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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관문화훈장 받은 ‘스크린의 신사’ 윤일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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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윤일봉씨는 1948년 데뷔한 이래 다양한 장르의 한국영화에 출연하며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한국영화계의 산 증인이다. 그는 신영균, 남궁원과 1950~70년대 한국영화 발전을 이끈 3대 배우로 꼽히며 한국영화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1967년 영화 <애하>로 제6회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1972년과 1977년에도 영화 <석화촌>과 <초분>으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1984년에는 영화 <가고파>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이름을 남겼고 2008년엔 제16회 이천 춘사대상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영화인상’을 받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윤일봉씨의 큰 풍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아있는 눈빛과 표정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한국영화사(史)를 대변하는 거장답게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영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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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먹고살기 참 힘들었어요. 영화를 제작하는 게 사치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죠. 부모형제마저도 영화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때였어요. 우리나라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지금까지 영화인생을 살아오는 데 큰 힘이 됐죠.”

그가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48년 철도 다큐영화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당시 중학생이던 윤씨는 어느 날 학교로 찾아온 안철영 감독과 이용민 감독 등에게 캐스팅돼 영화에 출연했으며 같은 해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제작된 <푸른 언덕>에 출연, 스크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그 이후 윤씨는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기 위해 방송과 영화를 넘나들며 바쁘게 지냈다.

“지금은 어딜 가서든 연기를 배울 수 있지만 그 당시 연기학원이나 연극영화과 자체가 없었잖아요. 연기의 폭을 넓히기 위해 방송생활도 했었죠. 당시에는 라디오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던 시기였어요. 라디오 드라마에서 배역을 맡아 목소리로 연기하며 배우생활을 차근차근 시작했죠.”

그는 만 19세가 되던 해인 1953년, 전쟁의 참화를 딛고 만들어진 정창화 감독의 데뷔작 <최후의 유혹>에 출연했다. 그는 “전쟁통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었으나 스태프들 모두 힘을 모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후 1955년 윤씨는 민경식 감독의 <구원의 애정>이라는 영화를 통해 극영화 첫 주연을 맡게 됐다. 그는 “6·25 전쟁으로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우리 민족의 이야기”라며 “현재를 살아가는 후배들이 시대의 아픔을 그려낸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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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57년 우리나라 최초로 홍콩과 합작영화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한류’ 진출을 시도했다.

“당시 아시아 굴지의 영화사인 홍콩 쇼브러더스와 합작영화인 <이국정원>에 참여했어요. 그때 배우 김진규, 최무룡 등과 함께 열연했지요. <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로 지금의 한류 열풍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사실상 한류진출 노력은 이때부터 시작됐어요. 한국영화에 대해 아무도 관심없던 시절,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나서서 해외에 우리나라 영화를 알렸죠.”

“당시의 30만~40만은 지금의 7백만~8백만 관객 동원 수와 맞먹거든요. 1977년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내가 버린 여자>는 40여 만 관객이 봤지요. 79년 <내가 버린 남자>도 28만 가까이 들었고요.

1980년 변장호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 80>으로 또 한번 크게 흥행몰이를 했어요. 당시 꽤 많은 인기를 얻었지요.”

60년간 연기생활을 하면서 애착이 가는 영화를 말해 달라고 하자, 대종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가고파>라는 작품을 꼽았다.

“당시에는 영화제작 편수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내 입맛에 맞는 작품을 고를 처지가 못됐어요. 서로 돕는 의미로 영화에 출연했었죠. 힘든 시절 다함께 동고동락하며 참여한 작품이라 한편 한편 애착이 가요. 굳이 한편을 꼽으라면 힘든 우리 시대상을 잘 반영한 <가고파>라는 영화를 꼽고 싶네요. 상을 받아서 기억에 남는다기 보다 영화에 담긴 메시지가 큰 울림을 주거든요. 힘들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작품에 잘 담았어요. 정영숙, 박근형, 황정순 등 함께 열연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요.”

윤씨는 지난 11월 19일 2012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대중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번에 은관문화훈장이란 큰 상을 주셔서 받게 됐는데, 어려운 시절 함께 고생했던 선배들을 대신해 받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영화계 선배들이 다같이 고생하면서 일궈낸 한국영화를 앞으로도 후배들이 잘 이끌어줬음 하는 바람이죠.”

지금까지 한국영화계의 거물이자 큰어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윤씨는 영화는 여전히 꿈이자 삶의 원동력이라며 화답했다. 하고 싶은 일을 물어보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들이 무궁무진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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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현장에서 들려오는 ‘레디 고’를 듣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영화현장의 소리는 언제나 두근거리죠. 카메라 앞에 서서 표현한다는 일이 얼마나 멋져요.(웃음) 영화는 제 삶의 전부이며 인생의 스승과 같은 존재예요. 영화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왔고 배우로서 살아온 세월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살고 있어요.”

그는 한국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후배들을 향한 애정어린 조언을 잊지 않았다.

“최근엔 코디와 매니저도 있고 영화 스태프들도 많아져 제작환경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1950~60년 당시 누가 배우 스케줄을 관리해 줬겠어요. 현장에서 더위, 추위와 싸우던 시기였죠. 지금과 같은 환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에요. 선배들이 땀흘려 고생한 노력이 초석이 됐다고 봐야겠죠. 영화인으로서 긍지와 책임감을 갖고 말 한마디에도 조심할 줄 아는 후배들이 많아져 한국영화의 미래를 밝게 빛내 줬음 해요.”

글·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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