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기상·항법 등 비행에 대한 해박한 지식, 기압차를 극복하는 신체능력과 두려움을 이기는 정신력, 유사시에 대비한 한 박자 빠른 판단력까지. 조종사에게 필요한 자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강한 체력이 있어야 비로소 조종간을 잡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더 적합한 직업이라 여겨졌던 이유다.
이런 금녀(禁女)의 영역에 60년 전 도전장을 던진 이가 있었으니 바로 김경오(80)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다. 김 총재는 대한민국 공군 최초의 여성 조종사다.
“1949년 2월 김포비행장으로 입대했어요. 교장선생님의 추천으로 별생각 없이 지원했는데 3개월 동안의 군사훈련은 그야말로 극한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겠다는 일념으로 이 악물고 버텼죠. 여자라서 못한다는 소릴 듣기 싫었거든요.”
평범한 소녀였던 김 총재에게 조종사란 직업은 사실 우연한 기회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독립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여성 조종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직접 세계를 돌며 독립을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전국 유명 여고에서 지원자를 접수했는데 전국에서 8천여 명이 몰렸다. 여기서 뽑힌 15명의 후보생 중 하나가 김 총재였다.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조종 훈련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죠. 여자는 전투기 조종을 할 수 없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어요. 고작 기상상황 보고, 정비 등이 제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6·25전쟁이 일어났어요. 남자 후보생을 빨리 교육시켜 전쟁에 내보내야 했으니 여자가 설 자리는 더욱 없었죠.”
전쟁 통에 동기들마저 군을 떠났다. 혼자 남은 김 총재는 공군의 골칫거리가 됐다. 수차례 제대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김 총재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자 후배들이 먼저 진급해 조종에 나설 때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끝까지 버텼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우연히 그때 뽑은 여성 조종사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아본 겁니다. 딱 한 명 남았다는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이 ‘그 친구는 반드시 조종사로 만들라’고 지시를 내린 거죠. 당시 참모총장이 제게 오더니 이런 말을 했어요. ‘김 소위, 자네가 이겼어’.”
사천비행장으로 내려가 본격적인 조종 훈련을 받은 김 총재는 1952년 5월 마침내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나자 이 대통령은 다시 그를 불러 미국 민간 항공기술을 공부하고 오라는 제안을 했다. 이 뜻에 따라 김 총재는 1957년 미국 길포드대 항공운항과에 입학했다.
공군 최초의 여성 조종사… 금녀의 벽 허물어
“공부를 마쳤는데 아무래도 빈손으로 돌아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비행기라도 한 대 마련하고 싶은데 돈이 있어야죠. 그릇을 닦는 아르바이트만으론 턱도 없었죠. 그래서 생각한 게 강연이었어요. 6·25전쟁 직후라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컸어요. 미국 전역을 돌며 조국에 비행기 한 대를 가져가, 민간 항공산업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알렸죠. 다행히 그 뜻을 높이 사 곳곳에서 도움을 주셨어요.”
2년 계획이었지만 주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김 총재는 석 달 만에 경비행기 한 대를 마련했다. 미 국무성은 이 비행기를 군함에 실어 인천항까지 옮겨줬다.
1963년 10월 금의환향한 김 총재의 귀국 비행에는 수천명의 인파가 몰렸다. 그가 가져온 이 비행기는 실제로 민간 항공산업의 초석이 됐다. 이후 김 총재는 여성항공협회를 만들고, 여성단체협의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진출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87년에는 여성단체협의회장에 당선돼 6년간 일했다. 1997년 이후 여성이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도 김 총재의 역할이 컸다.
“이젠 전투기 교관도 여성이 하는 세상이니 많이 좋아졌죠. 세계 만방으로 여성 기장이 안 다니는 곳이 없을 정도니까요. 뿌듯하고 기쁩니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았나 싶어요.”
여든의 나이에도 김 총재는 여전히 왕성히 활동한다. 지난해까지 직접 경비행기를 조종했을 정도로 건강하다.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3시 30분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과 온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이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성의 권익 향상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숙제입니다.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더욱 열심히 뛰어야 할 이유겠지요. 혹 차별과 편견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더라도 어깨를 펴고 당당히 세상과 맞서줬으면 좋겠습니다.”
글·장원석 기자 / 사진·전민규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