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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형 씨 “여행 작가의 꿈 싣고 ‘김치버스’ 몰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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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유럽을 400일 동안 돌며 ‘김치’를 홍보한 청년이 있다. 여행 작가로서, 또 요리사로서의 꿈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모험이었다. 여행 초기에는 냉담한 반응에 힘들었지만 몇 달 되지 않아 한국문화원과 대사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김치 요리를 맛보고 싶다는 외국인들의 요청이 빗발쳤다. 세 청년은 일정이 허락하는 한 유럽 어디든지 찾아가 김치로 만든 카나페와 부리토, 그리고 김치전을 소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성공적인 유럽 일정을 마치고 이젠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을 겨냥해 새로운 여행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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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던 ‘김치버스’가 이젠 ‘꿈을 이뤄주는 요술봉’이 된 것이다.

류시형 씨는 경희대 조리과학과를 다닐 때부터 궁금한 게 한가지 있었다. ‘우리나라 식탁에는 밥과 김치가 매일 오르듯이 유럽 사람들에게 일상화된 음식에는 뭐가 있을까?‘ 이 궁금증을 풀려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기로 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무작정 유럽으로 떠났다. 200여 일 동안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가정식을 경험했다. 현지인과 어울리며 살아 있는 문화를 배웠다. 귀국 후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했다. 그 사이 자신의 첫번째 유럽 여행을 정리한 내용이 책으로 발간됐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요리사를 꿈으로 정하고 중학생 때부터 10년 가까운 시간을 노력해 왔던 그의 꿈이 ‘여행 작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요리 또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첫번째 여행이 무전 여행에 가까운 ‘맨땅에 헤딩’이었다면 이번에는 자동차로 넓은 곳을 보며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경험도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비용이 걱정됐다. 고민 끝에 일단 ‘버스’를 타고 숙식을 해결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세계 일주를 계획했다. 장기간 여행을 계획한터라 보다 면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다른 여행 작가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해외 여행을 많이 다녔던 친구들과 회의도 나눴다.

회의 중에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버스로 여행하니 버스에 애칭을 붙여 여행 주제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제안이었다. 그때부터 버스 앞에 붙일 단어를 찾았다. 그저 재미있기보다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단어로 정하고 싶었다. 긴 고민 끝에 전 세계인이 알 만한 한국을 상징하는 단어인 ‘김치’가 낙점됐다.

‘김치버스’라 이름 짓고 나니 김치 홍보와 여행을 겸한 색다른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문제는 차량과 김치 조달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구상은 끝났지만 실제 조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출발하기로 했던 예정 시간에서 2년이 흘렀다. 하지만 늦어진 대신 든든한 조력자를 얻었다. 같은 과 선후배인 김승민 씨와 조석범씨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5년 이상 알아온 ‘절친’이며 요리 실력도 출중한 현직 셰프들이어서 든든했다. 출발일이 몇 차례 미뤄진 끝에 대기업의 지원금과 지자체의 김치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SNS로 수소문해 전국에 22대밖에 없는 중고 캠핑 버스도 어렵게 한 대 구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2011년 10월 23일 대장정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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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은 고추의 기원 따라가는 ‘칠리 로드’

첫번째 목적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통관에 사흘이 넘게 걸린다는 현지 관리자의 답변에 발만 동동 굴렀다. 김치는 상온에 두면 금세 시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버스 안에 힘들게 설치한 김치냉장고를 밖으로 꺼내 김치를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난관은 시베리아의 동장군이었다. 한겨울에 섭씨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날이 부지기수인 시베리아는 차량 횡단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횡단을 시작했다가 차가 얼어붙으면 꼼짝없이 얼어 죽을 수도 있다. 결국 모스크바까지는 철도를 이용한 뒤 버스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다시 김치버스를 만나는 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한국을 떠난 지 45일째 되던 날 류 씨는 김치버스에 첫시동을 걸었다. 모스크바를 벗어나 우크라이나 국경을 통과한 뒤 꼬박 하루 걸려 수도 키예프에 닿았다. 이후 약 210일 동안 북으로는 노르웨이, 서로는 영국, 남으로는 스페인 땅끝 마을까지 유럽 전역을 샅샅이 훑었다. 김치버스의 여정은 북미 대륙에서도 계속됐다. 우선 뉴욕에서 플로리다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무려 1,5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또 발생했다. 잘 달리던 김치버스가 멈춰서 버린 것.

3“원래 몽고메리 카운티에서 행사가 예정돼 있었어요. 하지만 차가 멈췄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다음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하하. 내가 누굽니까. 명함에 나를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라고 소개해 놨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류 씨와 김치버스는 시카고,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해 최종 목표지인 샌프란시스코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총 400일 동안 27개국, 130여 개 도시를 방문하면서 53회의 김치요리 시식 행사를 가졌다. 시식 행사의 주 메뉴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요리할 수밖에 없어 김치 카나페, 김치 햄버거, 김치 부리토 등의 퓨전 음식과 밀가루만 있으면 언제든지 부칠 수 있는 김치전이었다.

“예상 외였습니다. 김치 햄버거보다 먼저 김치전을 접시에 담아가 호호 불어가면서 먹는 외국인의 모습에 저희들도 놀랐죠. 한국 전통음식이 세계로 나가는 데 퓨전보다 있는 그대로 나가는 것도 경쟁력이 있겠다 싶더라고요.”

대장정을 마치고 2012년 11월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류 씨는 여러 매체를 통해 연일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김치버스 또한 도로를 달릴 때면 누구나 알아보며 반가워해 유명세를 탔다. 현대해운에서는 김치버스를 세계 어디에든 실어주겠다는 협찬 약속도 받아냈다. 지난해 가을에는 짧게나마 한국과 일본에서 ‘김치버스 시즌 2’를 진행했다.

“이제 더 잘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시작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랄까요. 이제 시즌 3의 준비가 끝나갑니다. 함께하는 멤버도 늘었고, 차량도 현지에 가서 한 대 더 빌릴 생각입니다. ‘김치알리기’는 여행의 동기이자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꿈을 완성시켜주는 목‘ 표’가 되었습니다.”

류 씨는 김치버스 멤버들과 함께 올해는 중남미를 둘러보는 여행계획을 짰다. 주제는 고추다. ‘칠리 로드’라 명명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고추의 원산지를 찾아 한국 김치가 빨갛게 바뀐 계기가 무엇인지, 또 고추 원산지의 고추 요리는 맛이 어떤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또한 세계인의 축제인 브라질 월드컵 한복판에서 한국 김치를 알리고 한국 축구도 응원하겠다는 목표다. 중남미 여행은 끝이 아닌 반환점이라고 말하는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 류시형 씨. 앞으로 그의 김치 행보가 지구촌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글·김상호 기자 / 사진·류시형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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