경제 모델을 추진하면서도 법치와 강력한 리더십에 바탕을 둔 '아시아적 발전모델'을 강조한 리콴유 전 총리 덕분이다.
특히 그는 국민의 의식개혁을 위해 힘썼으며, 이를 위해 철저한 법치주의 전통을 수립했다. 쓰레기 무단 투기나 침 뱉기, 거리 흡연 등의 공공질서 위반 행위를 벌금 등으로 엄격하게 처벌했다. 중국인들이 명절 때 즐기는 폭죽의 수입이나 껌 판매까지 금지해 깨끗한 환경 조성에 힘썼다. 또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간과하지 않고 엄격히 다스렸다.
은행 계좌 하나 여는 데도 싱가포르에 주소지를 마련했는지 확인하고 대학교수의 해외 출장비 정산에도 엄격했다. 그 덕분에 싱가포르에서 엄청난 금융 거래가 이뤄짐에도 금융사고 한 번 나지 않고 몇 안 되는 싱가포르의 대학들은 모두 아시아 최고가 됐다.
경제를 부흥시킨 능력도 탁월하다. 리콴유 전 총리는 외국 자본 유치와 가공·중계무역 활성화 등으로 경제를 일으켰다. 공교육을 확립했고, 국민 90%가 자기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주택혁명'을 성공시켰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인 그는 평생 청렴한 삶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아왔다. 리콴유 전 총리의 아버지는 일흔이 넘도록 작은 시계 수리점을 운영했다. 리콴유 전 총리도 평생을 100년 된 낡은 집에서 생활했다. 쓰러져가는 이 집에서 노년의 리콴유는 식사와 운동, 신문 읽기와 공부로 이어지는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게다가 주변 이웃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내 집을 기념관 같은 국가적 성역으로 만들지 말고 헐라"는 유언을 남겼다.
리콴유 전 총리는 생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총리 재임 시절 네 차례나 방한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서거한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로 나섰고 만찬 때는 통역도 했다. 정상회담 후 리콴유 전 총리 부부가 박근혜 대통령을 옆방으로 불러 "목이 많이 아프겠다"며 싱가포르산 목캔디를 건넨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리콴유 전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영어 실력을 칭찬했다.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6일 전의 일이다.

▷1970년 10월 한국을 찾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청와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맨 왼쪽)은 만찬에서 통역을 맡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후 리콴유 전 총리를 두 차례 더 만났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던 2006년 방한한 리콴유 전 총리를 면담했고, 2008년엔 그의 초청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하기도 했다.

▷3월 24일 싱가포르 이스타나 대통령궁 앞 분향소에 조문객들이 남긴 추모의 글 쪽지와 꽃다발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리콴유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연은 그가 2000년에 펴낸 회고록 <일류국가의 길>에서도 이어진다. 이 회고록에서 리콴유 전 총리는 "한국의 성공을 위한 그의 강한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가 없었다면 한국은 결코 산업화를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1986년 도이모이(쇄신)에 착수한 베트남 사람들에겐 "박정희에게 배워라"라고 말할 정도였다.
리콴유 전 총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었다. 두 사람은 1994년 미국 외교 전문매체인 '포린 어페어스'를 통해 민주주의에 대해 설전을 벌인 바 있었는데, 리콴유 전 총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김 대통령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며 강해진 사람이고 더 높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 리콴유 전 총리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이들은 3대 열강인 중국, 러시아, 일본에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인 취약성을 깊이 염려하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3월 29일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거행된 리콴유 전 총리의 국장에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정상급 지도자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현직 대통령이 해외 조문을 한 것은 2000년 6월 8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이래 15년 만이다.
앞서 3월 23일 발표한 애도성명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리 전 총리는 탁월한 리더십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싱가포르를 세계 속의 금융·물류 허브이자 선진국으로 도약시켰다"고 평가했다.
글 · 두경아 (객원기자) 201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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