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단어는 있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는 이미 사라진 말들이 있다. ‘제주 해녀’도 그런 운명에 처한 단어다. 1965년 제주에는 2만3천81명의 해녀가 살고 있었다. 제주 전체 여성인구의 21.2퍼센트가 해녀였던 셈이다. 올해 현재는 4천9백95명의 제주 해녀가 살고 있다. 제주 여성인구의 2.1퍼센트다. 그 중 절대다수(97.5퍼센트)가 50세 이상이다.
제주의 최연소 해녀 김재연(36)씨에게 세상이 호기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마라도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제주시에서 유학하고 금융기관 등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결혼 후 가정주부로 있던 2007년, 마라도를 다시 찾았다가 삼십대 초반의 나이에 해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우연한 계기였다. 해녀들이 따온 수산물을 관광객에게 조금씩 팔다가, ‘내가 직접 따다가 팔면 어떨까’ 싶어 그길로 바다로 나갔다.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달에 절반가량은 물질을 위해 가족과 헤어져 살고 있다. 아이들은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이후 김씨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제주도에서 열린 각종 토론회에 해녀 대표로 참가하기도 하고,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제주 해녀’는 올해 제주도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의 의제로 채택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자연을 보존하는 작업 방식을 오래전부터 전통으로 체화해 온 해녀들은 ‘자연력 회복’, ‘자연보존’이라는 시각에서 당시 WCC 관계자들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 11월 28일에는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중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제주도 자연환경의 아름다움과 전통문화로서의 해녀를 국내외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은 덕이다. 여성문화인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사단법인 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해 수여하는 상이다.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마라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씨를 만났다. 김씨에게 해녀라는 직업은 조금은 낡았지만 자신에게 참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더없이 편한 옷인 듯했다. 김씨의 어머니도 해녀였다.
1958년생인 고모는 김씨의 ‘직속 선배’인 현직 마라도 해녀다. 김씨는 “너무 늦게 해녀가 돼서 아쉽다”고 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해봤잖아요. 직장에 다니면 몸은 별로 안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지요. 일이 끝나도 늘 고민이나 긴장이 이어지고… 해녀 일은 그렇지 않아요. 보통 아침 8시에 바다에 들어가 오후 1시쯤 뭍으로 나오는데, 그러고 나면 몸은 정말 힘들지만 마음이 참 편해요. 생활에서 잡념이 없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해녀가 된 후 마음이 많이 건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어릴 때 해녀가 됐다면 체력이 좀 더 받쳐줬을 텐데 싶어 아쉽다는 생각을 해요.”

‘해녀 일을 배우는 게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처음에 잠수할 때 좀 두려웠지만 그 뒤로는 괜찮았다”고 했다.
“마라도에 해녀가 6~7명이 계세요. 그보다 더 적게 바다에 나가실 때도 있고요. 항상 같이 바다로 나가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주시지만 직접 (해산물을) 잡아주시진 않으세요. 같이 다니면서 스스로 배우는 거죠. 바다에 한번 들어가면 1분 정도 머물러 있다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제 위로 올라와야 되는데 바닥에서 큰 전복을 봤거나 할 때가 있어요. 올라온 뒤에 다시 내려가면 그 전복을 다시 찾기가 힘들잖아요. 그럴 때 다른 해녀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같이 찾아주세요. 일종의 관행 같은 거예요.”
고막이 상하는 등 ‘직업병’도 있다고 한다.
“물이 항상 들어가 있으니까 고막이 상해요. 그래서 해녀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싸우는 줄 알아요. 보통 목소리로 얘기하면 잘 안 들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이야기를 나누니까요.”
김씨는 “해산물 채취량이 해마다 줄고 있는 게 걱정”이라고 했다.
“특히 올해는 태풍 탓인지 바다 밑에 해산물이 많이 줄었어요. 기후도 점점 달라지고 있고요. 전에는 한번 바다 밑에 들어가면 바구니를 가득 채워 나왔다던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도 무리해서 욕심을 내지는 않습니다. 해녀들의 말로 ‘물숨을 쉰다’라는 게 있어요. 바다 밑에서 지나치게 오래 있으면 올라올 때 쓸 숨까지 다 써버려서 물속에서 숨을 쉬어버리게 돼요. 그러면 물안경과 얼굴이 너무 밀착돼 그 자리에서 바로 숨지기도 합니다.”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면 어떠냐’고 묻자 김씨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녀가 산소통을 메고 바다에 들어가면 스쿠버 다이버지 더 이상 해녀가 아니라는 것.

“해녀라는 직업은 자연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직업입니다.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바닷속에 머물고,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을 만큼만 수산물을 캐오죠.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 수산자원의 씨를 말려버리면 후대에 남겨줄 게 없잖아요.”
김씨는 “제가 상군해녀(동네에서 가장 물질을 잘하는 해녀)가 되면 누가 함께 바다에 들어갈지 우려된다”며 “저보다 바로 위 연령이 1958년생인 우리 고모일 정도”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서 안 하려고 하고, 얼마나 할 게 없으면 해녀 일을 하는가 하는 사회적인 편견도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해녀가 될 수 있도록 조금만 지원해 주면 해녀들이 맥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글·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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