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위치한 한 아파트 상가 3층. 미용실, 미술학원 등이 빼곡하게 들어찬 이곳에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바로 ‘비전택시대학’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사무실이다. 33평방미터 남짓한 공간에 기다란 회의용 책상과 10여 개 의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벽 한 편에는 보라색 빛깔의 감사패들이 일렬로 즐비하게 놓여 있다. 지난 12월 2일 이 대학의 총장을 맡고 있는 택시기사 정태성(59) 씨를 만났다.
비전택시대학은 국내 최초 택시대학이다. 택시기사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서비스·안전 등에 대해 교육한다. 이 대학은 2년제 무료로 운영된다. 택시기사인 학생들은 매주 일요일 오후에 나와 3시간가량 강의를 듣는다. 7개월 동안 빠지지 않고 강의에 참석하면 기본과정 1기 수료를 인정받는다. 지난 12월 1일에는 12명의 택시기사들이 택시대학 1기 수료생이 됐다.
‘총장’보다는 ‘기사님’이라는 호칭이 편하다는 정씨는 “교육부 인가를 받은 정식 대학은 아니지만 국내에 하나뿐인 ‘택시대학’을 만들었다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16년째 택시기사 일을 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직장도 다니고 사업도 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하던 사업이 망했다.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장병을 앓던 큰딸이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던 딸마저 떠나고 나니 그에겐 더 이상 세상을 살 이유가 없어졌다.
“한동안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죽으려고 잠실대교 앞까지 갔어요. 막상 뛰어내리려고 갔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이대로 죽을까’ ‘다시 살아볼까’를 수십 번 고민하다 잠실대교를 따라 무작정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잠실 교통연수원 앞까지 가게 됐어요. 그때 마침 수많은 택시기사들이 교육을 받고 건물 밖으로 나오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30대 초반 신용불량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으니까요.”
이후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한번 택시에 타면 10시간 넘게 내리지 않은 날도 부지기수였다. 한 달에 한번 목욕탕을 가고 이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위해 쓴 돈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며 빚을 갚아갔지만 그것만이 그의 목표는 아니었다. 그에겐 국내 최초의 ‘택시대학’을 세우겠다는 꿈이 있었다.
“처음부터 택시기사가 장래 희망이었던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들 각자의 마음속에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택시기사가 된 거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같이 떠밀리듯 택시를 모는 기사들도 즐겁고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택시대학’을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비웃기도 합니다. 택시기사들이 무슨 대학에 가냐는 말이죠. 하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직업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남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택시기사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었죠.”
정씨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9년 친절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MK택시에서 외국인 최초로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다.
MK택시는 도쿄, 교토, 오사카 등 일본 8개 도시에 지사를 둔 일본의 최대 택시·리무진 서비스 기업으로 ‘친절을 파는 택시’로 유명하다. 그는 이곳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기 위해 3년 동안 공을 들였다.

일본과 영국 택시서비스 방법 직접 배워와
정 씨는 우선 MK택시에 연수를 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1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어떤 답도 듣지 못했다. 이후 그는 방법을 바꿔 정부기관, 대기업들에 추천서를 써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다행히 기업 두 곳에서 추천을 받아 다시 MK택시에 편지를 보냈지만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MK그룹 유태식 부회장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 그는 국회 본관으로 가서 부회장을 기다렸다. 놀랍게도 유 부회장은 그가 보냈던 편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인연이 돼 그는 외국인 최초로 한 달간 연수를 받았다. 2년 전에는 영국 런던을 방문해 ‘블랙캡’ 택시의 서비스 방법을 배워오기도 했다. ‘블랙캡’ 택시는 서비스 면에서 세계 선두를 달린다.
“MK택시, 블랙캡은 각각 일본과 영국의 얼굴입니다. 외국 여행객들이 공항을 나와 처음 접하게 되는 게 바로 그 나라의 택시입니다. 한 나라의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브랜드입니다.
그런 만큼 택시기사들도 자신들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최고의 서비스를 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비전택시대학’이 현실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에게 사무실 한 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보라색 빛깔의 감사패에 대해 물었다. 정씨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모시고 싶은 강사들을 위해 미리 감사패부터 준비해 놓았다”며 “아직은 여건상 강사들을 많이 모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이분들을 모셔 ‘택시대학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마련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글·김혜민 기자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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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