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영하 40도의 맹추위가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곳. 가장 가까운 문명도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로부터 약 3000km 떨어진 고립지. 우리나라의 두 번째 남극과학연구기지인 장보고기지가 자리한 땅이다.
2월 12일은 장보고기지 설립 1년이 되는 날. 1988년 세종기지가 세워진 지 26년 만의 일이었다. 남극대륙 극지 연구를 책임질 장보고기지는 주변 370km 범위 내의 유일한 상주 과학기지다. 가장 가까운 미국 맥머도기지도 장보고기지와는 약 370km 떨어져 있다. 다른 연구기지가 쉽게 들어오기 어려울 만큼 환경은 열악하다.
그 혹독한 환경에서 혹한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월동대다. 월동(越冬), 말 그대로 겨울을 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기후를 기준으로 보면 남극은 1년 내내 매서운 겨울 날씨지만 그곳에도 엄연히 여름과 겨울이 따로 존재한다. 하계대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11월부터 2월까지 남극의 여름에만 들어온다. 월동대는 하계대가 들어오기 전에 기지를 정비하고 1년 내내 상주하여 연구한다.
장보고기지에서의 첫 월동.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월동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1년 만에 우려는 안도로 바뀌었다. 장보고기지 제1차 월동연구대는 남극대륙에서의 한 해를 무사히 마치고 1월 10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월동대를 진두지휘한 진동민(51)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 그의 이름 앞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에게 처음, 최초라는 말은 설렘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남극의 기후, 자연환경이다. 장보고기지가 위치한 곳은 어떤 곳인가.
“장보고기지는 남극 로스 해 북빅토리아랜드 테라노바 만에 있다. 남극의 여름에는 한국의 초겨울 날씨 정도로 기온이 올라갈 때도 있지만,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30~40도에 달할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계속 된다.
남극 심층수가 만들어지는 이곳은 지구온난화로 염분 농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빙하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어 과학적 연구 대상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테라노바 만 지역은 데이비드 빙하, 프레슬리 빙하, 캠벨 빙하 등 다양한 육상 빙하들이 바다로 흘러들어오는 곳으로 개수역(폴리냐)이 형성되어 겨울에도 해빙이 덮이지 않는 지역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해수 순환, 기온, 수온, 바람과 지형적인 특성 등 해양과 기후를 복합적으로 연구하기에 적합하다.
주변에는 황제펭귄, 아델리펭귄, 물개, 저서생물 등이 복잡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육상의 노출지에는 극한의 환경에 적응한 이끼류와 지의류, 미생물이 자생하고 있어 생물 연구지 역할도 한다. 남극대륙 내부로 진출해 빙하, 빙저호, 운석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장보고기지를 세운 목적은 무엇인가.
“2000년대 이후 기후변화 이슈와 맞물려 극지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됐다. 더불어 한동안 주춤했던 극지에 대한 각국의 투자가 증가했다. 국제적인 연구 동향 역시 남극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연구 분야로 발전됐다. 2009년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 건조로 독자적인 보급 지원 능력을 갖춘 우리나라 역시 남극조약(남극지역을 평화 목적에만 이용하고, 과학 연구의 자유와 협력을 약속하기 위해 1959년 12개국이 체결) 체제 안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륙 기지를 건설하고 운영할 필요가 생겼다.
특히 장보고기지는 주변에 상주 기지가 없어 이곳에서 획득하는 관측 자료는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데 가치가 높다.”
장보고기지와 1km 거리의 독일 곤드와나 캠프는 3,4년에 한 번 남극의 여름에만 문을 연다. 약 10km 떨어진 이탈리아 마리오 주켈리 기지도 매해 여름에만 운영한다. 장보고기지 ‘월동’대의 역할은 무엇인가.
“남극에서의 연구는 지리적, 기후적 특성으로 인해 제약이 많다. 장보고기지 주변에 상주 과학기지가 많지 않은 이유다.
월동하는 이유는 남극연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월동대는 하계대가 들어오기 전에 기지 연구 시설을 미리 정비함으로써 하계대가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로 늘린다. 충분한 연구시간이 확보되면 하계대는 시간의 제약을 덜고 안정적으로 연구활동할 수 있다.
월동대는 1년 내내 기지에 머무른다. 월동은 겨울만 나는 게 아니라 겨울‘도’ 난다는 의미다. 매해 월동대가 관찰하고 수집한 자료 역시 남극 연구에 소중하게 쓰인다.”

