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8월 22일 농구 프로·아마 최강전 결승이 열린 잠실학생체육관. 결승에서 만난 상무와 고려대는 경기 내내 결과를 알 수 없는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3점슛 대결로 이어지던 경기는 4쿼터 종료 2분 전 터진 이종현(19·2미터6센티미터)의 골밑 슛 한방으로 승부가 갈렸다.
이날 21득점, 리바운드 12개로 활약한 이종현은 대회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됐다. 프로에서도 통할 수 있는 괴물 센터의 등장을 알린 날이었다.
사실 이종현은 깜짝 스타가 아니다. 고려대 1학년인 이종현은 고교 시절부터 서장훈(39·2미터7센티미터)과 김주성(34·2미터 5센티미터)을 합쳐놓은 선수라는 평을 들었다. 유연성과 스피드에 힘까지 농구 선수에게 꼭 필요한 3박자를 고루 갖췄다. 여기에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과 차분한 성격까지 더해 ‘한국 농구의 미래’ ‘차세대 국보 센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재능을 가졌다.
이종현은 초등학교 때부터 주목을 많이 받았다. 실력도 좋았지만 농구선수 출신인 아버지 이준호씨 덕분이었다. 아버지에게 이종현은 철저한 자기관리를 배웠다. 그가 지금껏 별다른 슬럼프에 빠지지 않고 선수 생활을 해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다. 키가 자라지 않을까봐 무거운 것을 메지 않고, 혹 어깨가 굽을까 가방은 최대한 손에 들고 다녔다.
이런 습관은 지금도 그대로다.
한국 농구의 미래를 이끌 재목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중학교 시절 이른 부상이 찾아왔다. 하지만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1년을 유급한 이종현은 휘문중 김성모 코치를 만나 급성장했다.
경복고에 진학한 그는 역대 최고급이라는 팀 동료들과 함께 기록적인 연승 행진을 했다. 그리고 올해 고려대에 진학했다.
왜 고려대였을까. 고려대에는 청소년대표 시절 그와 손발을 맞추던 선수가 많다. 문성곤, 이동엽과는 1년 차이로 같이 뛸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다. 4년을 함께할 13학번 동기로는 최성모, 강상재가 있다. 하지만 이게 이유라면 라이벌인 연세대도 조건에 뒤처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연세대 (김)기윤이 형이나 (김)준일이 형은 2년 차이잖아요. 같이 뛸 시간이 2년밖에 없어요. 사실 (천)기범이가 제게 연세대에 함께 가자고 했거든요. 하지만 고민 끝에 고려대를 선택했어요.”
이종현의 입학과 함께 고려대는 무적 함대로 거듭났다. 철옹성일 것만 같던 상무를 무너뜨리는가 하면, 디펜딩 챔피언 경희대를 누르고 MBC배 대학농구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이변이 없는 한 2013대학농구리그에서도 고려대의 독주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조합, 그 시너지의 중심에는 이종현이 있다.

“좋은 선배들이 많아서 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과언이죠. 워낙 좋은 선배들이 많아서 저는 열심히 뒷받침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정)희재 형이 제 자리였는데, 키가 큰 제가 들어와서 나머지 선수들이 농구하기 더 편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해서 팀이 더 잘된 것 같아요. (이)승현 형도 저 때문에 활동 반경이 넓어졌고. 그런 부분이 팀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저 역시 승현이 형이 저를 받쳐주니까 고등학교 때보다 좀 더 편하고 다양하게 플레이를 구사할 수 있죠. 아무래도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쯤 되면 해외 진출에 욕심이 날 법도 하다. 주변에서도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하지만 실력이 일취월장할수록 그의 대답은 단호하다.
“전혀 생각 없어요. 어릴 때는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현실을 잘 알아요. 제 키에 가드였으면 도전해볼 만한데 아무래도 센터다 보니까 한계가 있죠. 키가 지금보다 더 큰다면 모를까(웃음).”
농구공만 잡으면 표정부터 달라지는 승부사지만 코트 밖 이종현은 영락없는 새내기 대학생이다. 또래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푹 빠져있고, 쉬는 시간에는 좋아한다는 탤런트 고준희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 본다. 그는 대학생의 특권 중 하나인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경치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요. 바다나 산이 좋을 것 같아요. 전지훈련으로 가는 겨울바다 말고요(웃음). 가까운 한강이나 여의도라도 가서 놀고 싶은데, 휴식 시간이 한정돼 있으니까 평소에 가기는 어려워 안타깝죠.”

대부분의 선수는 대학 진학 초반을 가장 힘들어한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종현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게 달라졌다. 당장 생활 패턴부터 바꿔야 했다. 집에서 통학할 때가 많았던 고교 시절과 달리 대학부는 기숙사에서 합숙 생활을 한다.
운동하는 시간이 늘었으니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좋던 고참 시절도 다 갔다. 다시 말단으로 돌아와 연습시간에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그럼에도 이종현의 표정에는 생기가 넘친다.
“고등학교 때와 비교하면 스피드와 힘, 체력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기본에 충실할 생각입니다. 웃으면서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누군가에게 시합은 스트레스의 대상이지만, 이종현에게는 재미있는 게임이다. ‘즐길 수 있는 농구’, 그가 속한 고려대 농구부의 목표이기도 하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그의 키가 아직도 자라듯 땀과 열정으로 후끈 달아오른 코트 위에서 그의 실력 역시 쑥쑥 자라고 있었다. 농구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글·지슬기(KUFS 대학스포츠블로그 대학생 기자단) 201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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