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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 한국인 여성 기장 오른 조은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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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쿠르르릉!” 비행기 날개가 바람을 타고 양력을 받아 하늘로 날아오른다. 귓전을 때리는 힘찬 엔진 소리 속에 아득해져가는 활주로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이내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남들은 이 엔진 소리를 소음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그에게 있어 이 거대한 소리는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소리’다. 폭발하듯 터져나갈 것 같은 기계음에 평안함을 느끼며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비행은 역시 내게 천직이야.’

중국 상하이 지샹(吉祥)항공에서 파일럿으로 일하는 조은정(40)씨 이야기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중국항공사의 파일럿으로 7년째 비행을 하고 있는 그는 하늘을 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

“이륙할 때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들으면 저는 심장이 뛰어요. 밤하늘에 고요하게, 총총히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보면 걱정이 사라지고, 구름 뒤에 뜬 무지개를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죠. 저에게 비행은 단순한 일상을 뛰어넘어 ‘삶을 이끄는 철학책’과 같아요.”

현재 지샹항공에는 조씨를 제외하고 10명의 여성 기장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 조씨가 입사한 6년 전만 해도 이곳에는 여성파일럿의 유니폼과 구두가 따로 없었다고 한다. 조씨가 여성 기장의 시대를 연 셈이다.

지금은 누구보다 비행을 ‘천직’이라 여기는 그지만 꿈을 성취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먼 길을 돌고 돌아왔다. 파일럿을 꿈꾸는 보통의 사람들이 본격적인 비행 공부에 열중할 때인 만 29세에 그는 처음으로 파일럿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만 33세가 되어서야 비행 공부를 시작했다. 또래의 기장들이 밟아온 과정과 비교하면 많이 뒤처진 행보다.

한양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조씨는 졸업 전까지 문구디자인 전문가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오던 해 건축디자인에 관심이 생긴 조씨는 무작정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평소 “여자가 많이 배워봐야 시집 못 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아버지가 유학비를 지원해줄 리가 없었다. 조씨는 일본의 한 신용카드 회사 고객서비스 담당 부서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호텔리어 하다 외국인 여성 파일럿 보고 결심

온종일 일본 고객들을 상대한 덕에 그의 일본어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그는 이 재능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제호텔에서 근무하는 ‘호텔리어’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서울 시내 모든 특급호텔에 이력서를 냈고 1년 만에 힐튼호텔에 입사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그에게 큰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3년 동안 호텔리어로 열심히 일했지만 조씨는 기대했던 것만큼 일에서 재미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 로비에서 한 외국인 여성을 마주한 이후로 조씨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체크인 업무를 보다가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 파일럿이 두 명의 남성 부기장을 거느리고 호텔 정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봤어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죠. 저 나이가 됐을 때 ‘나도 저 여자처럼 누군가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길로 조씨는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비행 훈련을 받기 위해 세 번의 시도 끝에 주한 미 대사관에 입사했다. 토머스 허버드 대사 부부의 비서로 일하며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미공군부대 에어로클럽에서 비행 훈련을 받았다. 그곳에서 1년간 경비행기 조종을 배웠고 2004년에는 미국 델타항공 비행교육원으로 유학을 가 전문 파일럿 교육을 받았다. 교관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항공사 파일럿이 되는 길은 생각보다 좁았다. 당시 항공사들의 채용 기준은 나이 만 29세, 시력은 양쪽 모두 1.5 이상이었고, 조씨는 그 조건에서 벗어나 있었다.

때마침 항공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던 중국은 교관이 부족했다. 미국에서 항공 공부를 마친 조씨는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네이멍구 바오터우의 한 항공학교에서 중국인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중국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2007년 성실하게 교관 업무를 해내는 그를 보고 해당 학교의 고문은 신생 항공사인 지샹항공에 그를 추천했다. 35세에 지샹항공의 부기장이 된 조씨는 2011년 캡틴이 되었고, 현재까지 4,000시간 이상 비행 기록을 이어가며 중국 항공의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조씨는 꿈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이유로 ‘독립심’을 꼽는다. 일찍이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식 교육에 큰 관심이 없던 아버지 밑에서 그는 언젠가부터 홀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법을 터득해갔다. 자라면서 단 한 번도 그는 아버지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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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강한 독립심이 나를 이끌었다”

그는 ‘중국 최초의 한국 여성 파일럿’이라는 수식어에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처럼 파일럿을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여성 파일럿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승객 혹은 화물만 나르는 파일럿이 아니라 희망과 사랑을 나르는 파일럿이 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이 될지 모르겠지만 일본·중국·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는 동북아시아 관계 발전을 위한 일도 하고 싶어요. 물론 제 천직인 비행과 함께요.”

글·백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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