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수확의 계절. 바야흐로 가을이다. 수많은 이미지로 휘황찬란하게 치장된 가을은 그럼에도 외롭다. 가을은 사람들에게 어중간하게 인식된다.
뭔가 실체가 없는 느낌이다. 여름에는 열정, 겨울에는 강렬한 추위, 봄에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희망이 있다. 하지만 가을에는 희망과 열정이 사라지고 잿빛의 쓸쓸함과 허무함이 남는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이런 ‘가을’을 대변하는 남자다. 이상의 세계로 상징되는 ‘달’에 도달하지 못하고 현실적 고뇌가 사방을 지배하는 ‘6펜스’의 세계에서 그는 끊임없이 신음한다. 6펜스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그의 공허를 채워주지 못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부유하는 꿈을 찾아 허우적대는 모습, 희망과 열정 그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마는 가을과 같은 모습들. 이건 우리네 인간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인간이 생을 지속하는 데 강력한 동인(動因)이 된다. 마치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이 끊임없이 존재 의미를 되묻는 것처럼 생을 사는 것은 경계를 걷는 것과 동의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경계의 계절’ 가을에 이러한 ‘경계’가 한국에서 가장 잘 구현된 곳은 어디인가 생각해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부산 영도의 절 영해안 산책로다. 부산 영도구 영선동 1가, 길이 3킬로미터. 그러나 이곳에는 수식어나 수치로는 계량화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조성된 산책로는 어떠한 인공물의 조성 없이도 스스로가 명확한 경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는 소설 속 ‘달’처럼 당장이라도 자신에게 안기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바로 뒤쪽으로 대비되는 영도구의 육지는 이런 대비에 극적효과를 더해 준다.
영도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대도시 부산으로 곧장 이어지지만 동시에 바다라는 몽환적 세계와 가장 긴밀하게 닿아 있다. 시끄럽고 역동적인 현실의 육지와 이상이 주유하는 바다가 극적으로 연결돼 있는 곳. 이 가을 그들을 나누는 경계인 산책로를 한 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굳이 이곳이 아니라도 좋다. 당신만의 장소, 당신만의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당신의 가을을 만끽하시길. 쓸쓸한 가을을 뭔가로 꽉 채울 수 있기를.
글·류호준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2학년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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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