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선배, 류현진 경기 보러 가요?”
휴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머물던 6월 8일, 한국에 있는 후배로부터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부상으로 등판이 미뤄져 낙심하고 있던 터다.
“부상 때문에 안 나온다며?”
“생각보다 빨리 회복됐나 보죠. 확정됐으니 알아보세요.”
새벽 두 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일 경기(애틀랜타 브레이브스-LA다저스)라 입장권은 어렵지 않게 구하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안심할 순 없었다. 저녁 7시 경기니 시간이 촉박했다. LA다저스 홈페이지에 접속했는데 느린 인터넷 속도가 발목을 잡았다.
답답했다.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비싼 국제전화요금 따윈 안중에 없었다. 대여섯명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만에 입장권 예매에 성공했다.
낮 동안 예정된 일정을 모두 끝냈더니 시간은 오후 5시가 됐다. 머물던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스타디움까지는 차로 두 시간 거리. 가속 페달에 얹은 엄지발가락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경기장 입구는 명절 귀경행렬을 방불케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3만 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는 엄청난 크기의 주차장에서 스타디움까지는 또다시 15분. 걸을 수 없어 뛰었다. 심장도 뛰었다.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함성은 점점 커졌다.

“류! 류! 류!”
믿기 힘들 만큼 울림이 컸다. 4만명에 가까운 홈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류현진을 외치고 있었다. 위기에 몰린 투수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2사 주자 1, 2루 상황. 류현진의 손을 떠난 공을 상대팀 5번 타자 개티스가 힘차게 쳐냈지만 공은 우익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여전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기왕이면 비싸고 좋은 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등판을 당일에 알아차린 내 잘못이다. 약 700달러(약 80만원)에 달하는 제일 비싼 좌석이 남아 있었지만 솔직히 이건 엄두가 안 났다.
로스앤젤레스답게 류현진을 보러 온 우리 교민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마음씨 좋게 생긴 할아버지 사이에 앉았다. 30년 넘게 이 야구장을 찾은 열성팬이라고 했다. 한국인이라고 하자 ‘류(류현진)는 한국에서도 이렇게 잘했느냐’고 묻는다.
“최고였죠. 응원하는 팀과 무관하게 모두가 그를 좋아했어요.”
“맞아. 류는 좋은 투수야. 올해만 놓고 보면 커쇼 이상이지.”
클레이튼 커쇼 얘기다. 그는 LA다저스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2011년 사이영상(메이저리그에서 22년 동안 활약한 투수 사이영을 기념해 그해 최우수 투수에게 주는 상)을 수상한 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다. 그런 그보다 낫다고 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류는 안타를 맞아도 흔들리는 법이 없어. 자기가 던지는 공에 확신이 있다는 뜻이지. 팍(박찬호)도 잘해줬잖아? 한국 투수들은 늘 기대만큼 해주는 것 같아.”
LA다저스가 공격하는 틈을 타 다저스 핫도그와 맥주로 배를 채웠다. 2회초 류현진이 다시 마운드에 오르자 관중들은 커다란 함성으로 마중을 나왔다. 응원대로 그는 2회와 3회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최하위에 처진 팀을 구하러 나선 에이스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타석에도 들어섰다. 큰 덩치 때문인지 타석이 꽉 찬 느낌이다. 감을 조절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관중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1루까지 뒤뚱뒤뚱 뛰는 투수를 귀엽게 여기는 눈치다.

4회초 적시타를 맞고 1실점했지만 이후 류현진은 5회부터 7회까지 열명의 타자를 맞아 볼넷 하나만 내주는 완벽한 투구를 했다. 반대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약하다는 LA다저스의 타선은 소문대로 최악이었다. 안타 자체가 드물었고, 어쩌다 선두타자가 진루해도 좀처럼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류현진은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두 명의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러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LA다저스 홈팬들은 전원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최선을 다한 팀의 에이스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시였다.
LA다저스는 연장 10회말 폭투를 틈타 대주자 슈마커가 홈을 파고들어 결승점을 올렸다. 처음 본 미국 프로야구 경기에서 끝내기 경기라니.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류현진도 승리가 확정되자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 류현진은 6월 21일 현재 6승 3패, 방어율 2.96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가 끝나고 30여 분이 흘렀다. 느지막이 경기장을 나섰다.
여운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 급하게 들어오느라 못 봤던 대형 야구공 모형이 눈에 띄었다. 클레이튼 커쇼의 사이영상 수상을 기념해 만든 모형이다. 3~4년 내로 이 옆에 류현진의 모형도 생길 것이란 확신은 과연 나만의 것일까?
글과 사진·장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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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