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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우(57) 코아테크 대표는 기계제도 분야의 명장이다. 1977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기계제도 분야 금메달을 땄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특기를 인정받아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LG전자의 전신인 금성통신에 취업한 후 코아테크를 설립하기까지 40년 넘게 통신기기 설계와 개발 엔지니어링 분야에 매달렸다. 2007년에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기능한국인’으로도 선정되었다. 오직 기술만 알던 그의 외‘ 길 인생’에 변화가 찾아든 것은 지난해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원하는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2012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3년째를 맞은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제도는 우수한 현장 전문가를 산업현장 교수로 선정해 국가 인재를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대한민국 명장을 비롯해 기능경기대회 입상자, 기술사, 기능장 등 우수한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10년 이상의 경력자만이 산업현장 교수로 활동할 수 있다. 이들은 학교에서 현장실습을 지도해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준다. 중소기업에는 기술과 인적자원개발 컨설팅 등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한다. 현재 301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4월 21일 제4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108명이 새로 선정돼 총 400여 명의 산업현장 교수들이 국가 인재 육성에 나선다.

산업현장 교수 2기로 선정된 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 대표는 이들 가운데서도 ‘열혈 교수’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나주공업고등학교와 한양공업고등학교 등 5개 학교에 출강한 그는 올해 전국 특성화고에서 밀려드는 ‘러브콜’을 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 올해는 서울을 비롯해 경기 성남, 전북 익산 등에 소재한 7개 학교와 1개 기업에 출강한다. 일주일의 절반을 지방에서 보내는 일정이 고단할 때도 있지만 이 대표는 “보람이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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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린 인생이었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예순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사업으로 한창 바쁠 때 특강 형식으로 강의한 적은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산업현장 교수 활동은 좋은 기회였죠. 제가 가진 노하우와 기술이 어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어린 학생들에게 도움된다니 너무 기쁩니다”

이 대표가 가르치는 기계설계/CAD 분야는 모든 기계를 제작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다. 산업자동화기계·건설기계·금형기계 등 다양한 기계들을 설계·제작해 도면으로 나타낸다. CAD는 컴퓨터 시스템을 사용해 부품도·조립도 등의 도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국제표준(ISO) 또는 한국산업규격(KS)에 준하여 작성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기계설계 분야에서 16연패를 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강세다. 16연패의 포문을 연 인물이 바로 37년 전 이홍우 대표다.

“회사에서 밤 10시 반까지 잔업을 하고 나면 곧장 퇴근했어요.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40분 거리를 뛰어서 20분 만에 도착했죠. 집에 가서 세수만 하고 앉아서 그때부터 훈련에 몰두했어요. 어머니가 새벽녘에 떠다 주신 냉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며 밤새는 줄 모르고 매달렸어요.”

그 결과는 실력으로 나타났다. 1975년 서울지방기능경기대회, 1976년 전국기능경기대회 기계제도부문 금메달에 이어 마침내 1977년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기계제도부문 금메달을 딴 것이다. 그해 우리나라는 이대표의 선전에 힘입어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참가 이래 처음으로 종합 1위를 차지 했다.

“수상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 때에 우‘ 리도 하면 된다’라는 가능성을 본 거죠. 선수단이 귀국하니 김포공항에서 서울시내까지 카퍼레이드도 하고, 정말 금의환향이었죠. 기능인에 대한 인식도 좋았고요. 요즘은 그때보다 훨씬 여건이 좋아지고 실력도 일취월장해서 국제대회를 휩쓰는데 수상을 하고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누구보다 기술·기능인이 처한 현실을 잘 아는 그는 후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미래 기술명장을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이 대표가 걸어온 길이 곧 ‘정도’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한양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해 뒤늦게 못다한 꿈을 이루기도 했다. 1987년에는 LG전자를 대표해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휴대폰 전문기업 모토로라와 함께 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휴대폰을 비롯한 통신기기를 설계·개발하는 엔지니어링 업체인 코아테크를 설립해 100여 종이 넘는 휴대폰을 개발했다.

이 대표는 “학생들에게 내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신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며 “나도 전문계 고등학교 출신이지만 기술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 하나로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기능은 끈기와 인내로 익혀야 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너무 쉽게 직업을 선택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며 “이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기능과 기술을 찾아주고 직업의 가치를 알려주는 일이야말로 현장 교수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학생들이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그날까지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글·허정연 / 사진·지미연 기자 201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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