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 금호119센터 전상기 소방위 11년째 매달 10만원씩 지원

전상기(48) 소방위는 지난달 기쁜 소식을 들었다. 전 소방위가 2002년부터 3년간 매달 후원했던 학생이 서울대 박사과정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을 조기졸업하고 석사공부를 한다더니 이제 박사님이 된다네요”라며 자식 자랑을 하듯 멋쩍게 웃었다.
전 소방위는 11년째 동료들과 돈을 모아 가정형편이 어려운 고교생을 후원하고 있다. 2001년 독거노인을 돕기 위해 홀몸가구 봉사활동을 시작한 전씨는 예상 외로 노인뿐 아니라 혼자 사는 청소년들도 많아 놀랐다. “단칸방에서 어렵게 사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더니 ‘돈이 없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 아들하고 비슷한 나이인데 가난 때문에 힘들어하는걸 보니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던 전 소방위는 소방서 동료들과 매달 10만원씩 모으기로 했다. 그 돈으로 구청에서 소개받은 고교 1학년생 한 명에게 졸업 때까지 3년 동안 후원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단칸방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형제·자매·조부모와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원은커녕 문제집 사기도 힘든 형편이었어요. 가끔씩 기죽지 말라고 옷과 신발도 사 주곤 했습니다. 이제는 친자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 명이 졸업할 때쯤이면 또 다른 한 명을 후원했다. 그렇게 네명을 졸업시켰고, 지금은 고1 남학생을 돕고 있다. 매달 적금을 들어 학생들이 졸업할 때마다 “대학 학비에 보태라”며 전하기도 했다.
그는 1년에 두 번씩 후원하는 학생들을 고깃집으로 부른다. 한창 크는 나이여서 먹고 싶은 게 많을 아이들에게 고기라도 실컷 먹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자신을 ‘소방관 아저씨’로만 소개한다. 이름과 직장은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전화나 편지도 못하게 했다. 학생들이 부담을 느낄까 봐 걱정돼서다. 그 때문에 주변에서는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 부른다.


26년 경력의 소방관인 전 소방위는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하다가 봉사를 결심했다. 그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현장과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했다.
“당시 현장에서 사지가 떨어져 나간 시신 수백 구를 봤습니다. ‘삶과 죽음이 단 몇 초 차이구나’라는 걸 깨닫고 나니 ‘돈이나 명예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나만 위해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1995년부터 각종 복지관이나 병원에 후원을 시작했다. 17년간 월급을 쪼개 서울 미아동 성가복지병원, 적십자사, 성동사회복지관, 자양사회복지관에 후원금을 내고 있다.
근무가 없는 날에는 두 아들과 함께 독거노인 등을 찾아가 도배와 빨래 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뿐만 아니라 헌혈도 많이 해 ‘헌혈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1981년부터 지금까지 총 4백7차례 헌혈을 했다. 4백회 이상 헌혈한 사람은 전국에 18명뿐이다. 지난 3월에는 이 공로로 청와대에 초청도 받았다. 그는 “30여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고향 친구 덕분에 헌혈을 시작했다”고 한다.
“친구가 해병대에 지원해 입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병원에서 ‘혈액이 없다’고 난감해하기에 혈액형이 맞는 저와 또 다른 친구가 헌혈을 해 친구의 목숨을 살렸지요.”
이후 전 소방위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정기적으로 헌혈을 했다.
헌혈증은 50장씩 모아 뒀다가 혈액암 환자들에게 전달했다. 헌혈증이 있으면 적은 비용으로 수혈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환자 12명에게 헌혈증을 기증했다. 그중 두 명이 완치됐다. 그는 헌혈증을 기증할 때도 자신에 대해 알리지 않는다.
전 소방위는 “헌혈을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며 15년 전부터 술·담배·커피를 끊었다.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한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전 소방위가 소방관을 꿈꾸게 된 것은 10년 전 돌아가신 부친 덕분이다. 6·25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를 보며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형제가 육남매예요. 철없을 때는 아버지 훈장을 가지고 놀곤 했어요. 아버지는 제대한 뒤 평생 농사꾼으로 사셨으니 유명인이나 부자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농사뿐 아니라 의용소방대원으로 마을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모습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전 소방위는 아버지의 6·25참전용사 증서를 가보(家寶)로 삼을 정도로 아버지를 존경한다. 얼마 전 군대에 있는 아들에게도 “나라를 위해 봉사하라”며 전문하사로 6개월 더 복무할 것을 권했다. 그는 “전역이 6개월밖에 안 남은 상태였는데도 며칠 고민하더니 제 말을 따르겠다고 해 뿌듯하더라”고 했다.
전 소방위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와 10년 동안 일한 강신호(55) 소방위는 “이제 후배들에게 궂은일을 맡기고 여유를 찾아도 될 텐데, 지금도 한 시간 먼저 출근해 사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하고 구급차에 묻은 취객의 토사물을 먼저 치운다”며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동료이자 친구”라고 했다.
글·원선우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 사진·서경리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