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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위탁모로 70여명 키운 하정희씨




“아침에는 막내 아들 시호가 먼저 일어나서 저를 깨워요. 그러면 부랴부랴 눈을 뜨고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주지요. 그런 다음에 아침상을 차리고 있으면 대학생인 셋째 딸이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해요.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그제야 넷째 수철이가 일어나요. 그다음부턴 다른 엄마들이랑 똑같아요. 애들 밥 챙겨 먹이고, 놀아 주고, 기저귀도 갈아 주고, 낮잠 재우고…. 밤이 되어 아이들을 씻겨서 재우고 나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몰라요.”

‘위탁엄마’인 하정희씨가 말하는 하루 일과다. 하씨가 현재 위탁받아 보살피는 시호군은 15개월, 수철군은 48개월이다. 미취학아동을 키우는 다른 엄마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하씨의 나이는 올해로 59세. 아무리 늦둥이가 흔한 세상이라 해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나이 차이다.

하씨가 위탁모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동방사회복지회의 위탁모로 활동하던 이웃사람의 소개를 받으면서부터였다. 위탁모의 조건에 ‘자녀들이 모두 초등학생 이상일 것’이라는 조항이 있어 둘째 딸의 입학을 기다렸다가 바로 동방사회복지회에 위탁모를 자원해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나 자립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라도 자기 시간을 갖고 인생을 즐기고 싶어하는 것이 보통의 마음일 텐데 남들 모두 ‘한숨 덜었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또다시 갓난아이의 엄마를 자청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았다.

위탁모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하씨는 웃으며 “그저, 아이가 좋다”고 말했다. “남들은 힘들겠다고 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그리 힘든 줄 모른다. 오히려 요즘은 이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으면 내 인생에 무엇이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할 정도다”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하씨가 키운 아이들 대부분은 크고 작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 입양이 쉽게 되지 않았다. 장애를 갖고 있거나 선천성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병치레를 비롯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위탁모들은 양육을 피한다. 하지만 하씨는 “복지회에서 ‘이런 아이인데 키워 주실 수 있겠냐’는 문의가 올 때마다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고 한다. “봉사를 위해 시작한 일인데 아이를 가려 가면서 키운다는 것은 봉사의 의미에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게 이유다.

“난쟁이(왜소증)이나 언청이(구순구개열)처럼 눈에 띄는 장애를 안고 있는 애들이나, 선천성 심장병이나 뇌질환을 잃고 있어 지속적인 병원치료가 필요한 애들도 있었어요. 자랑 같지만 내가 애를 잘봐서 그런지 복지회에 까다로운 아이가 오면 늘 내 차지가 됐지 뭐예요.”

24년간 7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며 차별 없이 한마음으로 사랑을 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딱 한 번 있었다.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그 반대로 아이에 대한 넘치는 마음을 제어할 수 없었던 경우였다.

“처음 이 일을 소개한 분에게 사정이 생겨서 그분이 맡고 있던 아이를 단 하루만 봐 주기로 했어요. 하룻밤을 집에서 재우고 그 다음날 데려다주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 거예요. 헤어지는 순간에 아이도 얼마나 우는지…. 집에 와서도 며칠을 눈물로 새운 다음에 그 분께 부탁을 드렸어요. 제가 맡아서 키우고 싶다고. 몇 달을 데리고 있는 동안 ‘우리 아이다’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식구들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남편이 먼저 제안을 하더라고요, ‘우리 딸로 하자’고.”

그렇게 마음으로 낳은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 되어 온 가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귀여운 아가씨로 자라났다.

3공개입양을 원치 않아 아이에겐 비밀로 했지만 사실을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으로 대학 입학 후 입양사실을 밝혔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친척들의 입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더라고요. 그 힘든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힘든 내색 안 하고 우리 딸로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하씨가 키웠던 아이들은 대부분 신생아 때 친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 입양이 결정될 때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면 3~4년간 하씨 가정에서 자라나다 보니 아이들과 하씨의 정은 남다르다. 그런 만큼 “입양이 결정되는 순간은 견디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내내 ‘슬퍼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지만 막상 입양이 결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요. 그래서 복지회 전화를 받으면 늘 심장이 조마조마하지요.”

올해 초에도 수철군의 입양이 결정됐다. 생후 4개월 때 하씨의 품으로 와 지금껏 4년 남짓한 시간을 함께해 온 아이였기에 입양통보를 받았을 때는 가슴이 미어지면서 며칠 동안을 눈물로 보냈다고 한다. “헤어지는 순간은 슬프지만 아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진짜 자기 가족을 갖고 자랄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거니까 즐겁게 웃으면서 축하해 줘야겠죠. 우리 큰아들은 지금까지 두 번이나 심장수술을 받았는데, 이제 좋은 부모 만나 좋은 환경에서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이별 뒤에 오는 기쁨도 있다. 그다음에 맡게 되는 아이와의 만남이다. “이상하게도 아이가 새로 오면 또 그렇게 새록새록 정이 든다”며, “한 번 헤어졌다고 그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아이에게 사랑이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양부모들이 전하는 아이들의 소식도 큰 기쁨이다. “사진 속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편지 속 감사인사를 보면 보람을 느낀다”는 하씨가 미국의 양부모에게 받았다며 자랑스럽게 편지를 보여주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었다.

“어머님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우는 저희가 방문했을 때 만든 동영상을 보여 달라고 많이 합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머님은 언제나 저희 가족 마음속에 아주 특별한 자리를 갖고 계실 것입니다.”

편지를 보여주며 하씨는 “이렇게 보람 있는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오히려 감사한다”며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정년이 될 때까지 위탁모로 활동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이윤진 객원기자 / 사진·염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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