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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넘어 희망을 노래하는 작은 巨人




“아버지께선 첫 아이가 딸이라는 이유로 갓 태어난 저를 내동댕이치셨어요. 그때 생긴 척추장애로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죠.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고 충격에 빠진 어머니는 제게 화풀이를 시작하셨어요. 어느 날은 어머니가 칼을 들고 같이 죽자며 저를 쫓아오기도 했어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무작정 집을 나와 남의 집 살이를 시작했죠.”

남들은 한창 꿈을 키워갈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김해영씨는 월급 3만원짜리 식모로 일하게 됐다. 어려운 가정에서 다섯 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탓에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도맡아하면서 동생들을 돌봐왔던 그였지만 식모일은 고역이었다. ‘한평생 식모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종합직업훈련원(현 한남직업전문학교) 편물(編物)과에 입학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김해영씨의 첫 번째 도전이었다.

 

편물(실로 옷감이나 직물을 만드는 것. 뜨개질)기술을 익힌 그녀는 졸업 후 경기도 용인에 있는 편물공장에 취직해 1983년엔 전국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주위에서 부러워할 정도의 성공을 이루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평생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던 집을 찾아가니 과거 그를 그렇게 괴롭혔던 어머니가 지난 시절에 대해 사과했다. 그렇게 어머니와 화해하게 되었다.

4“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 데 24년이 걸렸죠. 나를 낳아준 엄마의 마음을 아는 데 20년이 넘게 걸렸다면, 앞으로 내가 살면서 만날 수많은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해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자고 그 순간 결심했죠.”

가족과의 재회로 안정을 찾은 그는 1985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기계편물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일본의 한 편물회사 한국지부에 취직하는 등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어느날 갑자기 과로로 쓰러지면서 의사로부터 “더 이상 무리하면 건강에 이상이 생길 것”이라는 경고를 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사회봉사에 눈을 돌리게 되어 아프리카로 떠났어요.”

자타가 공인하는 ‘기술명장’으로 많은 월급을 받으며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을 그는 ‘봉사’라는 이름의 두번째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1990년 1월에 한 선교단체를 따라 떠난 아프리카의 극빈국보츠와나의 ‘굿호프 직업학교’에서 김해영씨는 편물교사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곳에는 나처럼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아이들이 있었어요. 약간의 기회와 교육과 격려가 있다면 얼마든지 훌륭하게 성장할 청소년들이었어요.”


보츠와나에서도 가장 황량한 지역에 위치했던 굿호프 직업학교는 1994년에 폐교 위기를 맞게 된다.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짐을 싸서 떠나갔지만 김씨는 끝까지 남아 학교를 지키게 된다.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편물과 여학생 다섯 명이 찾아와 계속 공부하고 싶으니 떠나지 말아달라고 매달렸어요. 나를 선생이라 믿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니 계속 이곳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운영진과 이사진을 꾸렸고 제가 교장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학생 15명으로 시작했던 것이 학교를 그만둘 무렵인 2004년에는 80명으로 늘어났지요.”

학교가 안정을 찾을 무렵, 김씨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미국으로 떠나 뉴욕에 있는 나약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서른아홉 늦은 나이에 경험해 보는 대학생활은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 무렵엔 동생들도 일가를 이뤄 살고 있어 가족에 대한 부담없이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됐었죠. 아프리카 거대한 사막에서도 살아나왔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였는지 무일푼이었지만 맨해튼 한가운데 서 있어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어요.”

4년 내내 4.0 만점에 3.8점을 유지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명문 컬럼비아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아프리카 생활을 통해 저개발국가일수록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씨는 요즘 부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올 가을부터 부탄 여성들에게 체계화된 편물기술을 교육하게 된다. 보츠와나와의 인연도 계속되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방문해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핀다. 한국에선 제천에 있는 아동보호시설에서 소년범죄에 연루된 아이들을 상대로 상담과 검정고시 특강을 해준다.

“열두 살부터 스무 살 아이들에게 제 얘기를 들려줍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도 그걸 희망적으로 해석하면 살아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에는 자신의 경험들을 모아 책을 내기도 했다. “책을 통해 힘들고 암담한 현실에 주저앉고 싶은 청년들에게 다양한 삶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책을 내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지옥 같은 경쟁사회를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모델이 되어주신 분이 국제사회복지사인 김해영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해영 선생님에게 경쟁은 지옥이 아니라 오히려 협력을 낳고 창의적인 사회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됩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은 제 키를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제 작은 키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못나고 작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게 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었으니까요. 특히 아이들은 자기 키와 비슷하다며 무척 좋아합니다. 같은 눈높이에 선 저는 자기들을 내려다보거나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없으니까요. 앞으로도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로든 달려가 성심껏 봉사할 것입니다.”

글ㆍ이윤진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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