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0년 전인 2004년 3월. 서울의 한 나이트클럽 무대에 허술한 링이 쳐졌다. 그곳에서 종합격투기대회가 열렸고 한 선수의 데뷔 무대가 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2014년 3월 1일 마카오에서 열린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에서는 그 선수의 두번째 데뷔 무대가 있었다. 상황은 달랐다. 10년 전에는 무명의 선수였지만 이번엔 한국 챔피언의 입장으로 나선 것. ‘코리안 불도저’ 남의철(34·팀 파시) 선수가 주인공이다.
남의철 선수가 격투기 세계에 입문한 계기는 남들과 다르다.
그는 원래 유도를 비롯해 다양한 격기(格技) 중계를 즐겨 보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다 군에 입대했고, 당시 케이블TV를 통해 하루 종일 중계되던 K-1(타격만 가능한 입식 격투기 대회), 프라이드(조르기 등이 가능한 종합 격투기 대회)를 보고 막연한 동 서른넷 나이에 남의철 선수는 로드FC 챔피언 자리에서 내려와 UFC에 진출해 데뷔 무대를 승리로 장식했다.
경에 사로잡혔다. 군 전역 후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저녁만 되면 체육관에 나가 격투기를 연습하며 ‘이중생활’에 돌입했다. 단순히 코치의 훈련에 따르기보다 해외경기를 빠짐없이 챙겨 보며 그 선수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몸에 익혔기 때문에 체육관 내에서는 상대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서 아마추어 격투기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체육관 코치는 “실제 대회에 한 번 나가서 기량을 점검해 보자”며 대회 참여를 권했다. 두려움과 기대감 속에서 고민하던 남 선수는 ‘한번 부딪쳐보자’고 마음먹었다. 나이트클럽 무대에 급조된 특설 링에서 펼쳐진 그의 데뷔전은 예상을 깨고 압승으로 끝났다. 실력 차이가 확연했다. 이후 3년간 남 선수는 개인 전적 무‘ 패’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2006년 드디어 한국에서도 프로 격투기 대회가 시작됐다. ‘스피릿MC’라 불린 이 대회는 1군 대회에 앞서 2군(인터리그)을 운영하며 선수들의 실력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남 선수의 무패행진은 여기서도 이어졌다. 1군 대회에 참가해서도 계속해서 승리를 따냈다. 프로 데뷔 2년여 만에 스‘ 피릿MC’를 대표하는 간판선수로 성장해 라이트급 챔피언벨트를 따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문제가 생겼다. 하루아침에 대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후 M-1이나 LEGEND FC 등 해외 대회에 출전한 남 선수는 생애 첫 패배를 맛봤다. 납득하기 힘든 판정패도 많았다. “선수생활에서 가장 지쳐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막의 오아시스가 바로 ‘로드FC’였죠.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어 국내 프로 격투기 선수들에게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를 준 단체입니다.”
2010년 출범한 ‘로드FC’는 남 선수의 바람대로 국내 격투기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마추어 선수 육성과 더불어 메이저급 선수들을 초청해 대회의 질을 높였다. 남 선수는 ‘탈 아시아급’으로 평가받던 일본의 쿠메 타카스케 선수를 상대로 승리하며 라이트급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어 재도전한 쿠메 선수를 다시 이겨내고 1차 방어전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오른손등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상대방의 헤딩이나 주먹에도 밀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남 선수의 경기 스타일 때문이었다. 남 선수의 이런 화끈한 경기는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단체인 UFC 스카우터에게도 알려졌다.
3·1절 한·일전 승리… 신인 자세로 끝없는 도전
서른넷. 격투기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다. 노장, 베테랑으로 평가받던 남 선수는 스스로 챔피언 자리에서 내려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드디어 UFC와 정식 계약했다. 전적이 전혀 없는 ‘신인’으로 출발선에 섰다. 첫 경기도 바로 일정이 잡혔다. 2014년 3월 1일, 3·1절 대전 상대는 일본 선수였다. 언론에서는 마치 한·일 국가대표 경기인 것처럼 보도했다.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남 선수의 생각은 달랐다.
“UFC 진출을 앞두고 가장 부담됐던 건 3·1절이나 일본인 선수와의 대결이 아닌 로드FC 챔피언 출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벨트를 반납하고 UFC에 왔는데 나의 패배로 로드FC의 위상을 떨어뜨릴 수는 없다고 다짐했지요.”

드디어 3월 1일 남 선수의 데뷔전이 열렸다. 1라운드부터 자신의 별명인 ‘코리안 불도저’ 특유의 저돌적인 공격을 초반에 앞세워 일곱 살이나 젊고 리치도 10센티미터나 긴 도쿠도메의 기를 꺾었다. 주먹을 쉴 새 없이 꽂아넣으며 코너에 몰아넣었다. KO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빠른 승부를 내려다 체력을 급격히 소비했고, 이를 버텨낸 도쿠도메의 그라운드 기술에 고전했다. 3라운드에 다시 적극적인 공세로 주도권을 가져온 끝에 결국 판정에서 승리했다. 남 선수는 이날 UFC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이날의 경기) 보너스 상금 5만 달러(약 5,300만원)를 로드FC에 쾌척하기로 했다. 국내 격투기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을 알기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5월 초까지는 지난해 골절상을 입었던 오른손등뼈가 또다시 부러져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남 선수는 빨리 다음 경기를 원하고 있다. 격투기의 어떤 매력에 빠져 부상의 연속과 노장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도전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종이 울리고 주먹 하나로 두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꺼내어놓고 승부하는 사나이의 대결이라는 점이 매력인 것 같습니다. 또한 국내 격투기계에서의 제 역할도 도전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격투기는 우리 인생과 비슷합니다. 팔각 케이지 안에서의 고통은 잠깐일 뿐이죠. 순간을 견뎌내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선배들에게 배웠습니다. 이제 그것을 후배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계속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UFC 첫번째 한국인 챔피언이 될 수도 있겠죠!”
글·김상호 기자 2014.03.24
<위클리 공감> 블로그(koreablog.korea.kr)에서 남의철 선수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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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