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3월 서울 강남의 한 부촌,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사건이 주말마다 발생했다. 1백평이 넘는 고급 빌라를 상습적으로 털어 현금과 귀금속만 기가 막히게 털어가는 전문 털이범이 출몰한 것이다. 범인은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한번에 1억원 이상의 금품을 털었다.
유일한 단서는 현장에 찍힌 발자국 하나. 경찰은 실오라기 하나라도 잡는 심정으로 CCTV를 수십번 되풀이해 살폈다. 그러던 중, 50대 남자 하나가 빌라를 흘낏 쳐다보더니 피우던 담배를 ‘픽’하며 하수구에 던져넣는 장면이 서초경찰서 안상길 계장의 눈에 포착됐다. 경찰은 하수구를 뒤져 10여 개의 꽁초를 수거했다.


국과수에 의뢰한 결과, 절도 전과자의 DNA가 검출됐다. 하지만 그가 범인이란 증거는 잡지 못했다. 발자국이 일치한다 해도 ‘주거침입’ 이상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 고민하던 경찰은 그를 미행키로 했다.
토요일 오후, 자동차를 몰고 집을 나온 용의자는 강남 빌라촌으로 향했다. 경찰은 자동차 주변을 에워싸고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서너 시간 뒤. 자동차로 돌아오던 용의자를 경찰이 덮쳤다.
그의 몸에서 한 움큼의 귀금속과 드라이버 등 범행도구가 나왔다. 현행범이었다.
안상길 강력계장은 과학수사의 달인이다. 최근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산부인과 의사 사체 유기 사건, 파이시티 법정관리인 살인미수 사건 해결도 모두 그의 ‘작품’이다.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막가파’ 사건도 그가 해결했다.
휘하에 강력팀 6개, 실종팀, 주폭팀 등 8개 팀 40명의 직원을 지휘하고 있는 그는 검도 4단, 태권도 3단, 유도 3단 총 10단의 공인자격을 갖춘 무도인이다.
“집사람하고 두 아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저한테는 절대 거짓말을 못 하거든요.” 안상길 계장은 껄껄 웃었다.
“집사람하고 시골에라도 다녀오면 아들 녀석들이 난리가 납니다. 친구들 불러서 노느라고요. 그런데 그게 제 눈엔 다 들어와요. 집안 물건 위치가 바뀐 것,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신발 위치가 달라진 것…. 보면 압니다. ‘너 여자친구 데려왔었지?’ 물어보면 아들녀석들이 꼼짝을 못해요. 아이~ 아빠는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아셨냐고, 청소까지 싹 해놨는데 어떻게 아셨냐고 하면서 잘못했다고 이실직고합니다. 하하. 범인은 항상 흔적을 남기거든요.”


안 계장은 올해로 경찰 생활 26년이 됐다. 그중 기동대 4년, 경찰청 특수수사과 4년 근무한 것을 빼고는 모두 강력계에서 근무했다.
1990~1992년 범죄와의 전쟁 때는 검찰에 파견돼 조직폭력을 전담하기도 했다.
안 계장은 최근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폭행, 강도, 상해, 살인 등 강력범에 대한 사후 관리 프로그램이 미비하다는 것. 그는 “경찰이 관리하고 있는 우범자가 전국적으로 3만7천명가량 된다”며 “이들이 출소하고 난 뒤에도 정기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관리할 수 있는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하지만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성범죄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인 만큼, 전자발찌 정도로는 통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안 계장은 “성범죄는 한 개인과 가족 구성원 모두를 파괴하는 무서운 범죄”라며 “재발을 막기 위해 화학적 거세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계장은 지금도 전국의 조폭 계보를 줄줄 외운다. KBS는 2000년 <인간극장>에서 안 계장과 당시 안 계장이 이끌던 수서경찰서 강력팀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찔한 적도 있었죠. 전주 월드컵파 두목을 잡을 때였습니다.”
안 계장은 1990년 서울을 공포에 떨게 했던 강남 병원 응급실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입원해 있던 상대 조직원을 찾아가 흉기로 난도질해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땐 권총을 차고 갔습니다. 실탄 5발을 채워넣었죠. 당시 반장으로 계시던 선배님과 단둘이 전주로 내려갔습니다. 두목을 만나 자수를 권하러 간 겁니다. 호텔 커피숍에서 두목을 만났는데, 회칼을 찬 깡패 40명이 주변을 겹겹이 에워싸는 거예요. 요즘이야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조폭이 그렇게 설쳐댔어요. 40명이 주변을 에워싸는데, 머리털이 죽 곤두서데요.”

안 계장은 강력계 형사가 험한 직업이라는 사실을 순간 실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선배 경찰관과 함께 침착하게 월드컵파 두목을 회유, 결국 자수시키는 데 성공한다.
안상길 계장의 일과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일요일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출근을 한다. 평일 퇴근은 빨라야 9시. 12시가 다 돼서 퇴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휴식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매일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안 계장은 강원도 평창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있던 2009~2010년 소년소녀 가장들과 인연을 맺었다. 부모 한쪽이 없는 아이들, 할아버지나 할머니 밑에서 홀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작게나마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박봉을 쪼개 외로운 아이들에게 먹을 쌀과 돈,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런 안 계장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요즘엔 그의 부인이 더 열심히 봉사에 나선다고 한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안 계장의 자랑이자 고민거리는 두 아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관이 되겠다”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야, 너 아빠 고생하는 거 못 봤냐. 경찰관이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니다. 여러 번 말렸는데도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는 꼭 경찰관이 돼야 되겠다는 거예요. 경찰관만큼 보람 있고 재미있는 직업이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내가 이 녀석들을 잘 키웠구나 싶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허허. 이런 게 부전자전이라는 건가 봅니다.”
글·이범진 기자 / 사진·이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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