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발레리나 강수진,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무용가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세계에 알려지기 전 이미 130여 개국을 돌며 한국 전통 춤을 소개해 유명해진 이가 있다. 바로 국수호(66) 디딤무용단 단장이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 무’ 이수자로 국립무용단장과 중앙대 교수를 역임한 그는 88서울올림픽 개막식,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 등 주요 국가행사 안무를 도맡았다. 지난 3월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회관에서 열린 그의 춤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공연 <춤의 귀환>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무대였다. 한국 창작무용의 대명사로 불리는 국 단장의 50년 춤 이야기를 한곳에서 오롯이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이다.
국 단장은 1964년 전주농업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농악대에 들어갔다 춤의 길로 빠져들었다. 당시 농악대 지도를 맡았던 전주 권번(券番) 출신의 정형인에게 남무(南舞·조선시대 기녀들 사이에 유행했던 사교무용)를 배우며 본격적으로 춤사위를 익히기 시작했다. 이어 서라벌예대와 중앙대 대학원을 거쳐 경기 승무(僧舞)의 대가인 박금슬 선생에게 10여 년간 지도를 받았다.
“이때가 제 춤의 기본이 잡힌 기간이라 생각해요. 고교와 대학교를 거치며 같은 동작을 10년 가까이 해 왔으니까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했는지, 버선발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발 모양이 버선처럼 돼 버렸지요.”
학교를 마치고 1972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하게 된 국 단장은 또 한 명의 스승을 만난다. 당시 국립무용단의 송범 단장이었다.
그는 국 단장의 춤사위를 한번 보고는 “너는 주인공 맡아야 할 놈”이라며 국립무용단의 인기 공연인 <왕자 호동>의 주인공을 맡겼다. 호동 역을 맡은 이후로 그는 저녁 시간을 연습하는 데 ‘올인’했다.
국 단장은 계속해서 한영숙·김천흥·박병천 등 쟁쟁한 무용인에게서 우리 춤의 멋과 맛을 익혔다. 무용만 공부한 것도 아니었다.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전통 춤을 창작하는 데도 열의를 보였다. 서라벌예대에서는 연극, 중앙대 대학원에서는 민속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1980년대 들어 직접 안무를 하면서 그의 활동은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우리 고대 설화를 토대로 <북의 대합주>(1985), <대지의 춤>(1987), <땅의 소리, 춤>(1989) 등의 작품을 발표해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춤은 즉흥성보다 문학성이 있어야 존재한다고 생각해 안무를 시작했어요. 요새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 전통 춤도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서사시처럼 만들어야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표현하는 러시아 발레가 탄탄한 문학적 기반 덕에 명작으로 남았듯이 한국 춤도 그런 문학성을 기반으로 세계를 향한 작품을 내놓아야 할 때라 생각했죠.”

“이제 전통 춤극 위한 전용무대 마련돼야”
1999년에 공연한 <북의 대합주> 사진만 보고 한국으로 날아온 유럽 공연기획사 유로스테이지와 공동 기획한 <코리안 드럼>은 3년 동안 유럽 70여 개 도시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는 한국 문화수출상품 1호 공연으로 한국 춤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당시 한국 전통 춤을 전공하는 후배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었어요. 발레나 현대무용에 비해 작품활동도 많은 편이 아니었죠.
조금 더 다양한 춤을 만들기 위해 기획한 건데, 오히려 외국에서 먼저 기립 박수를 받았죠. 북을 다스릴 줄 아는 우리 북춤에 외국인들이 매료된 것 같았어요.”
국 단장은 우리 전통예술의 계속된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가(歌)·무(舞)·악(樂)이 함께 어울리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옛날 양반댁에는 큰 마루가 있어 창도 하고 춤도 췄죠. 마당에서 풍물패가 판을 벌리면 대문을 활짝 열어 온 동네 사람이 구경했어요. 서양식 극장 무대가 들어오면서 한국적 구조가 사라졌는데, 지금의 일반 극장에서는 한국 무용의 독특함을 살릴 수 없어요. 집 구조에 따라 의식주가 달라지는 것처럼 걸음걸이도, 춤사위도 달라질 수밖에 없죠.”
국 단장은 중국 이화원극장의 경극 무대, 일본 국립극장의 가부키 무대처럼 우리 춤 공연에 맞는 무대를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락한 집이 있어야 미래 설계가 가능한 법인데, 집도 없는 상태에서 발레나 현대무용과 경쟁하려니 본질을 잃는 겁니다. 든든한 집이 있으면 그 안에서 창작활동이 활발해집니다.”
이번 50주년 기념 공연 <춤의 귀환>은 그가 고민해 온 한국 춤 전용 무대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또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간 발표한 작품은 물론 처음 선보이는 춤이 3편이나 되었다.
장편 춤극으로 구상 중인 셰익스피어 <리어왕>에서 발췌한 <고독>, 거문고 춤 <금무> 외에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용호상박>이 공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국립무용단 스타플레이어 이정윤과 함께 용과 호랑이가 싸우듯 겨룹니다. 국립무용단의 남자 주인공 출신 선후배들이 춤으로 한판 대결을 벌이는 것이지요. 판소리 <적벽가> 중 ‘자룡이 활 쏘는 대목’을 판소리 주자 네 명이 북을 치면서 리드하는 박진감 넘치는 무대입니다.”
50주년 기념 공연을 끝마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시 샘솟고 있다는 국 단장. 앞으로 <용호상박> 공연을 언제 다시 무대 위에서 선보일지 모르지만 아직 보여줄 게 많다며 천생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글·김상호 기자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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