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오빠, 언제 와?”
“저녁에 약속 있는데….”
“그래? 그럼 난 빵 먹을게. 일찍 와. 술 많이 먹지 말고.”
나와 아내는 결혼 1년차 신혼부부다. 물론 우리 집에도 밥솥이 있지만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장모님이 “밥 잘 챙겨 먹어!” 하시며 잡곡을 섞은 쌀을 페트병에 고이 담아주셨지만 우리 집에서는 거의 장식용이다.
나는 직업의 특성상 저녁 약속이 잦고 아내는 보통 빵이나 과자 같은 간식으로 때운다. 한번은 주말에 요리를 한답시고 밥을 했다가 2주일 후 누룽지처럼 말라비틀어진 잔해(?)를 발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빠, 햇반이 더 경제적이겠어.”
“이그젝틀리!(100퍼센트 옳아!)”
아침식사 역시 당연히 없다. 대신 두유를 챙겨 먹는다. 둘 다 밥보다는 늦잠을 선택하는 편이고, 아내도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아침밥 차려달라는 요구를 할 수는 없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첫날, “첫날이라 준비했어” 하며 아침을 차려준 게 마지막이다. 그 밥상을 마주하고 너무 웃겨서 먹지도 못한 채 사진만 찍어 출근한 기억이 있다. 아내는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만들 일이 없으니 당분간 실력이 늘지도 않을 거다.
전혀 상관없다. 모든 여자가 요리를 잘할 필요는 없으니까.

다림질은 아내, 분리 수거는 내 담당
집안일은 대부분 함께한다. 아직 아기도 없고 음식을 해먹는 것도 아니니 집안일이랄 게 많진 않다. 그중에서 내가 아내에게 가장 고마워하는 일은 다림질이다. 다림질은 8년간의 연애를 끝내고 내가 ‘결혼을 해야겠다’ 결심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별로 깔끔한 성격이 아닌데도 굳이 옷만은 다려 입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와이셔츠부터 바지, 티셔츠까지 일주일만 지나도 다려야 할 옷이 산더미다. 그래도 아내는 “결혼 전에 약속한 거니까”라며 꼬박꼬박 챙겨준다.
반대로 아내는 귀찮아 미뤄둔 집안일을 내가 알아서 해줄 때 가장 고마워한다. 제때 세탁기를 돌리거나 너무 피곤해 그릇을 잔뜩 쌓아둔 싱크대를 깔끔하게 정리해줄 때가 그렇다. 아내가 좋아하니 나도 아내 몰래 집안일을 해놓는 ‘우렁총각(?) 놀이’를 즐기게 됐다. 바닥 청소와 걸레질은 주로 아내가 하고 분리 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내 담당이다.
하나 더, 거실 테이블 정리는 내 몫이다. 아내는 테이블 위를 6개 구역으로 나눠 요일별로 채워나가는 습성이 있다. 일요일이 되면 테이블 위는 아이스크림 빈 통, 과자봉지, 영어 공부를 한 A4 용지 등으로 가득 찬다. 나는 책상이나 테이블 위에 뭐든 두는 걸 싫어한다. 잔소리라도 할라 치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에이, 한꺼번에 치워야 청소하는 맛이 난다니까.”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나도 언젠가부터 일주일 정도는 참을 수 있게 됐다.
자기주장 강한 나, 집에선 달라
“오빠, 나 봄옷 하나만 사도 돼?”
“사. 내 것도 사주고.”
살림살이는 아내 몫이지만 그렇다고 경제권을 모두 넘긴 건 아니다. 경제권이 어느 하나에 치우치는 순간 부부 관계에서 평등이 사라진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돈을 어디에다 쓸지 사소한 것도 의논하게 된다. 귀찮기도 하지만 대화가 늘어 나쁠 건 없다.
사실 나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논리와 타당성을 따지는 걸 즐기고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가 누구든 지적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다르다. 안과 밖을 구분해야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1년 새 배웠다. 내가 두 살 더 많고 호칭도 ‘오빠’지만 나는 아내에게 무언가를 지시하지 않으려 애쓴다. 선배와 후배로 만난 탓에 나도 모르게 아내가 아닌 동생으로 대할 때가 있다는 걸 잘 안다.
“오빠, 이번 어버이날에 용돈 얼마씩 드리지?”
“20만원? 30만원?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결혼을 하니 신경 써야 할 집안일이 많아졌다. 부모님이 두 분 더 늘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친가와 처가를 굳이 나눠 생각하지 않는다. 용돈도 늘 같은 액수로 드린다. ‘딸은 시집가면 끝’이란 말은 옛말이다. 처가는 집 근처고 친가는 지방이라 자연히 처가를 더 자주 왕래한다. 반대로 1년에 몇 번 못 가는 시댁이니 시집살이랄 것도 없다. 물론 아내 입장에선 시댁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위압감이 있겠지만. 어머니가 가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 시집살이 좀 시켜야 하는데” 하며 농담을 할 정도다. 세 명이나 되는 시누이도 좀처럼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자주 뵙지 못하는 대신 스마트폰 커뮤니티를 이용해 자주 안부를 전한다. 근처에 놀러 나온 사진부터 저녁때 먹은 요리까지 시시콜콜해 보이는 모든 것을 공유한다. 이 또한 효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버이날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여기저기 다녀왔다는 얘길 했더니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부러워하시는 눈치다. 다음 주말엔 두 분을 모시고 통영에 갈 계획이다.
결혼 1주년 기념해 미국 여행 계획
“미국 어때? 오빠는 안 가봤잖아.”
“좋지. 서부? 동부? LA 가서 류현진 경기 보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6월이면 결혼 1주년이다. 슬슬 2세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혹 임신 이후 회사에서 불이익이라도 받을까 걱정하는 아내를 제법 오래 설득했다. 아기 키우다 보면 돈이 있어도 못 간다는 말에 휴가를 당겨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매일 술 먹고 늦는 남편을 기다려주는 아내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 돈은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쓸 수 있을 때 써야 한다. 여기저기 물어가며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1년 전 결혼 준비를 하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오빠, 뭐 해요? 기사 써요? 쓰레기통 좀 비워주면 안 돼요?”
아내는 부탁할 때만 높임말을 쓰는 습관이 있다. ‘바쁜데 귀찮게’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다림질 쿠폰’을 얻으려면 나도 뭔가 하나는 해야 한다. 친구 같은 아내, 친구 같은 남편. 우린 그런대로 재미나게 산다.
글과 사진·장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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