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2년 전 산부인과 병실에 있을 때 옆 병실의 젊은 산모가 찾아왔다. “무슨 일로 입원하셨어요?” 병상 앞에 붙어 있는 환자 나이가 적힌 카드를 보고서였다. 무안해서 실실 웃다가 대답했다, “출산했어요.” 나이 마흔에 나는 이렇게 계획에 없던 늦둥이 딸을 낳았다.
직장생활하랴, 대학원 다니랴, 애 키우며 집안일하랴, 늘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내가 8년 만에 둘째를 임신했다고 전했을 때 엄마의 놀란 표정. “그럼 직장은 어쩌려고? 그 나이에 갓난애는 누가 키우고?” 나 자신도 계속 던진 질문이었지만, 한편 서운했다. 이미 조카를 키우느라 인대가 늘어난 친정엄마의 팔목을 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애 안 맡길게요.”
대학생 자녀를 둔 동네 아주머니가 너무 예뻐하며 애를 키워주셨다. 그 다음엔 유치원 교사가 꿈인 대학 휴학생을 만났다. 그렇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좋은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다니던 직장에서 상사와의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심해 다른 곳으로 옮기려던 시기.
“잘 자라 우리 아기 앞뜰과 뒷동산에~”,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어릴 적 부르던 노래들을 이어 부르면서 아이의 새근새근 숨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도 평온해졌다.
사춘기 접어들면서부터 큰애는 부모와의 팔짱도, 주말 외출도 거부하며 접근 금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서운해 하기도 전에 늦둥이 딸이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마트에 갈 때도, 지인 결혼식에도, 친구들 모임에도, 심지어 밤늦게 동네 호프집에서 언니와의 인생상담 중에도. 나에게는 도통 자유시간이 없다고 투덜댔다. 하지만 외롭진 않았다.
큰애의 고3 시절 큰애도 나도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초등학생 딸은 친구와 생일기념 ‘파자마 파티’를 하겠단다. 네 명의 초딩이 베개싸움에, 걸그룹 춤에…. “아이구 저 철딱서니”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올해 중학생이 된 딸이 얼마 전 학교 중간고사 시험을 마친 뒤 뻔한 질문을 던졌다. “시험 어땠니?” 늘 그랬듯 돌아온 답은 “정말 잘봤어요.” 아직 성적표를 받지 못했지만 나는 안다, 아니란 것을. 낙천적인 아이는 자기보다 못한 경우만 본다.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데 결코 핸디캡은 아니다. 큰애를 키운 경험이 있어 육아에 여유와 즐거움을 느낄 때가 많다. 무엇보다 한 아이를 키울 때보다 내 인생은 훨씬 성숙해졌다. 오늘도 엄마들 모임에 나갈 준비를 하며 나는 편한 바지를 꺼내 입다가 좁다란 청바지로 바꿨다. 갱년기의 나에게 늦둥이 딸은 맵시청바지(스키니진)같이 삶에 활력을 주는 존재다.
글·권수현(51ㆍ성남시) 2014.11.03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