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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계속하고 싶은 간절함이 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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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41·가명), 유통업체 19년간 근무
섬세함·배려로 직장 내 평판 관리…육아는 부모님 도움

국내의 한 유통업체 식품품질관리과에 근무하는 김미정(41·가명) 과장. 그는 올해 입사 19년 차로 조직의 허리를 맡고 있는 중간 간부다. 올해 열두 살, 일곱 살 된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1994년 대학에서 식품가공학을 전공하고 유통업체에 입사한 그는 회사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출장도 많고 야근도 많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 하지만 중간 관리자로 성장하기까지 그에게도 세 번의 위기가 닥쳤다.

처음 위기는 입사 5년째에 접어들었을 때다. 남성 동기들이 초급 간부로 발령을 받을 때 그는 진급을 하지 못했다.

“똑같이 열심히 일해도 남성들과 똑같은 대우를 못 받는다는 생각에 너무 억울했죠.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참았어요. 시간은 걸렸지만 조직에서 저의 가치를 조금씩 인정해 주시더군요.”

그가 조직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진리 중 하나는 섬세함과 배려심이었다. 동료나 선후배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챙겼고, 상사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입사 5년 이전엔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듣거나 좀 부당하다고 생각돼도 절대 나서지 않았어요. 배운다는 자세로 주변을 살피면서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물론 맡은 일은 철저하게 했고요.”

남성 동기들보다 진급은 좀 늦었지만 그는 부서 내에서 성격 좋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판이 났다. 지금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개인사까지 김씨에게 의논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에게 닥친 나머지 두 번의 위기는 첫째와 둘째 아이를 출산한 2002년과 2007년이었다. 아이들을 출산하기 전과 후의 직장생활은 질적으로 달랐다. 첫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다 결국 집에서 1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친정 부모에게 염치 불구하고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고는 본인의 의지만으로 버티기가 벅찼다. 친정 부모도 더 연로해져 둘째 아이까지 맡기기가 양심상 꺼려졌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도 직장을 그만둘 결심이 서진 않더라고요. 경제적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 일이 있고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게 좋았어요.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육아의 벽을 넘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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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진(38·가명), 주류업체 15년간 근무
회식자리 한번도 안 빠져… 24시간 어린이집 적극 활용

심수진(38·가명)씨는 15년째 국내 주류업체의 제품개발 지원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여느 직장 여성들의 사례처럼 그도 육아가 가장 큰 문제였다. 늦은 결혼으로 2008년 아이를 가졌지만, 아이를 양가 부모에게 맡길 수 없었다. 양쪽 어른들이 모두 연로했기 때문이다.

아이 때문에 그만둘까 고민했지만 그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이 좋기도 했지만 양가 부모들에게 들어가는 의료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심씨가 택한 건 24시간 어린이집이었다.

“24시간이라고 하지만 오후 7시쯤 되면 대부분 부모가 퇴근해 자기 아이를 데려가요. 하지만 저와 남편은 야근이 잦은 직업이라 어린이집 원장께 사정을 해 아이를 늦게까지 맡기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는 남편과 번갈아 일찍 퇴근해 아이를 데려오길 반복하며 꿋꿋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 퇴근하면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등 온전히 아이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만, 회사에서는 남성 동료들과 동등하게 일을 하고 회식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출근하면 아이 생각은 철저히 잊는 것도 그가 터득한 노하우다.

“주류회사라 회식이 많아요. 회사 돌아가는 얘기들은 주로 회식 자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여자라고 이리저리 빠질 생각은 아예 안 했어요. 회식이 있는 날은 미리 남편에게 아이를 데려와 달라고 양해를 구했죠. 대신 주말에는 철저하게 아이와 스킨십을 하며 놀아주죠. 가정이든 직장이든 제가 있는 곳에서 올인했던 것이 둘 다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선희(42·가명), 대기업 9년·지방직 사서 9년간 근무
대기업 퇴직하고 일과 가정 병행 가능한 공무원 전직

안선희(42·가명)씨는 2004년 9급 공무원에 합격한 후 올해로 9년째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아이는 중학교 1학년생, 초등학교 3학년생 둘이다. 그는 기업체보다 출퇴근이 규칙적인 공무원이 된 게 꿈만 같다.

안씨는 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공채에 합격해 부푼 꿈을 안고 회사에 다녔지만,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 위기가 닥쳤다. 1998년 첫 아이를 임신 3개월 만에 유산한 것. 오전 7시에 출근해 다음 날 2시, 3시에 퇴근하는 날이 많아 약한 체력으로 견디기가 힘들었다. 유산의 아픔을 겪고도 꿋꿋이 회사를 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2000년 심씨는 다시 어렵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 뒤 고민에 빠졌다.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체력적으로 버티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어렵게 입사했던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죠.”

갓난아이를 친정 부모에게 맡기고 전전긍긍하며 회사를 다녔던 심씨는 결단을 내렸다.

“여성이 일을 한다는 게 우선 자기가 행복하고 경제적 도움도 얻기 위해서인데 제 자신이 행복하지 않았죠. 출퇴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이도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일은 공무원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안씨는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틈틈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간 시험 공부에 몰두한 결과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1년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는 이 기간을 ‘경력단절’의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했다.

“만약 제가 대기업의 명성에 매여 무리하게 버티고 있었다면 일과 가정, 건강 모두를 지킬 수 없었을 겁니다. 무모했지만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던 게 14년째 워킹맘으로 살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죠.”

글·박미숙 기자 / 일러스트·김회룡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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