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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3대 걸친 3만5천 시간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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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에 3,4시간씩 10년간 보내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세 배가 넘는 3만5천 시간이라면?

대구에 사는 황광자(70) 씨를 비롯해 딸, 손자·손녀까지 3대 가족이 봉사에 할애한 시간이다. 황 씨 개인적으로는 1993년 대한적십자 봉사회에 가입한 이후 21년 동안 독거노인 지원,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구호, 사랑의 도시락 배달 등 혼자 2만7,551시간을 봉사했다. 황 씨는 시간을 세어보지는 않았다며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돌았다 카겠죠(돌았다 하겠죠). 호호호”라며 웃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달 ‘세계 적십자의 날’을 맞아 황광자 씨 가족을 ‘봉사명문가’로 선정했다. 2012년부터 대한적십자사가 선정해 온 봉사명문가는 3대 이상에 걸쳐 적십자사의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인도주의를 실천해 온 가족에게 부여된다.

“가문의 영광이죠. 제 입장에서는 한 것 없이 큰 상 받은 건데요.”

그는 국내 참사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2003년 경남 합천 헬기추락, 같은 해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이런 현장에는 꼭 달려나가 구호활동을 했다. 심리상담을 통해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사실 달리 해 드릴 말이 없어요. 그냥 말없이 손을 잡아드리는 것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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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엔 쉬는 날이 없다”… 일주일 스케줄 꽉 차

황 씨가 그런 상황을 경험한 장본인이었던 것도 한 계기다. 고등학교 입학 무렵이었다. 집에 도둑이 들어 갑자기 불까지 질렀다.

명태, 동태 등 건어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사업을 하던 집안은 단 하루 만에 풍비박산이 났다. 부친이 쇼크로 돌아가신 후 7남매의 맏이로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던 황 씨는 당시를 또렷이 기억했다. 소녀 가장이 된 채 구걸하고 다니던 일이 큰 상처였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가까이 지내던 분들도 우리가 망하고 나니까 고개를 돌리는 거예요. 이 나이가 돼도 그때 생각 하면 눈물이 나요.” 그의 목소리는 진정이 되지 않은 채 파르르 떨렸다. “정말 국수 한가락을 걸어놓고 일곱 식구가 연명하던 적도 있었어요. 그때부터였죠. 나같이 갑자기 어려워진 사람이 생기면 언젠가 꼭 남을 돕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황 씨의 봉사에는 ‘쉬는 날’이 없다. 일주일이 봉사 스케줄로 꽉 차 있다. 그는 달력이나 수첩을 보지도 않고 줄줄 읊기 시작했다.

“월요일은 병원 가서 의료품 거즈 접기, 장애인 목욕, 배달, 세척하는 일을 하고요, 화요일은 노인복지관에 가고 다문화가정 돌보기를 하고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중략) 일요일에는 반찬을 배달합니다.”

일의 강도가 가벼운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복지관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하는데 8명의 봉사단원들이 400~450명분을 준비한다. 최소 한 사람당 50인분을 준비하는 셈이다. 연세도 있으신데 힘에 부치지 않으냐는 말에 오히려 손사래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가 어렵습니까~ 이렇게 힘쓸 수 있는데요. 아직 멀쩡해요.”

황 씨가 반찬배달 봉사를 다닐 때는 남편 조재덕(73) 씨가 바래다 주거나 가족들이 번갈아 가며 운전해 준다. 조 씨도 아내의 일을 돕는 것을 마다 않는다. “우리집 영감님은 워낙 손이 컸어요.

막노동하시는 분들이 다치면 치료비를 다 대주고 쌀 팔아서 남 주고 그런 양반이지요.” 황 씨는 남편을 치켜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황 씨의 두 딸 조현민(사진 맨 오른쪽)·조현숙(사진 맨 왼쪽) 씨도 2007년부터 어머니와 함께 독거노인 가정을 매주 찾아가 돌봐주는 일을 한다. 각각 3,554시간과 3,034시간의 봉사활동을 했다. 손녀 박주희(오른쪽에서 두번째) 양과 손자 송호진(16)군도 어머니를 따라 매주 구호품 전달, 결연가정 청소 등을 해 각각 362시간과 458시간의 봉사활동을 했다. 황 씨의 큰딸 조현민 씨는 “어머니가 늘 하시던 일이라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이라며 “너무 늦게 시작한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용돈 쪼개 장학회… 지금까지 1천여 만원 지원

손자들은 인터뷰하기를 사양했다. 황 씨의 말에 의하면 ‘대단한 일도 아닌데 얼굴이 자꾸 나오는 게 부끄럽다’는 이유였다. 황 씨는 손자 자랑에 기분이 더 좋아진 듯했다. “아이들이 겸손해요.

심지어는요, 명절에 얼마 안 되는 용돈 쥐어줬는데 ‘봉사하는 데 쓰세요’ 하더라니까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감추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네 놀러오면 그 시간에 봉사현장만 따라다녔으니 제가 충분히 함께해 주지 못한 건 미안해요.”

황 씨는 1992년 장학회를 만들어 현재까지 1천여 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스스로 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어디서 즐거움을 찾는지 궁금했다. “벌이는 젊었을 때 했고, 이젠 용돈 쪼개 나눠주는 기쁨이 쏠쏠해요.” 그가 봉사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건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뭐합니까? 이 나이에 할 일 없어 시간 때우고 있었겠죠. 그런데 건강한 신체로 여러 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봉사명문가’의 타이틀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지금과 똑같이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처음부터 남한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가족 모두 건강해서 다들 좋은 일에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봉사명문가족 황 씨네의 3만5천 시간의 법칙은 바로 ‘사랑’이었다.

글·박지현 기자 201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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