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경북 포항에 사는 김창윤(60)·정경숙(59)씨 부부는 최근 아주 특별한 졸업식을 치렀다. 10년 전 고아원에서 입양해 가슴으로 키운 딸 연우(가명·14)의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졸업장을 받아 쥔 연우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김씨 부부에게는 연우가 바로 희망꽃이다. 무남독녀 연우는 아직 자신이 입양된 줄 모른다. 아빠 엄마가 친구들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다는 정도만 느낄 뿐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다. 다만 한때 언니 오빠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언니 오빠가 세상을 떠난 것은 연우가 입양되기 직전이다. 2003년 2월 18일, 그날은 향진(당시 22세·계명대 공예디자인) 언니의 졸업식 날이었다. 언니는 철환(당시 20세·중앙대 건축학과) 오빠와 함께 먼저 식장으로 떠났고, 뒤늦게 식장을 찾은 아빠 엄마는 전화가 불통인 오누이를 찾느라 행사가 끝날 때까지 졸업식장을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딸의 졸업식 날 단란했던 가정을 생지옥의 고통 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은 대구지하철참사였다. 김씨의 두 자녀도 이때 지하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졸지에 남매를 모두 잃은 김씨 부부는 이후 한동안 정신을 놓고 살았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눈을 뜨고 있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15명으로 출발한 봉사단 230명으로 늘어
자녀를 잃은 고통으로 한숨만 내쉬던 김씨 부부는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입양에 눈을 뜨면서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연우를 만난 것이었다. “대구와 경북 김천, 충북 음성 등 전국의 고아원을 누비다 결국 울산에서 연우를 만났다”는 김씨 부부는 사고 8개월 뒤인 2003년 11월 정식으로 연우를 자식으로 맞았다.
이후 김씨 부부는 늦둥이를 키우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2년 후 여자아이를 한 명 더 입양하려던 김씨 부부는 연우의 시샘을 견디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두 손을 들었다. 연우의 시샘을 “연우 하나라도 잘 키우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믿은 김씨 부부는 온 힘을 쏟아 연우를 키웠다.
김씨가 봉사활동의 참 맛을 알게 된 것도 연우를 만난 후였다. 연우를 입양한 다음해인 2004년 봄 김씨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현대제철 포항공장 자원봉사단을 만들었다. 매달 고아원과 장애인 및 노인복지시설 등 불우이웃을 찾는 이 봉사단은 15명으로 출발해 지금은 230명의 대식구가 됐다.
7년째 자원봉사단장을 맡으면서 두 명의 소녀가장을 따로 돕는 김씨는 2009년 전국장애인부모대회에서 감사패를, 2011년 말에는 삼일문화재단의 사회봉사대상을 받는 등 봉사를 제2의 천직으로 삼고 있다.
“아들 딸 몫까지 잘 키우는 일만 남았다”는 김씨 부부는 입양과 봉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다.
글과 사진·전준호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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