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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이주노동자 무료진료 최윤근 박사



6“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최윤근 박사와 후배 전문의 18명, 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생 40명, 간호학과생 40명 등 의료진 1백여 명이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시작한 지 올해로 딱 10년이 되었다.

최윤근 박사는 무료진료를 10년이나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선뜻 진료봉사에 참여해 버팀목이 되어준 후배 전문의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겸손하게 공을 돌렸다. 그러곤 후배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백무현, 정연철, 이광동, 이지현, 임병기, 장승훈….”
이렇게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개인 일정과 가족 나들이, 취미 생활 등을 접고 오랫동안 봉사활동에 동참해 준 동지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성남시 분당구보건소 지하 1층에 마련된 외국인 무료진료소는 연말연시나 명절을 제외하곤 매주 일요일마다 문을 연다. 지금까지 진료한 환자 연인원만 줄잡아 4만5천명에 이른다.

의료진의 개인 일정 때문에 전원이 한꺼번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한 번에 3~4개의 진료과목이 개설되기에 ‘종합병원급’ 진료봉사가 가능하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시간이 부족한 중국동포들은 무료진료소에 나오면 2~3가지 치료를 한꺼번에 받는다. 허리 통증 치료도 받고 호흡기 질환 처방도 받고 혈압도 점검한다. 병원 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이들에게 무료진료소는 더없이 고마운 장소일 수밖에 없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이주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진료받을 곳이 거의 없었다.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를 막론하고 질병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더구나 낯선 땅에서는 더욱 서럽다. 그러나 평일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근무여건과 비싼 의료비를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요일마다 문을 여는 최 박사의 무료진료소는 가뭄에 단비였다.

최 박사는 1974년부터 20년간 미국에서 수련·전공·전문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던 중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재미동포들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것을 목격했다. 미국에서 병원을 개업한 후 최 박사는 14년간 틈틈이 의료 봉사활동을 벌였다. 이때의 경험이 한국에서 무료봉사 활동을 하는 데 주춧돌이 됐다.

최 박사는 “그때 재미동포처럼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 땅에 온 외국인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최 박사의 노력으로 악성 질환을 치료한 사람도 있다. 지린성 출신의 윤창한(77)씨는 4년 전 최 박사의 주선으로 위암 수술을 받았다. ‘외무진(외국인 무료진료소)’ 후원회와 차병원 사회사업부에서 큰 도움을 주었다.





윤씨는 “최 박사님이 수술을 도와주신 것도 고마운데 일요일마다 병문안까지 와주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이후 환자들의 연장자로 ‘외무진 군기반장’이 됐다.

또 다른 중국동포 윤금보(75·여)씨는 “머리카락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백내장이 악화됐는데 진료소의 도움으로 수술을 하게 되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괴사성 관절염으로 고관절이 완전히 손상된 50대 중국동포는 수술 후 다시 걸을 수 있게 됐고, 30대 필리핀 여성은 여러 질환이 겹쳐 10여 차례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다가 복막염을 치료하고 나서는 건강한 아이까지 출산했다. 안저혈관암으로 안구가 돌출됐던 20대 후반 몽골인 역시 진료소의 주선으로 서울대병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받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환자들의 출신 국가도 많이 바뀌었다. 2002년 1월 무료진료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환자 대부분이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외국인 고용환경이 개선되면서 4~5년 전부터는 중국동포가 대거 몰려왔다. 최 박사는 중국동포와 소통하려고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에 들어가 2년간 중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최 박사의 봉사활동을 후원하는 이들도 고마운 존재다. 최 박사가 분당차병원에 있을 때 의사와 환자 사이로 만난 인연으로 ‘외무진’ 후원회를 이끌고 있는 최호선(55)씨는 매주 일요일마다 진료소를 찾아 환자를 안내하고 간식을 챙긴다. 성남시도 매년 2천만원 안팎을 의약품비로 지원하지만 후원자들 도움 없이는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


최 박사는 “10년 전 진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며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동료 의사와 학생들, 후원자, 그리고 항상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환자들 덕분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한다.

지난 1월 15일 분당구보건소 3층 강당에서 열린 10주년 ‘생일잔치’는 인간미가 넘치는 자리였다. 무대는 작았지만 최 박사의 색소폰 연주에 이어 그동안 의료봉사에 동참했던 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과 간호학과 학생들의 합창이 이어졌다.

최 박사는 “외무진의 진료가 체계화됐지만 아직 더 많은 후원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그 색소폰 연주에는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진심을 다해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정성이 묻어 있었다.

글·김경태 (연합뉴스 경기취재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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