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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 것을 잊으라, 프로정신을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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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의 백미숙 문화기획팀장은 통신기술 개발의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대덕연구단지에서 유선전화 교환기를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이동통신, 화상통신, 데이터통신, 무선랜 공유기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넘게 통신장비 개발을 주도해 왔다. 백 팀장의 연구를 통해 통신기술 분야에 등록돼 있는 특허만도 7건이다. 2011년부터 그는 오랜 꿈이었던 문화기획을 맡아 IT연구 경험을 살려 문화와 융합하기 위해 새롭게 도전 중이다.

그의 첫 연구 성과인 전전자교환기(TDX-10)는 각 가정에 유선전화 공급을 늘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전전자교환기는 쉽게 말해 통화할 수 있게 연결해 주는 컴퓨터로 교환기 개발 전인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기술이 없어 미국·스웨덴 등의 수입통신장비에 의존해야 했다. 백 팀장은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으로 국산 교환기를 개발하는 데 참여해 성공했다. 그는 “국산 교환기 개발로 유선전화를 어느 집에서나 쓸 수 있게 돼 자긍심도 있었다”고 말했다.

10여 년 넘게 대덕연구단지에 있다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대기업과 벤처기업 등을 거치며 통신기술 연구에 매진했다. 휴대폰이 막 상용화될 무렵인 1990년대 후반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의 책임연구원으로 이미 화상통신과 데이터통신용 핵심망 개발을 마쳤다. 벤처기업인 아이피원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무선랜공유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해 KT에 납품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아이피원은 매출 150억원, 직원 수 50여 명의 회사로 성장했다.

백 팀장은 “통신기술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늘 현재 쓰는 기술보다 한 발 앞서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오랜 연구 성과로만 보면 과학자가 천성인 것 같지만, 원래 그의 꿈은 예술가였다. 머리 속의 생각을 마음대로 그려낼 수 있는 화가를 꿈꾸던 무렵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 진학은 포기해야 했다. “어릴 때 백화점의 쇼윈도를 보며 저 공간에 이야기를 입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이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거죠. 벤처기업을 그만둔 후 미국 맨해튼에 갔더니 거리 문화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문화와 IT를 접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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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홈페이지 만들며 IT·문화 융합 가능성 느껴

인사동 홈페이지(www.hiinsa.com)를 만든 것은 IT·문화를 융합하려는 첫 시도였다. 문화 강좌를 듣고 축제 기획을 하며 경험을 쌓다가 우연한 기회에 홈페이지 제작을 맡게 됐다. 서울 인사동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보를 모아놓은 홈페이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그의 IT연구 경험이 강점이 됐다. 홈페이지 제작을 마친 후 지난해 종로구청으로부터 공로상도 받았다.

“기술만 알면 사무적인 홈페이지가 되는 경우가 많고, 문화만 잘 알면 적재적소에 기술을 활용하기 어렵잖아요. 문화와 기술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하고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이 정보는 이쯤에서 찾게 하면 좋겠구나, 이 콘텐츠는 이런 방법으로 보여주면 흥미롭겠구나’ 하며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죠.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 IT·문화 융합에 대한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뿌듯했죠.”

IT 기술을 기반으로 문화를 생생하게 알리는 것이 백 팀장의 목표 중 하나다. 그래서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에서 문화기획을 맡고 있다.

언젠가는 생생하게 문화체험을 할 수 있도록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등의 기술을 문화체험용 웹에 구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성 과학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백 팀장은 “여성인 것을 잊으라”고 당부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야근·밤샘작업·출장 등이 많아요. 여성이 하기 힘든 부분이 분명 있죠. 하지만 여성이기 이전에 프로정신을 갖고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여성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성과를 낼 수 있죠.” 실제 그가 연구했던 한 팀의 경우 16명 중 15명이 남성이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백 팀장은 “아이를 함께 돌봐야 해서 힘들었지만, 야근도 밤새는 일도 동료들보다 더 많이 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자로 성공하는 데 여성이 갖는 장점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 중 하나로 ‘직감’을 꼽았다. “연구하면서 여성이 갖는 직감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성은 웬만큼 결과가 보여야 판단하는 데 비해 여성은 상황의 맥락과 뉘앙스 등을 감지해 연구방향 수정 등에 대한 판단을 빨리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개의 여성이 남성보다 섬세하기 때문에 갖는 장점이죠.”

그러면서 과학자가 되더라도 과학뿐 아니라 ‘융합’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나 건축·예술·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과학이 융합할 때 시너지를 낸다는 것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를 살펴봐야 합니다. 궁금증이 많아야 해요. 중요한 것은 호기심에 머무르지 않고 해결 방안까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보를 많이 얻고 이를 토대로 분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글·남형도 기자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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