▷ 한국해양과학연구원 극지연구소. 남극의 겨울, 해가 뜨지 않고 밤이 지속되는 극야에 하늘 가득 오로라가 펼쳐졌다.
장보고기지 제1차 월동대장. ‘제1차’, ‘대장’이란 부담스러운 단어의 행렬이다. 처음 월동대장 제의를 받았을 때 진동민 대장에게 부담은 없었을까. 아니, 어느 정도의 부담이었을지 묻는 게 맞겠다. 게다가 제1차 월동대는 장보고기지가 채 완공도 되지 않은 2014년 2월 6일, 그곳에 ‘떨어졌다.’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장보고기지에서의 월동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조언을 얻을 수 없고 문명세계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15명의 월동대원끼리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게다가 월동대장은 기지와 월동연구대원을 대표해 기지에서의 안정적 시설 유지 관리를 비롯한 해당 업무를 총괄하고 운영에 관한 책임을 지는 직책이다. 불안에 부담이 더해졌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우리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은 대원들 모두가 합심하면 할 수 있다는 각오로 변했다. 그 각오 하나로 1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대원들 대부분이 세종기지에서 월동을 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모두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원칙을 지켰다. 정전, 해수이송관 동파 등 월동기간 동안 몇 차례 당혹스러운 사건도 있었지만 대원들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해 기지 운영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활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연구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기상 관측, 해빙 두께 조사, 집주조를 이용한 생물 시료 채취, 남극 은어 알 채집 등의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관측 활동의 기반을 구축했다. 남극의 겨울이 오기 전에 미국, 이탈리아 등 주변 기지간 협조체제를 잘 구축해둔 것에 대해서도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남극에서의 삶은 생존과 생활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진동민 대장이 이야기하는 월동대의 일상은 연구원의 일상, 그 자체다.
그곳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돌아가는가.
“아침 7시 30분에 식사를 마치면 회의를 통해 각 분야의 업무와 대원들의 상황을 점검한다. 오전에는 기지의 주요 시설과 대원들의 근무지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극지연구소 등 필요한 국내 기관에 연락해 업무 상황을 주고받는다. 오후 업무가 끝나고 저녁식사 후에는 각자 자유롭게 활동한다. 대원들끼리 함께 운동하기도 하고 혼자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필요한 공부를 한다.
가족들과 화상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취침 전에는 통신실에 들러서 특이사항이 없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매달 한 번, 극지연구소 월간회의에 참석해 화상전화로 기지 현황을 보고한다. 필요한 사항들은 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연구소 관계자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겨울에는 월 1, 2회 설상차를 이용해 대원들과 함께 해빙 두께 조사를 하고 각 분야 현장 연구 상황을 판단하고 지원했다.”

▷ 월동대원들이 생일 맞은 대원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있다.

▷ 해양생물 연구를 위해 시료 채취에 나선 월동대원들이 결빙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바닥 얼음이 깨져 대원들이 바다에 빠지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자연은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천연 자연의 아름다움, 인간이 손으로 제어할 수 없는 자연 재해에 대한 두려움. ‘경외’라는 말은 자연을 두고 만들어진 말 아닌가. 남극은 지구상에서 자연이 가장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남극은 일상이 도전이 되는 환경이다. 그곳에서 할 수 없는 일과 ‘그럼에도’ 해낸 일이 있다면.
“‘뭘 먹고 사느냐’며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1년 동안 먹을 식량이 한국에서 한 번에 들어온다. 또한 솜씨 훌륭한 주방장이 1년 내내 우리와 함께했다. 가끔 몇몇 대원들이 재주를 발휘해 직접 요리를 선보이기도 하는 등 정작 먹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다.
장보고기지에는 ‘식물공장’이라는 친환경 시스템을 설치해 아주 제한적이지만 채소도 직접 재배해 먹었다. 덕분에 세종기지에서의 월동에 비해 상황은 나아졌지만, 한겨울에 신선한 과일을 먹을 수 없는 아쉬움이 들 때는 한국이 그립기도 했다. 기지가 고립된 곳에 위치하긴 하지만 위성을 통한 인터넷이나 전화도 가능하다. 인터넷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회선을 집중하면 저화질 화면으로 국내 TV 시청도 가능할 정도다.
지난 여름에는 모든 월동대원이 함께 브라질 월드컵을 시청하며 우리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기도 했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직접 만나 가족이나 친구의 생일을 챙겨줄 수 없고, 예기치 않은 집안의 대소사나 명절에 가족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대원들끼리 서로 위로와 격려를 나누며 지냈다.”
철저히 자연 안에 속한 삶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직접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2013년 4월 16일 해빙 조사를 나갔던 대원들이 바닥 얼음이 깨지면서 바다에 빠졌다.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대원들 모두가 신속히 대처해 피해는 없었다. 전화위복이랄까, 이후 해빙 조사 활동을 위한 안전 매뉴얼을 새롭게 만드는 등 좀 더 철저히 준비할 수 있게 됐다.
5월에 꽁꽁 얼어붙은 장보고기지 앞바다 위를 평원 삼아 마음껏 뛰어다닌 일(물론 추워서 30분 이상 밖에 있을 수 없었지만)은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극야(극지방에서 겨울철 4월에서 8월 사이 해가 뜨지 않고 밤이 지속되는 기간)에 모두 함께 지켜본 하늘 가득 펼쳐진 오로라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제 장보고기지 제1차 월동연구대의 임무는 끝났다. 끝은 그 말이 무색하게도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최초라는 이름표를 달고 떠난 그에게 끝은 어떻게 다가올까.
“월동을 시작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던 시기, 기상 악화 등으로 기지 건설 일정이 예정보다 지연되면서 일부 시설의 안전성 여부가 최종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는 참 힘들었다.
대원 모두의 안전이 걸린 사안인 만큼 대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시설이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발전기가 가동되고 물을 확보하기 위한 취수구와 탱크가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 놓고 월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겼었던 어려운 순간이 떠오른다. 그러나 결국 1년의 시간을 버텨냈다. 첫 월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준 대원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글 · 조영실 (위클리 공감 기자) 20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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