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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을지대병원 내과 중환자실 우지인 간호사

당찬 사람이 메르스를 이겨내는 걸까, 메르스를 이겨낸 사람이 당찬 걸까. 지난해 3월 간호사 이름표를 단 대전을지대병원 내과 중 환자실의 경력 1년 차 우지인(24) 간호사에게 더 이상 메르스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대전을지대병원은 지난 6월 6~8일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90번 환자(65세 남성)가 뒤늦게 메르스 확진 환자로 판명되면서 55명의 중환자실 환자와 46명의 의료진이 6월 9~23일 코호트 격리(감염 가능성이 있는 환자와 의료진 전체를 병동 단위로 격리하는 것)됐다.

90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삼성서울병원 방문 사실을 숨긴 탓에 이 병원은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가 될 거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추가 감염자 없이 14일간의 격리생활을 마무리해 메르스에 모범적으로 대처한 병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호트 격리의 불편함을 견디며 메르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우지인 간호사에게서는 어떤 질환도 이겨낼 수 있다는 당찬 포부가 느껴졌다. 겁 많던 새내기 간호사를 일으켜 세운 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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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이틀 만에 사망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겠다.

6월 6일 우리 병원에 내원한 90번 환자는 다음 날부터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 인공호흡기까지 달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담당 주치의가 보호자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5월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 확진 환자와 접촉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택 격리 대상자였으나 그걸 안 지키고 우리 병원에 온 거다. 스스로는 그걸 알면 서도 몸이 너무 아프니 사실을 숨기고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닌 걸로 보인다.

당시 병원 내에 메르스 환자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메르스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설마 양성 판정이 나오겠나 싶었다.

8일 자정에 결과를 통보받고 나서야 메르스라는 실체를 실감했다. 음압 병실에서 치료받던 환자는 이틀 뒤인 10일 사망했다. 메르스 발생 병원 방문 사실을 숨기고 우리 병원에 온 건 잘못한 일이지만,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해선 죄송한 마음이었다.

 

90번 환자가 메르스 확정 판정을 받자마자 코호트 격리됐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내과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평소와 같이 3교대로 하루 8시간 근무했다. 의료진은 공기가 전혀 안 통하는 방호복과 고글, 장갑 2겹에 장화와 마스크까지 착용해야 해 어지러워 쓰러지거나 구토하는 간호사들도 있었다. 나 역시 몸속에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쌓여 토하고 쓰러지고…, 그 와중에도 수액을 맞으며 일했다.

처음엔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망가면 중환자실 환자들은 누가 돌보겠나. 일반 병동과 달리 중환자실은 집중적으로 환자를 관리해야 한다. 내가 나가면 내가 담당하는 환자 3명은 어떡하나 싶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격리기간 동안 4명의 중환자가 돌아가셨다. 그들 옆을 끝까지 지켜 주지 못해 죄송하다.

 

2주간 병원 밖을 나가지 못했다. 어떻게 지냈나.

90번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의료진 5명에게는 자택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나머지 의료진은 이동 도중 지역사회 전파를 막기 위해 환자들과 병원에 남기로 했다.

46명의 의료진은 빈 병상이 마련된 15층에서 생활했다. 우리 집은 15층 창문에서 내다보면 보일 정도로 가까운데 코앞에 집을 놔두고 병원 침대 위에만 앉아 지내려니 답답했다. 3교대 하는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평소 잠을 잘 자둬야 하는데 낯선 곳에 있으니 잠도 잘 안 왔다. 동료들과 “격리 해제 후 다 같이 바다를 보러 가자”는 약속을 했다.

방호복을 입고 일하면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잘 챙겨 먹어야 했다. 병원 식당에서 1회용 식기에 음식을 담아 올려 보내줬다. 양도 많이. 지역사회에서도 과일이며 이온 음료 등을 많이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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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은 코호트 격리 기간 중 중환자실에서 사망한 60대 환자의 남편 이 모 씨의 부탁을 받아 의식을 잃은 환자 앞에서 ‘임종 편지’를 대신 읽었다. 사진은 격리가 해제된 뒤 이 모 씨가 의료진에게 보낸 감사 편지.

 

격리기간 중 사망한 60대 환자의 보호자가 보낸 ‘임종 편지’가 화제다(6월 16일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둔 환자의 남편 이 모 씨는 아내의 임종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중환자실로 전화를 걸어 의료진에게 편지를 읽어줬고, 의료진은 편지 내용을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 전달했다).

그 보호자는 격리 전부터 환자에게 많은 정성을 들인 분이었다. 면회를 위해 병원을 오가던 그분도 자가 격리 대상자였기 때문에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살림을 일으키고, 약한 아이들 훌륭하게 키워내고, 못난 남편 회사에서 큰 책임자로 키워내고…”라는 내용을 환자에게 읽어주는 동안 중환자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코호트 격리가 해지되자마자 중환자실을 찾은 보호자는 “편지로나마 임종을 할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면서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의료인으로서의 마음가짐도 달라졌을 듯하다.

90번 환자가 내원해 퇴원하기 전까지 병가를 내고 나가계셨던 간호사 선생님이 계신다. 90번 환자와 절대 접촉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거다. 그런데 코호트 격리 소식을 듣고 자원해 우리와 함께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재난 같은 상황을 맞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던 차에 그 선생님을 보고 책 임감을 갖게 됐다. 입사한 지 한 달 된 간호사를 포함해 신규 의료진 8명 모두가 잘 버텨냈다.

6월 29일에는 을지재단에서 의료진 전체에게 개별 표창장과 위로금 1억 원을 수여했다. 병원에서는 외래 환자가 줄어 손실이 많을 텐데 되레 우리를 챙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의료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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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재단이 6월 29일 14일간 환자들과 함께 코호트 격리된 채 메르스 극복의 최일선에서 헌신해온 대전 을지대학교병원 직원들에게 표창장과 위로금 1억 원을 전달했다. 내과 중환자실 의료진 46명은 5월 9~23일 2주 동안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환자들 곁을 지켰다.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이라는 인식도 극복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메르스는 무서운 질병일 수 있지만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발열 체크를 자주 해 예방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질환이라고 본다. 우리 병원은 23일 코호트 격리가 해제되고 나서 중환자실 전체를 비우고 소독한 뒤 4일 동안 빈 병상을 유지하고 27일부터 외래 환자를 받기 시작했다. 메르스 확진자나 격리자들은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따가운 시선 대신 따듯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기 바란다.


· 조영실 (위클리 공감 기자) 사진 · 대전을지대병원 20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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