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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의 벗 33년… “봉사할 수 있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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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건(81) 원장은 1964년부터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입구에서 평범한 치과를 운영해 왔다.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치과 진료를 하다 보니 손님들이라고 하지만 다들 이웃이다. 강 원장도 이들을 손자, 손녀, 아들, 며느리처럼 친근하게 대한다.

그는 이따금 주변 학교를 빌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치과 진료를 해 왔다. 시장 상인들은 그를 “마음씨 좋은 치과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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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영천시장 사람들은 깜짝 놀랄 뉴스를 접했다. 치과 할아버지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강 원장이 받은 훈장은 천주교 신자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십자가 훈장’이었다. 이웃을 위한 의료봉사 활동만 봐왔던 사람들은 순간 의아해했다.

“옆집 할아버지가 대체 어떤 엄청난 일을 했길래 저렇게 대단한 상을 받았을까?” 이웃들은 주말마다 병원문을 닫은 강 원장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몰랐다. 강 원장은 자신의 행선지를 알린 적이 없었다.

강 원장은 마흔 중반까지 솜씨 좋고 친절한 의사로 살았다. 그러던 중 1979년 기공사 봉사 모임을 따라 경기 포천에 있는 한 한센인 마을을 찾게 됐다. 당시만 해도 한센인 마을은 의료시설이 대단히 열악했다. 치과 의료시설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불편한 교통으로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접근할 수 있다 해도 일반인들은 거의 찾지 않았다. 한센병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다.

강 원장은 의료봉사 첫날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능력이 한센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하루 갔다와서는 별 효과가 없어. 딱 6개월 동안만 봉사해 보자”고 생각했다. 6개월 봉사활동을 마치고 난 뒤 강 원장은 또 다른 결심을 했다. ‘봉사하는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이후 강 원장은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무려 33년 동안 주말마다 한센인 마을을 찾았다. 1만5천명이 넘는 한센인을 만나 의료봉사를 지속했다. 전국 방방곡곡 한센인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대부분 찾아다닌 것이다. 교통이 불편하고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은 한센인 마을에 가서 의사, 간호사, 기공사로 1인 3역을 해 냈다. 그는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봉사를 이어갔지만 진료 대상자에게는 종교를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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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대상 진료는 생업에 지장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봉사활동에 빠진 그에게 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완전 무료로 치과 치료를 했다.

하지만 한 지인의 조언에 따라 치료 때마다 시가의 5퍼센트 이내로 최소한의 재료비를 받았다. 하지만 강 원장은 그마저도 받기 부끄러워했다. 자신의 수입 중 3분의 1인 1억4천만원을 한센인 관련 단체에 수시로 기부했다.

주말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주중에는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주중에는 가톨릭대학교, 인근 병원이나 학교 등에서 무료 구강검사를 해 주며 지냈다. 드러나지 않던 봉사활동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2년 말이다. 연로한 나이 탓에 치과 진료와 봉사활동을 그만두게 되면서다. 인생의 절반을 봉사하는 삶으로 살아온 그는 그저 “봉사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글·박상주 기자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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