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장애인 아픔 아니까”… 보장구 족집게 수리

1

 

2“수리 다 됐다고 그냥 가지 마시고, 근처 한 바퀴 돌면서 다른 이상은 없는지 잘 살펴보고 오세요.”

지난 11월 11일 서울 성동구 마장동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내 장애인생활클린센터. 유인식(52) 실장이 막 수리를 끝낸 전동휠체어를 몰고 나가려는 방영락(69·종로구 돈의동) 씨에게 당부했다. 방 씨는 복지관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들어와 “뒷바퀴 쪽에서 덜그럭 소리가 난다”고 했다. 유 실장이 다시 손을 봤다. 잠시 뒤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휠체어에 얼굴이 환해진 방 씨는 “이래서 여기만 찾는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성동 장애인생활클린센터는 장애인 자립에 필요한 복지상담과 보장구 관련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시설이다. 지난 2009년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1층에 30평방미터 규모로 문을 열었다.

등록 장애인에 한해 보장구 수리 및 세척, 배터리 충전 등을 부품값만 받고 무료로 해 준다. 부품값도 성동구민이라면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은 연간 20만원, 비수급자는 10만원까지 지원한다.

유 실장은 “장애인들은 자신의 몸이 불편하니 정비 점검에 소홀하기 쉽다”고 말했다. “올바른 사용방법이나 관리요령을 모른채 사용하는 분들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작은 고장이 큰 고장이 돼서야 이곳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는 전부 오른손잡이용으로 수입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 따라 왼손만 사용가능하거나 발, 턱만으로 조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때로 개별 맞춤형으로 개조해야 한다. 이곳 장애인클린센터에서는 개조도 비용을 받지 않고 해 준다. 이런 작업을 척척 해내는 유 실장 자신이 3급 지체장애인이다.

유 실장은 19세 때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중학교 졸업 후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방황하다가 군입대 전 생활비를 벌겠다고 일거리를 찾아간 제주도에서 경운기 사고로 오른쪽 무릎 10센티미터 아래 부분을 영영 잃게 됐다. 그 후 3년간 실의에 빠져 집에서 지냈지만 삶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유 실장은 장애인시설에 다니며 재활훈련을 했고 서서히 건강을 회복해 나갔다.

그러던 중 1985년 한국소아마비협회 산하 정립회관 주최로 알프스 스키장에서 열린 국내 첫 장애인 스키캠프에 참가해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만나게 된다. 이듬해 다시 참가한 스키캠프에서는 일본장애인스키협회 소속 강사 3명이 초청돼 와서 장애인용 보조스키를 도입해 외발스키를 가르쳤다.

사비 들여가며 국가대표로 출전

초급코스 30여 미터를 걸어 올라갔다가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게 전부였지만, 유 실장은 “보장구 없이 맨몸으로 달리는 것 같은 속도감에 짜릿한 희열을 맛봤다”고 했다. 그 후 그는 겨울마다 스키를 탔다. 사람들은 “다리도 없는데 무슨 스키냐”고 했지만, 그에게는 생활고와 장애의 아픔을 잊고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삶의 희망이었다.

당시 국내에는 장애인 스키대회가 없어 협회 차원에서 몇몇 선수를 훈련시켜 국제대회에 내보냈다. 스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유 실장은 다른 선수 한 명과 함께 1992년 제5회 프랑스 알베르빌 장애인 동계올림픽에 우리나라의 첫 장애인 국가대표 스키선수로 참가하게 됐다. 이를 위해 1989년부터 매년 겨울마다 한달 정도 스키장 부근에 숙소를 잡아 생활하며 맹훈련을 했다. 훈련비·생활비는 건설노동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자비부담을 했다. 그렇게 1994년 제6회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1998년 제7회 일본 나가노 장애인 동계올림픽까지 참가했다.

그 사이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다.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유 실장의 어려운 사연을 들은 아내가 돕겠다며 찾아온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은 다른 장애인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나갔고, 1992년 결혼했다. 첫째,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그는 국가대표를 그만두었다.

기술교육으로 생업과 보람 찾아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던 그는 한동안 아파트 알뜰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했다. 새내기 주부들에게 인터넷을 뒤져 공부하면서까지 김치 맛있게 담그는 법을 친절히 알려준 덕분에 장사는 잘됐다.

그러던 중 2011년 또 한 번 생의 전기를 맞았다. 인터넷으로 성동 장애인생활클린센터 홍보영상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이 설 자리는 없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장애인들에게 기술교육을 해 주고 일자리까지 찾아주는 곳이 있다니. ‘아! 이거다’ 싶었죠.”

그 길로 성동구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간 유 실장은 보장구 기술자 교육과정에 등록했다. 이후 6개월 동안 주 5일 하루 8시간씩 강도 높은 교육이 이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교육을 받은 유 실장은 이후 여러 보장구 수리업체에서 근무하다 올해 2월 성동 장애인생활클린센터 실장으로 부임했다. 전임자가 나가자 졸업생이었던 그에게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이곳 센터는 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문을 열고 하루 평균 12건가량 보장구 수리를 한다. 유 실장은 이곳에서 보장구수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같은 아픔이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교감하며 서로 위로를 나눈다.

“같은 장애인들에게 봉사하면서 생업도 할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일하며 제 손으로 그분들의 불편함을 줄여드리고 싶습니다.”

글·남창희 객원기자 2014.11.17

보장구 수리 문의 성동 장애인생활클린센터 ☎ 02-2290-3140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