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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작은 힘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

형형색색 6·25 참전국 국기가 중앙을 메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광장. 주위를 둘러싼 공기는 사뭇 무거웠고 바람에 깃발 펄럭이는 소리만 귀를 감쌌다. 광장을 걸어오는 김평원 씨의 발걸음은 묵직하고 힘이 있었다. 그는 6·25전쟁 때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수없이 새겨진 비석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전역 연기했던 김평원씨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평원 씨는 스물 셋 풋풋함을 지닌 건장한 청년이었다. 고교 교사가 꿈인 그는 경기 서부 9사단 백마부대 출신으로 강안경계부대에서 한강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8월 25일 제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날인 8월 24일 북한 포격 도발이 일어났다. 북한 목함지뢰 도발 사건으로 시작된 일촉즉발의 남북 위기상황에서 그는 나라를 지키려고 전역을 뒤로 미루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목함지뢰 도발 이후 전역 연기자

 

내 가족 지키는 사명감
쉽지 않은 결단 내려

전역을 연기한 이유에 대해 그는 "큰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집과 부대가 같은 지역인 일산이기도 했고, 또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이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컸단다. 가볍게 말을 풀어나가던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사실, 나라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일산에 사는 우리 가족을 내 손으로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들었죠."

내가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면 결국 가족도 지킬 수 없다는 사명감이 그를 전방에 남게 했던 것이다.

당시 상황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초긴장 상태였다. 시간이 갈수록 긴장은 고조되어 곧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가 전역을 미루겠다고 하자 함께 전역을 앞둔 대부분의 동기들은 제정신이냐며 말렸고, 특히 그의 어머니는 울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원 씨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역을 미루고 부대에 남아 힘을 보탰다. 평원 씨는 북한이 또다시 도발을 하면 다시 입대를 해서라도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그 일 때문에 자신이 큰 관심을 받는 상황이 많이 낯설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는 제대 이후 육군참모총장이 수여하는 참군인상 표창, 백마부대 보병 표창 등을 받고, 언론 인터뷰 문의가 쇄도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주변 상황이나 심적인 부분에서 변화된 점이 많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무덤덤하다"며 소탈한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변화된 것은 동생들의 눈빛이라고 한다. 평원 씨는 삼형제 중 맏이로 아래로는 18세, 20세인 남동생들이 있다. 그는 "예전에는 삼형제가 티격태격 다투곤 했는데 이제는 저를 자랑스러워하며 존중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생들 또한 곧 나라의 부름을 받게 된다면 "형처럼 나라를 위해 싸우는 진정한 병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며 웃었다.

"사실 군대에서 진행하는 정신교육에서 한·중·일 3개국 가운데 전쟁이 났을 때 참전 의사가 가장 낮은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심지어 50%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실제 위기상황에서는 오히려 하나로 뭉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죠. 이번 북한 포격 도발이 일어났을 때 누리소통망(SNS)에 수많은 응원의 글이 올라왔어요. 특히 많은 누리꾼들이 전쟁이 난다면 언제든지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참전 의사를 밝히는 것을 보고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라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어요."

위기상황에서 긴장도 많이 되었을 텐데 군대에 있던 평원 씨는 오히려 누리꾼들의 하나 된 모습에 큰 힘을 얻었단다.

전역연기장병 김평원씨

▷전역 연기 장병 김평원 씨가 수여받은 표창장을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대한민국을 바꾸는 힘
각자의 자신감에서 나와

세상에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평원 씨는 남다른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국방부에서 운영하는 SNS 등을 통해 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믿음직한 평원 씨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대화'라며 학창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 때 방황을 많이 했어요. 사춘기가 오니 정체성에 혼란도 왔고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그런데 뜻밖에도 과외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저를 변화시켰어요. 그때 선생님과 진심을 나누는 대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전 없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저를 만든 건 따뜻한 대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아직도 그때 깊은 대화를 나눴던 과외 선생님과 연락하며 지낸다. 이제 두 사람은 인생의 선후배로 정을 쌓아가고 있다.

평원 씨에게 분단국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무서워할 것 없다며 자신감을 갖자고 말했다.

"나라는 다른 사람들이 지켜주지 않아요.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결국 우리 가족들이 죽는 것이죠. 결국 내가 이 나라를 지키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만 기억했으면 해요."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을 바꾸는 힘, 국가브랜드로 '나 자신'을 꼽았다. 나 하나가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은 변화를 일으켜 결국 큰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북한 도발 위기 때 전역을 연기한 장병은 8월 24일까지 육군 86명, 해군 1명으로 총 87명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연기자가 속출해 위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모두 161명으로 그 수가 훌쩍 늘었다. 자신을 믿고, "나 하나가 보탬이 되겠어?"가 아닌 "나 하나가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어"라고 말하는 장병들의 힘이 모여 대한민국에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평원 씨가 이야기한 '나'를 믿는 힘이 대한민국을 이끄는 좋은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 박샛별 (위클리 공감 기자) 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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