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각선미가 돋보이는 여성들이 멋진 패션으로 치장한 채 바삐 걸어간다. 구두와 가방, 액세서리, 옷들이 형형색색 화려하다. 빨강 파랑 등 원색을 사용한 과감한 색채와 거친 듯 부드러운 곡선이 캔버스를 채운다. 현대 여성들의 활기찬 모습부터 북적이는 도시인들의 일상을 담은 작품으로 가득 찬 <시티즌-도시인들의 풍경> 전시회에서다.
독특한 이력의 작가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열세번째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경력 25년차 화가이자 서울 용산소방서 현장지휘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주경(52) 작가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박 작가는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앵데팡당(독립미술)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예술상인 ‘국제앙드레말로협회 대상’을 수상했다. 국제앙드레말로협회는 프랑스의 대표적 문호인 앙드레 말로를 기념하기 위해 1996년 창립돼 문화예술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인사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아직 수상의 기쁨이 가시지 않은 듯한 그는 “고흐와 마티스가 출품했던 곳에 그림이 걸린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상까지 받아 황홀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시된 박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현대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수상작 <시티즌-유혹><시티즌-거리에서> 등 6점은 높은 구두를 신고 각선미를 드러낸 여성들의 실루엣을 블라인드 사이에 비치는 것처럼 형상화했다. 한 발자국 물러나서 보면 마치 두개의 그림을 겹쳐놓고 보는 기분이다. 박 작가는 “여성의 행복은 사회에서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데서 온다”며 “그런 역동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중 화면을 띄운 것 같은 ‘블라인드 기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작품 설명을 할 때만큼은 어린 소녀처럼 한층 격앙됐다. “그림만 생각하면 항상 흥분된다”는 그는 “그림 없이는 숨도 못 쉴 것 같다”고까지 표현했다.
보통 한 작품당 열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박 작가는 영감이 떠오르는 즉시 스케치를 해 둔다. 평소에는 퇴근하자마자 잠들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고 주말에는 스케치 모임을 나갈 만큼 그림 그리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되는 두 가지가 붓과 소방호스
그는 독신이다. “(가족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직업과 예술, 가족 모든 걸 가질 수 없어 ‘포기하면 절대 안 될 것’을 선택했는데 그게 붓과 소방 호스였네요.”
박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미대에 갈 수 없었다. 불문학과 학생 시절이던 22세 때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돈을 벌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1984년 네 명의 여성 소방공무원을 뽑는 공채에 5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이후 줄곧 취미로만 그림을 그려오다 1990년 ‘대한민국 공무원미술대전’에서 수상하며 화가로서의 첫발을 뗐다. 여성 소방관이자 화가로 이중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작가로 등단하기 전 입사했으니 박 작가의 공식적인 직업은 소방관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 홍보본부에서 20여 년간 일하다 지난해 초 현장지휘대장을 맡게 됐다. 서울에서 유일한 여성 현장지휘대장이다.
현장지휘대장으로서의 박 작가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그는 “예술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것”이라며 “소방관은 급박한 상황에서 빠른 대처능력을 요구하는 역동적인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끔찍한 사고현장에 노출되는 것이 무섭지 않으냐고 묻자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신기하게도 직업이 사람을 만들더라고요. 여성 소방관 역할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는 다시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앞으로 여성 현장지휘대장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여성 소방관은 전략적인 부분에서 세심하게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한 명 한명도 절대 소홀히 대하는 법이 없다. 이번 초대전의 주요 작품인 <시티즌-도시남녀>나 스페인 광장을 그린 <로마의 휴일>에는 100여 명의 다른 인물이 제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꼼꼼히 그려져 있다. “절대 생략기법은 쓰지 않습니다. 신발, 머리카락까지도 일일이 다 넣어요.” 사람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소방관과 화가의 닮은 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소방관이 생명을 구한다면, 화가는 그림으로 영혼을 구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어느 직업도 내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며 “숟가락 들 수 있는 힘이 있을 때까지 예술활동을 하고 싶고 다리에 힘이 있는 한 현장에서 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글·박지현 기자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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