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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4학년 이정호 씨 오토바이로 유라시아 15개국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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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다녀보자.” 청년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여행 경비를 스스로 버는 데만 꼬박 9개월이 걸렸다. 오토바이는 자주 고장나 말썽을 부렸고, 길 위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여행 중간중간 처했던 위험도 많았다. 하지만 청년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7개월 동안의 여행 끝에 청년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라시아대륙 15개국의 땅에 그의 오토바이 바퀴가 지나갔다. 도전에 성공한 청년은 여행 전과 많이 달라졌다. 여행에서 힘든 돌발상황들을 겪으며 성장했다. 잘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건국대에 다니는 이정호(28)씨 이야기다.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이 씨가 오토바이 위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썩 잘 어울렸다. 그의 삶은 오토바이와 닮았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씨가 오토바이 여행을 결심한 것은 취업 경쟁에 뛰어들어야 할 대학교 4학년 때였다. 그는 다른 나라와 문화권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여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 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선택했다. 이유를 묻자 이 씨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싶어서였다고 답한다. “자동차로 여행을 하면 차도 이외에는 달릴 수 있는 곳이 없잖아요. 오토바이는 길이 아닌 곳을 다닐 수 있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요. 그래서 오토바이로 결정했죠.”

여행의 첫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1천만원 넘게 드는 여행 경비가 문제였다. 학교를 휴학하고, 꼬박 9개월 동안 여행 경비를 벌었다. 네 가지 아르바이트를 한꺼번에 했다. 주중엔 은행에서 격일로 청원경찰을 하고, 쉬는 날에는 전공을 살려 두 곳의 유적지에서 가이드를 했다.

밤이나 주말에는 지인의 햄버거 가게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텐트값, 비행기값, 기름값 등에 필요한 1,500만원을 모았다.

여행 수단인 오토바이는 한 제조업체의 지원을 받았다. 나름대로 작성한 여행계획서와 마케팅 제안서를 들고 무작정 기업을 찾아가 후원을 요청했다. 이 씨는 “오토바이 뒤에 제조업체의 로고가 달린 박스를 달고 여행하겠다고 했다”면서 “그쪽에서 흔쾌히 승낙해 오토바이와 수리에 필요한 부품 일체를 지원받았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출발해 영국에 이르기까지 15개국을 다니는 일정이었다. 이 씨는 지난해 5월 12일 동해항에서 오토바이를 배에 싣고 러시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시작해 몽골·터키·불가리아·세르비아·헝가리·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체코·독일·이탈리아·프랑스·영국 순으로 여행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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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아르바이트로 여행경비 1,500만원 마련

7개월간의 여행 끝에 그가 느낀 것은 뭘까. 그는 “사는 방법이나 문화는 달랐지만 사람 사는 정은 통했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일화를 들려준다. “몽골 울란바토르에 머물때였죠. 오토바이 타이어에 구멍이 나서 마을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밤늦게 도착한 터라 모든 숙소가 문을 닫았어요.

이곳저곳을 헤매는데 한 마을 사람이 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죠. 며칠 머무르며 친해지자 마을을 떠날 때까지 환대해 줬어요.”

난감한 적도 있었다.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다. “인적이 드문 길에서 오토바이가 고장났어요. 서너 시간을 기다려도 아무도 지나가지 않더라고요. 방법을 궁리한 끝에 러시아 오토바이 동호회 홈페이지에 도움을 청하는 글을 올렸죠. 그러자 한 시간도 안돼 도움을 주겠다는 답변이 달렸어요.”

이 씨는 러시안 바이커들의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옮겨 수리를 맡겼다. 오토바이를 고치는 5일 동안 이 씨는 홀로 숙소에 머물러야 했다. 그가 심심하지 않도록 러시아 친구들이 매일 찾아왔다.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파티도 열어줬다.

이 씨는 “문화는 각각 다르지만 지내면서 얘기하다 보면 결국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도와주고 재워주고 먹여주는 사람들을 보며 정은 통한다고 느껴 고마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긴 여행이다 보니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다. 러시아를 여행할 때였다. 300킬로미터 가까이 오토바이를 달렸지만 마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 씨는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다. 나중에 현지인들에게 얘기하니 위험할 뻔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씨가 머물렀던 곳은 오토바이 여행자 두 명이 변을 당한 곳이었다. 12월 3일 이 씨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는 떠나기 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 씨는 “가장 큰 배움은 용기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여행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많이 겪고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을 많이 겪었지만, 차분히 하나씩 대처하다 보니 해결이 되더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여행 초반에는 겁도 많이 났지만 하다 보니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젠 뭘 해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오토바이 여행에서 이 씨는 한 가지를 더 얻었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는 생각이다.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달릴 때였습니다. 거기는 오토바이 바퀴 자국만 있으면 그게 길이었죠. 길이 없어도 도전할 수 있다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돈이나 명예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죽기 전에는 즐겁게 살았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글·남형도 기자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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