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복거일(68) 문화미래포럼 대표는 “세월호 침몰사고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안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제아무리 좋은 제도와 규정이 있어도 도덕성의 작동이 없으면 사회는 부패한다”고 일갈했다.
5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시사미디어 회의실에서 복 대표를 만나 ‘안전한 국가로 가는 길’에 대해 물었다. 복 대표는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도덕과 배려를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이 주연이 되는 도덕부흥운동이 추진돼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5월 19일 대국민담화를 했다.
“대통령이 진솔하게 사과하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국민 여러분도 참여해 달라’는 주문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다. 우리 사회, 국민 모두의 도덕적 각성이 중요한 시점이다.”
해양경찰청 해체 등 정부조직 개편과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 제정 등 굵직한 대책이 많이 나왔다.
“대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국민들이 객석에 앉아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주연이 되는 도덕부흥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사회가 타락했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교통법규나 신호도 제대로 안 지키는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큰 건물의 비상구는 닫혀 있기 일쑤고, 문 앞에는 상자가 쌓여 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기구 해체나 개편은 사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같은 이름의 정부기구가 오랫동안 존속되는 이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사고가 나면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신속히 대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도덕부흥운동이 필요하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우리 사회에 준 가장 큰 교훈은 도덕적 기반 없이는 제도·규정·정부기구 등을 완벽히 갖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선장과 승무원들이 도저히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승객들보다 먼저 배를 빠져나간 것은 도덕의 부재 탓이다. ‘도덕적 감정’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도덕 없이는 제아무리 좋은 시스템·규정·법령이 있어도 소용없다.”
안전불감증을 말하는 사람도 많다.
“운송사업은 안전이 기본인데 신경을 안 썼다. 그 이유는 (세월호를 운영하는) 회사(청해진 해운) 자체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망한 회사이다 보니 안전 같은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회사의 도덕적 기반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배라는 것은 원래 개조하면 안 된다. 배는 설계할 때 필요한 기능·효율·안전을 조합해서 만드는 예술품이다. 때문에 한 층 전체를 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기능이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다시 설계를 했어야 했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정실주의·민관유착 등 한국사회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어느 사회든 원숙해질수록, 즉 세월이 흐를수록 썩게 마련이다.
이권과 관련해 연고주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집단들은 계속해서 생기고 그들은 영속성을 추구한다.
사회는 오래될수록 자신들의 이익, 다시 말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정실주의는 결국 부패를 낳는다. 역사적으로 로마제국, 수·당·원·청 등 중국의 여러 왕조들도 처음에는 건강하게 출발했지만 나중에 부패해졌다. 우리나라도 건국 반세기가 훌쩍 지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시장이 약하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시장은 개인들이나 기업들이 활동하는 무대다.
거기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다. 누가 부정하거나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하면 당장 거래를 끊는다. 지속적으로, 자연스럽게 물갈이될 수밖에 없다. 이걸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고 했다. 불량한 기업과 개인·제품들은 퇴출되고 그 자리에 도덕적·창의적 기업, 개인·제품이 들어온다. 그런데 우리는 밀려나야 할 사람들이 관리들을 붙잡고 진입장벽을 쌓아 독점적 이익을 얻었다.
정부가 시장 규제를 강하게 하면 부패가 커지고 창조적 파괴가 이뤄질 수 없다.”
규제개혁이 시장의 도덕성을 높인다고 볼 수 있나?
“규제 혁파가 도덕적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 도덕적 사회 구축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규제 혁파는 정말 잘한 일이다. 정부의 간섭을 줄여야 ‘관피아’로 불리는 유착관계가 사라진다. 도덕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병에 걸렸다고 치자. 규제 혁파는 수술이다. 그런데 수술만으로 건강해질 수 있나? 수술과 동시에 잘 먹고 면역력을 키워야 건강해질 수 있다. 이게 바로 도덕성 함양이다.”
어떻게 도덕성을 함양해야 하나?
“도덕이란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된다. 생활 속에서 도덕적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배우고 자란다. 교통법규는 일상생활의 도덕이다. 교통법규도 잘 안 지키는데 어떻게 도덕적인 생활이 되겠는가?
교통법규 준수도 제대로 안 되다 보니 경찰서 지구대에서 경찰관의 멱살을 잡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전 뉴욕시장 줄리아니가 활동했던 ‘깨진 유리창 이론’도 생각해 봐야 한다.”‘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미국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주창했다.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범죄를 줄이려면 범죄를 일으킬만한 환경을 없애야 한다’는 소신 아래 이 이론을 뉴욕 시정에 적용했다. 낙서를 지우는 등 도시환경을 정비하고 대대적으로 기초질서단속을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시민들은 어이없는 대책이라며 비웃었다. 강력범 검거보다 사소한 위반만 단속한다고 원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강력범죄가 50퍼센트 이상 줄었고 완료 후에는 75퍼센트나 감소했다.
유언비어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런 사태가 일어나면 으레 체제를 공격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게 도리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더 시끄럽고 어둡게 만드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유언비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말을 지어내는 사람들에게 자꾸 관심을 갖고 대꾸해 주니까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모두가 죄인이라는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다. 그 말은 바꿔서 생각하면 모두 죄가 없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다. 좀 더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할 시점이다.”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면서 세월호 ‘이후’를 생각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우리 젊은이들이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단원고 학생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도 걱정된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잘 돌봐야 한다. 그와 별개로 최근 안전진단에서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된 학교가 전국에서 148곳에 이른다고 한다. 하루빨리 해결해야 하는데 예산 부족 타령만 한다. 위험한 교실에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안전이 미래고 그게 우리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1946년 충남 아산 태생인 복 대표는 소설가이자 경제평론가다.
복 대표는 ‘영어 공용화론’을 펴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은행·제조회사·무역회사 등에서 근무했던 그는 1987년 장편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통해 소설가로 데뷔했다.
복 대표는 2년 반 전 간암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를 거부한 채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복 대표는 “글을 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슬픔은 때로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깨끗하고 힘찬 동력을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데 써야 합니다. 내년 봄에는 우리 아이들이 마음놓고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해야죠.”
글 ·최경호 / 사진·오상민 기자 201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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