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실이 잘 안 꿰지니?”
“네, 또 빠졌어요.”
“제대로 안 묶고 했지? 실이 너무 길면 잘라서 해야 해.”
“바느질은요?”
“이렇게 간격을 잘 맞춰서 바느질을 해야 돼.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꾸 연습해야 잘할 수 있어.”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장애인 자활센터 ‘맑음터’ 2층에서 권원란 원장과 원생들의 대화가 오갔다. 저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에 열중이었다. 손에 꼭 쥔 천은 수없이 바느질해 꿰맨 실로 빼곡했다. 흰 실로 바느질을 연습 중이던 김정미(45)씨는 색깔별로 능숙하게 꿰맨 친구의 바느질이 부러운 눈치였다.
맑음터 곳곳엔 원생들이 땀 흘려 만든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꽃무늬의 동그란 천바구니엔 보라색 옷을 입은 토끼가 달려 있었다. 암소와 닭이 바느질로 수놓아진 하얀색 쿠션도 보였다. 작은 인형부터 큰 빨간 가방까지 모두 바느질 한 땀에서부터 시작해 완성된 노력의 결과물이다. 원생 여럿이 역할을 나눠 협업해 만드는 방식이다. 권 원장은 “이런 작품 하나를 만들기까지 저마다 5~10년 동안의 노력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맑음터는 지적장애 여성들의 잠재력을 일깨워주기 위해 1988년 설립됐다. 처음에는 지적장애인 5명으로 시작해 현재 26명까지 늘었다. 손바느질을 포함해 카드제작, 한지공예,
천연비누제작 등 직업재활 사업을 하고 있다. 직업재활뿐 아니라 읽기·쓰기·셈하기 등 기초학습 지도와 댄스·연극 등 문화 여가활동 사업도 진행한다.
원생들이 만든 수공예품은 각 지역의 전시장 등에서 판매된다. 센터 내에선 판매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안성에 수공예품 작업장도 만들었다. 권 원장은 “수공예품을 본 사람들이 지적장애인들이 만들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아 많이 사간다”고 말했다. 수년 전엔 수익도 제법 났지만 최근에는 수공예품을 만드는 곳이 많아 예전보단 어려워진 편이다.
하지만 가치는 따로 있었다. 눈에 보이는 수익보다 중요한 변화는 지적장애인들 스스로 도전하는 모습이다. 지적장애 2급인 김영민(30)씨는 맑음터에 처음 왔을 때 말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잠을 많이 자는 것이 대부분의 일상이었다. 맑음터에 온 지 10년 만에 김씨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좋아하는 취미는 공연 보기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묻자 그는 환히 웃으며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2급인 김정미씨는 그림에 푹 빠져 있다. 김씨는 “맑음터에 오기 전엔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림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밝아졌다. 김씨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몇 차례씩이나 힘주어 말했다. 그가 그리기 좋아하는 대상은 꽃이다. 꽃 중에서도 해바라기를 가장 좋아해 김씨의 그림에는 서로 다른 해바라기가 여러 송이씩 활짝 피어 있었다.

“바느질을 더 잘하고 바리스타도 되고 싶어요”
권 원장이 맑음터를 처음 시작한 것도 “지적장애인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적장애인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지내는 것을 보고 가능성을 찾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자활사업을 진행하며 권 원장은 지적장애인들만이 가진 장점들을 발견해나갔다. 수공예품 하나하나를 보여주며 “이 친구들이 만든 수공예품에는 일반인들이 따라 하기 힘든 고유의 개성이 담겨 있다”고 뿌듯해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1시간째, 원생들을 바라봤다. 일반인들은 지루해할 법한 단순한 바느질도 가끔씩 미소만 띨 뿐 성실하게 꿰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수공예품들은 그 노력과 가능성의 결과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맑음터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성과는 ‘협업’이다. 단순한 바느질이 복잡한 수공예품으로 거듭나는 비결이다. 잘할 수 있게 되면 서로의 역할과 결과를 한데 모아 완성품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바느질이 무척 어려웠어요. 오래 연습한 끝에 첫 작품으로 쿠션을 만들었는데 정말 기뻤죠. 바느질을 더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꿈은 카페에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가 되는 거예요. 얼마 전에 원두를 갈아봤는데 재미있었어요.”
지적장애 2급인 박찬영(34)씨는 바리스타 꿈을 이야기하며 환히 웃었다. 맑음터를 나설때 오른쪽 외벽의 타일공예작품을 보며 박씨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웃는 모습과 꽃, 무지개 등 박씨를 비롯한 원생들의 꿈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이었다. 타일은 원생들의 모습과 닮았다. 그저 무심히 지나쳤을 법한 타일이지만 맑음터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외벽 장식으로 탄생했다. 권 원장의 꿈은 지적장애인들이 도전하며 자활해 보다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맑음터에 원생들의 꿈 하나하나를 새기고 있다.
글·남형도 기자 /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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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