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눈먼 심 봉사(심학규)를 위해 공양미 삼백 석과 목숨을 맞바꾼 심청은 인당수에 빠지고 이후 황후가 된다.’
여기까지가 당신이 알고 있는 <심청전>이다. 그런데 만약 ‘작자미상’ <심청전>의 작가가 사실 심청 자신이라면? 심 봉사가 맹인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은 ‘2013 아시아 창작시나리오 국제공모전’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아시아스토리텔링위원회가 주관하고 중앙아시아 4개국(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문화부가 후원했다. 우리 고전 <심청전>을 신선하게 각색한 데다 향후 영화, 뮤지컬, 연극 등으로 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호평을 받았다.
“심청은 동양 여성의 특징인 전형적인 외유내강 캐릭터예요.
강단이 있고 책임감도 강하죠. 여기에 제가 살을 붙인 심청은 전문적인 직업(책비)이 있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떠날 수 있는 적극적인 소녀에요.” 김 작가는 심청에게 푹 빠진 듯했다.
그가 이번 작품을 구상하게 된 건 4년 전 광주 MBC 국악프로그램 <얼씨구학당>의 작가로 일하면서다.
“판소리로 접하는 심청은 볼수록 현실의 우리와 많이 닮아 있고, <심청전>은 다양한 문화를 간직한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컬 <캣츠>보다 아름답고 <맨 오브 라만차>보다 웅장한 이야기로 재탄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는 이후 원전을 읽으며 심청에 대해 연구했다. 심청 설화가 등장한 조선 후기의 배경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민문학의 부흥기로 기록되는 이 시기는 언문소설의 대유행기이자 서점과 강독사가 성행했어요. 고전에는 인물의 전형적인 캐릭터만 살아 있고 그 시대적 배경은 생략되어 있잖아요. 그런 역사적 바탕을 세밀화처럼 그리면 어떨까 싶었어요.”

4년간의 치밀한 구상과 준비 끝에 완성
김 작가는 조선 생활사와 전문서적을 탐독했다.
하지만 공부는 단순하지 않았다. 구전설화로 전해지는 <심청전>은 다양한 버전으로 해석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불교·도교적 사상과 토속신앙 등 다양한 사상적 배경까지 공부해야 했다. “파고 또 파도 끝이 없더라니까요”라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심청이 책을 읽어주는 책비, 즉 이야기꾼인 이유는 무엇일까?
김 작가는 “여성 강독사, 낯설겠지만 신분에 제한이 있던 조선에서 똑똑한 여성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었죠”라며 “이는 아시아의 공통문화이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나 중앙아시아에도 직업적 이야기꾼들이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의 ‘박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아킨’, 한국에서는 ‘책쾌’(남성) 혹은 ‘책비’(여성)라는 이름으로 불렸지요.” 심청은 책을 읽어주는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 덕분에 자신의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 속 심청은 작가와도 닮았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꼭 그렇다. “8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몸이 약하셨어요. 시장에서 조그마한 신발가게를 운영했지만 가난했죠. 성실한 분이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매여서 꿈을 못 펼쳐 안타까웠어요. 노래와 기타에 재주가 있으셨는데도 말이죠.”
아버지를 보며 자신만큼은 좋아하는 일을 꼭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창작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우리나라 고유문화에 관심이 많다. 작품에도 잘 드러난다. 1991년 예향 논픽션 공모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며 펜을 잡게된 첫 작품 <어느 촌부의 만가를 찾아>는 염을 하던 큰아버지 이야기다. 이후 21년간 방송작가로 일하며 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뽕백년사>, <한복 2부작>, <굿> 등도 한국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2011년 제주특별자치도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한 전국스토리텔링공모전 수상작품 <추사, 해녀를 만나다>는 추사 김정희가 해녀를 만나 민중의 삶을 이해하는 이야기다.
요즘 기획하는 이야기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열하일기>는 중국까지 이어지는 로드다큐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과거시험장에서 그림을 그려 버리는 ‘조선의 아웃사이더’ 박지원, 정말 매력 있지 않아요?”
김 작가는 <심청전>과 같은 설화에 기대가 크다고 했다. “아시아에서도 꾸준히 다양한 신화·설화를 발굴해야 해요. <손오공> <서유기>를 넘고, 욕심을 부리자면 <로마신화>와 같은 대작으로 이어지도록 계속 노력해야겠죠.”
글·박지현 기자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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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