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도전과 모험을 즐긴다. 타협의 대상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우리 나이로 38살에 메이저리그(북미 프로야구)에 입성한 임창용(시카고 컵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에 대한 시선은 늘 물음표였지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의 끝은 늘 해피엔딩이었다. 임창용은 수차례 고비를 딛고 일본으로,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선 미국으로 진출한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다.
임창용은 2010년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에서 인생의 첫 번째 반전을 이룰 당시 후배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지 않느냐. 아끼면서 살고, 야구를 하면서도 벌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자.” 30대 중반이었던 임창용의 야구관은 뚜렷했다. 굳이 돈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면서 스스로와의 싸움을 즐겼던 것이다.
광주 진흥고를 졸업한 그는 1995년 KIA의 전신인 해태에 입단해 4시즌을 뛰며 역대 최강 사이드암 투수로 이름을 알렸다.
물 흐르듯 유연한 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속구가 일품이었다.
삼성으로 이적한 후 프로 통산 9시즌 동안 104승 66패와 168세이브, 평균 자책점 3.25를 올렸다. 30세이브 이상을 4차례 거뒀고, 3차례 구원왕에 오르며 오승환(삼성)의 등장 이전까지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다. 선발 투수로도 5시즌에 두자릿수 승을 올릴 만큼 보직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활약했다.
잘나가던 그에게 첫번째 고비가 찾아온 건 2005년. 선동열 감독의 부임 첫 시즌이자 임창용의 자유계약선수(FA) 첫해였다. 그는 마무리에서 선발로 보직을 옮겼지만 5승8패에 평균 자책점 6.50이라는 데뷔 후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결국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2006년 재활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2007년에도 기량은 회복되지 않았다. 5승7패에 평균 자책점 4.90. 고민하던 임창용은 예상을 뒤엎는 선택을 했다. 일본 진출. 삼성은 2년 FA 계약이 끝나는 임창용을 놓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임창용은 “정체된 나를 깨우고 싶었다”는 말로 지인들의 만류를 뿌리쳤다. 야쿠르트가 임창용의 커리어를 인정해 영입했지만 당시 연봉은 2년에 고작 1,500만엔(약 1억2,400만원)이었다. 하지만 돈은 그의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재활과 훈련… 수호신으로 거듭나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임창용은 드라마틱한 반전에 성공했다. 체계적인 재활과 훈련을 거치면서 팔꿈치 상태가 좋아졌고, 오히려 전성기를 웃도는 최고시속 160킬로미터의 강속구를 되찾았다.
단숨에 야쿠르트의 ‘수호신’으로 거듭난 임창용은 2011년까지 4시즌 동안 128세이브를 기록했다. 특히 2010년에는 1승 2패 35세이브와 평균 자책점 1.46을 기록해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대우와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하지만 시련은 또 찾아왔다. 2012년 또다시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다. 야쿠르트는 복귀 기약이 없던 임창용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세간의 예상을 뒤엎는 선택을 했다. 시카고 컵스와 스플릿 계약(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연봉이 다른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진출 꿈을 타진했다. 야쿠르트에서 검증된 임창용이었기에 재활을 마치고 일본에 남을 경우 괜찮은 몸값에 새 둥지를 찾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미련 없이 꿈을 찾아 떠났다.
마이너리그에서 피나는 재활에 매진한 임창용은 루키리그와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거치며 꾸준히 안정된 투구를 선보이더니 지난 9월 5일(이하 한국시간) 극적으로 40인 로스터에 포함됐고, 8일 홈구장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밀워키전에서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이로써 임창용은 이상훈(고양 원더스 투수코치), 구대성(시드니 블루삭스), 박찬호에 이어 4번째로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섭렵한 한국 선수가 됐다.
직구 최고 95마일 ‘뱀직구’ 부활
임창용은 9월 19일 밀러파크에서 열린 밀워키전에 등판해 한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데뷔 첫 삼자범퇴를 기록했다. 17일 데뷔 세번째 등판에서 첫 자책점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 듯했지만, 불과 이틀 뒤인 네번째 등판에서 삼진 2개를 포함해 완벽투를 펼친 것이다. 특히 직구 13개만으로 강타자들을 제압했다. 직구 최고 구속도 시속 95마일(약 153킬로미터)까지 끌어올려 ‘뱀직구’의 부활이 멀지 않았음을 알렸다.
임창용은 삼성 소속이던 2002년에도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거쳐 미국행을 타진한 바 있다. 당시엔 65만 달러라는 형편없는 입찰금액 탓에 포기했지만 결국 우리 나이 서른여덟에 빅리그 무대를 밟게 됐다.
2008년 일본 진출 당시 외국인 선수로는 최저 연봉을 받았던 임창용은 이번에도 2년간 최대 500만 달러(약 54억원)라는 적은 액수에 계약을 체결했다. 그마저도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하면 보장받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돈보다 꿈을 좇은 임창용의 선택은 항상 더 귀한 가치를 입증했다. 임창용은 빅리그 승격 당시 컵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염소의 저주와 100년 동안 우승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염소의 저주는 1945년 컵스팬 빌리 사이아니스가 자신의 염소를 데리고 리글리필드에 입장하려다 거부당한 뒤 구단에 악담을 퍼부었고, 이후 컵스가 월드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걸 빗댄 말이다. 새로 입단한 선수가 팀의 약점에 대해 콕 집어 이야기한 셈이다. 평소 성격처럼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임창용이 과연 ‘염소의 저주’를 풀 해결사가 될지, 내년 시즌이 더 기대된다. 임창용의 ‘마이웨이’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글·성환의(한국일보 기자) 201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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