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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디자인연구소 연 고교 중퇴 학력 임광일씨




3“그때는 그냥 인생이 지겨웠던 것 같아요.”

임광일씨의 학창시절은 화려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패싸움을 벌이는 게 일이었다. 파이프와 각목은 물론 커터 칼까지 들고 싸웠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자 가출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학교 친구들 집을 돌며 신세를 졌다. 여름에는 학교 교실이나 체육관에서도 잤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무의미하게 보내던 임씨는 속초상고 1학년 때 겨울방학을 한 달 앞두고부터는 아예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모든 게 식상해졌어요. 친구들 만나서 놀고 수업 땡땡이 치고 하는 것들이 다 지겨웠어요. 틀에 박힌 생활 말고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임씨는 학교에 가지 않는 대신 3개월간 강릉과 동해안을 여행했다. 서점에 가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주로 미술이나 여행 관련서적이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폐차장에 놀러 가 차 부품을 부숴 스포츠카에나 붙어 있는 ‘윙도어(문을 위로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개조한 것)’를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곤 생각했다. ‘혹시 내가 이쪽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곤 한 달간 신문·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 1백만원을 들고 2000년 봄, 열일곱 살 소년은 홀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대문구 홍제동의 두 평 남짓한 하루 만원짜리 셋방에 짐을 풀고 매일 오전 5시 근처 직업소개소로 갔다. 한동안은 나이가 어리다고 임씨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다. 악착같이 찾아오는 임씨에게 질린 직업소개소 사장이 일주일 만에 첫 일감을 줬다. 경기도 안양의 주상복합건물 건설현장의 일용직이었다.

건설현장 생활은 열악했다. 6.6제곱미터(2평) 크기의 방에서 중국인 근로자 8명과 함께 생활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공사장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한 달에 80만원을 벌었다.

5년 넘게 부산과 대구 등 전국의 건설현장을 돌며 이를 악물고 3천만원을 모았다. 물론 돈만 모은 것은 아니다. 꿈도 더불어 키워나갔다.

처음에는 짐 나르는 단순 작업만 하다가 어깨너머로 설계·건축기술을 조금씩 배웠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주워 온 설계도면을 건설현장 컨테이너 상자 안에서 수도 없이 베껴 그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설계도면만 보고도 건물 벽면을 배치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곁눈질로 배운 건축기사 일이 어느새 전문가에게까지 인정받을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현장에서 능숙하게 설계도면을 보며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본 시공사 간부는 그를 스카우트했고 임씨는 비로소 건설현장을 벗어나게 되었다.

1년 동안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던 임씨는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고생하며 번 돈 3천만원을 들고 건설현장에서 만난 선배와 함께 전원주택사업을 벌였다. 결과는 실패였다. 1년 만에 가진 돈을 다 날리고 손을 뗐다. 의욕은 충만했으나 전원주택을 발주한 사업가가 갑자기 포기하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5좌절한 임씨는 군 복무를 위해 공익근무요원으로 들어갔다. 안양구청에서 산림과 야간 경비를 서며 짬짬이 다음 사업을 구상했다. 그리고 공익근무를 마친 지난해 6월 자신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임씨는 먼저 서울시 소상공인지원센터에서 1천만원을 지원받아 서울 성북구 길음역 근처에 건축·공간디자인연구소인 ‘에이비팩토리(AB Factory)’를 열었다.

에이비팩토리는 공간 설계부터 시공까지 부문별 전문가들이 모여 활동하는 연구소 겸 인테리어디자인 회사다. 주문이 들어오면 직원 4명이 회의를 통해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 열정과 독특한 발상에 인터넷 공간에서는 마니아도 생겼다.

하지만 수입이 들쭉날쭉한 것이 문제였다. 해결책을 찾던 임씨는 서울시 소상공인지원센터에서 2천만원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그리곤 실내 가구·장식품 등을 판매하는 소품가게 ‘로코코(Rococo)’를 추가로 열었다.

다행히 로코코가 인기를 끌었다. 한 달에 1천만~1천5백만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임씨는 디자인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임씨는 “서울시 소상공인지원센터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각각 따로 운영하던 가게가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재정적 지원도 해준 지원센터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중퇴’지만 임씨는 피나는 노력 끝에 ‘에이비팩토리’ 소장이라는 명함과 ‘로코코’ 사장이라는 자리를 동시에 이루어냈다.

그의 꿈은 이제 두 번째 출발선에 섰다. 첫 번째 실패로 좌절을 겪은 적도 있지만 두 번째 실패가 오더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고교중퇴자라는 딱지는 스스로 깨는 거예요. 스스로 틀을 만드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확실한 실력을 바탕으로 겸손하게 유쾌하게 사람을 대하면 뭐든지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과 사진·김지섭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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