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우리는 해보고 싶은 게 많을 뿐이다

1

 

지난해 12월 서울 합정동의 카페 ‘공공장소’에 스티키 몬스터 랩(Sticky Monster Lab·SML)의 새 피규어 출시를 기념한 파티가 열렸다. 피규어는 영화·만화·게임 등에 나오는 캐릭터를 축소해 거의 완벽한 형태로 재현한 인형을 말한다. 폭설을 뚫고 100여 명의 팬이 몰렸다. 그중에는 어머니와 함께 온 중학생 소년도 있었다. 이들에게 SML은 스타였다. 다투어 새 피규어를 구입하고 SML의 사인을 받았다.

스티키 몬스터 랩은 디자이너 부창조(34)·최림(34)씨, 프로듀서 김나나(34)씨, 피규어 디자이너 강인애(33)·황찬석(32)씨, 마케팅 디렉터 여준영(43)씨 등 6명으로 구성된 창작집단이다. 그래픽디자인·피규어·광고·3D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하고 있으며 CJ·대우건설·나이키를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기업과 협업을 해오고 있다.

“신비감을 깨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꺼리던 그들을 지난 3월 18일 서울 합정동의 카페 ‘공공장소’에서 만났다. 몬스터들의 본거지다. 1층 카페는 이들과 홍보대행사 프레인, 인디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매니지먼트사인 두루두루AMC가 공동 운영한다. 2층은 작업실이다. 인터뷰에는 강인애·부창조·최림·황찬석씨가 동석했다.

먼저 SML의 정체가 궁금했다. 카페도 하고, 화분도 만들어 팔고, 피규어는 물론 티셔츠와 아이폰 케이스도 제작하고, 자동차 외장 디자인까지 하는 이들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SML조차도 명쾌하게 내리지 못했다.

“우리도 그게 고민이다. 따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계속해보고 싶은 게 많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뭔가를 만들어내고, 창의적인 작업을 쏟아내는 팀들이 10년 뒤엔 큰 팀이 되어 있더라. 우리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시작은 2007년이었다. 최림씨는 “광고 제작사에 다니며 하청의 하청쯤 되는 일을 하다가 뭔가 ‘내 일’을 하고 싶어서,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박차고 나왔다”고 술회했다. 동종 업계에서 일을 의뢰하던 관계인 부창조씨와 의기투합했고, 영화제 기획자인 김나나씨를 영입했다. 제작자만으로 시작하는 여느 팀들과는 다른 시작이다.

 

2

 

“사람들이 가진 콤플렉스를 캐릭터에 적용”

<러너스(The Runners, 2007)>로 처음 등장해 지금껏 사랑받는 ‘몬스터’ 캐릭터는 이때 탄생했다. 이들의 첫 단편 애니메이션 <러너스>는 이런 내용이다. 육상대회에 참가한 몬스터 청년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해 좌절한다. 힘없이 돌아가던 그가 길바닥에 버려진 와플을 실수로 밟게 되었는데, 신발 밑창에 붙은 와플이 쿠션처럼 충격을 흡수한 데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와플신발’은 선풍적 인기를 끌고, 파리 날리던 와플 가게는 신발회사로 거듭난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외톨이에게 분홍 강아지가 나타나 친구가 된다. 외톨이의 생활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컴필레이션 음반의 영상물로 제작된 <로너(The Loner, 2011)>다. 이렇게 대사도 없이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통통 괴물들이 펼치는 단순한 연기에 전 세계 팬들이 열광한다.

“이건 내 얘기야!”

스티키 몬스터 랩의 몬스터 캐릭터는 단순하지만 때로는 현실의 어두운 면에 일침을 가한다. 심플함 속에 감정의 심오한 의미를 담아내어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돈은 덜 받아도 재미있고 오래 끌고 갈 일 선호

사실 땅콩 모양의 팔 없는 통통 괴물들은 뭘 해도 어색하다. 누구나 가진 콤플렉스, 누구나 겪는 관계의 어려움, 누구에게나 있는 비틀린 내면을 대변한다. ‘몬스터 가상세계’를 통해 우리는 때로 현실 그 자체와 대면한다. 이 무국적 스타일의 몬스터들은 곧 SML 멤버들이자 또 우리가 아닐까.

“사람들이 가진 콤플렉스를 캐릭터에 적용했다. 팔 없는 아이, 머리가 분리된 아이 등 캐릭터는 단순할수록 많은 걸 얘기할 수 있다. 표정도 없다. 슬플 때 슬픈 얼굴 비추는 것보다 뒷모습 보여주는 게 더 슬프니까”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의 작업이 상업적 결실을 보기 시작한 건 2010년 월드컵 때 나이키와 협업하면서다. 첫 작업인 ‘레스페스트(RESFEST) 디지털영화제’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계기로 이 영화제의 후원사인 나이키와 일하게 됐다.

SML은 이후 영역을 확장해 피규어 디자이너·마케터를 영입했다. 나이키와 런던올림픽 한정판 티셔츠를, 닛산 큐브 자동차의 한정판을 만들기도 했다.

‘파리 푸비즈 어워드 2012’ 애니메이션 부문 최고상, ‘미국 더 크리에이터스 프로젝트 2011’ 베스트 애니메이션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돈벌이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수입은 이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할 때도 있다.

이들은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무게를 두다 보니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지킬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즉, 돈을 덜 받더라도 재미있고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이다.

SML에 마지막으로 ‘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디자이너 최림씨는 “디자인은 취향이다. 우리의 이야기,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우리의 취향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영상과 책으로 제작한 <파더(The Father, 2009)>의 경우 어려서 음악한다고 속 썩인 내 모습, 은행에 다니다 명예퇴직하신 아버지, 그리고 그 무렵 취직한 사촌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누구는 취직하고 누구는 그 일자리에서 밀려나며, 부모에게 잘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지금 신혼인데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인터뷰 중 가장 많이 한 말은 ‘하고 싶은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것. 아마 모든 사람들의 로망일 터다.

SML은 그런 면에서 남들에게 ‘꿈’이 되고 있는 존재다. 막연하지만 그들은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자신을 지키면서, 무너지거나 타협하지 않으면서.

글·권근영(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