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펑펑” “지지직”
여기저기서 불꽃이 터지고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6.6평방미터 남짓한 작은 방에서 교육생들이 용접 작업에 한창이다. 지난 8월 20일 인천 중구에 위치한 ‘대주·KC 인재개발원’ 내 현장실습실 모습이다.
한 무리 남학생들 사이로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쇼트커트에 작업복을 입은 모습이 얼핏 보면 여느 남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용접면(용접할 때 강한 빛이나 열로부터 얼굴과 눈을 보호하는 기구)을 벗고 얼굴을 드러내자 선이 고운 모습이 영락없이 여성이었다. 황현숙(39)씨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보호 기구를 착용하지 않고 용접 작업을 지켜보면 눈에 안 좋다”며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보안경을 내밀었다.
황씨는 20여 명의 교육생들 중 유일한 ‘홍일점’이다. 황씨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용접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이곳에서 용접 기술을 배우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엔 한국공업직업전문학교에서 3개월간 용접수업을 들었으며 지난 4월엔 용접기능사와 특수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황씨가 ‘용접사’라는 꿈을 갖기 전 그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2년을 제외하고는 11년 동안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음식을 만들고 집안 청소를 하는 일이 즐거웠다. 그러나 1년 전부터 우울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동안 지내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어느 것 하나에 열정을 쏟은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울증이 오고 힘들었어요. 이대로 40대가 되면 앞으로 계속 후회하며 살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정말 불안하더라고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던 차에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황씨의 아버지는 직접 신발장을 만들고 지붕을 수리할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황씨도 아버지를 닮아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20대 초반 자취를 할 때는 버려진 나무를 주워와 사다리와 선반을 만들어 사용했다.
“제가 즐거워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니까 그게 용접이더라고요. 용접은 손재주가 좋아야 잘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어떤 것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아버지가 늘 존경스러웠는데 이번에야말로 그 일을 찾아서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죠.”
그 길로 한국공업직업전문학교 특수용접과정에 등록했다. 남편이 알면 반대할 것이 두려워 몰래 등록을 했다. 역시 남편의 반대는 거셌다.
“말도 못해요. 얼마나 뭐라고 했는지 몰라요. ‘남자도 힘들어하는 일을 여자가, 그것도 집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이 어떻게 할 거냐’ ‘가지 마라’고 했죠. 남편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다 말렸어요. 여자가 용접사가 된다고 하는 게 사람들 눈엔 이상했던 거죠.”

“태어나서 요즘처럼 공부 열심히 해본 적 없어요”
그러나 황씨는 주위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짧으면 3일, 길면 1주일 해보고 그만둘 것이라는 남편의 예상과 달리 3개월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단 하루도 수업을 빼먹지 않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도 싹둑 잘랐다.
“용접을 하는 데 머리가 길면 불편하거든요. 그리고 남학생들 사이에서 긴 머리로 눈에 띄고 싶지 않았어요. 머리가 짧다고 해서 여자가 아닌 게 아니잖아요. 남편이 아쉬워하기는 했지만요.”
현재 황씨는 대주·KC 인재개발원에서 현장 실무용접 기능과정을 듣고 있다. 이곳에서 황씨는 ‘황형’으로 통한다. 남자 교육생들과 워낙 스스럼없이 어울리다 보니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또한 황씨는 용접 실력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났다.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황경재 교수는 “보통 용접사들은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한 손만을 사용하는데 현숙씨는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다 보니 자세를 바꾸지 않고도 용접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이라서 그런지 작업을 아주 꼼꼼하게 잘한다”며 “용접에 대한 욕심이 워낙 많아서 앞으로 연습만 더 하면 얼마든지 훌륭한 용접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곳에서 용접 기술을 연습한다. 화기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얼굴에 불똥이 튀는 일도 부지기수다. 철강 용어를 익히면서 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황씨에게는 이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겁도 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어요. 용접을 잘하려면 금속을 많이 알아야 해요. 금속의 성질, 종류 등을 공부하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즐겁게 하고 있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황씨는 교육과정을 마친 후 용접사로 취업을 할 예정이다.
아직 회사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일할 계획이다.
“용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들보다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하지만 늦었다는 생각보다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해보려고요. 그래서 나중엔 ‘용접의 달인’으로 불리는 게 제 꿈이에요.
혹시 저처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시선, 상황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일단 시작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꿈만 꾸고 망설이다 보내는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거든요. 조금 더디더라도 한번쯤은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들을 생각해보고 도전하면 좋겠어요.
여성이라고 안 된다는 건 말 그대로 ‘편견’이랍니다!”
글·김혜민 기자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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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