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금은 현직에서 은퇴했지만 우광균 박사의 치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 박사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동에 위치한 정신지체장애인학교 ‘연일학교’에서 장애아동들을 위한 의료봉사를 하며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우 박사는 1999년 10월 인천시 중구 신생동에서 40여 년간 운영해 오던 ‘우치과’를 정리했다. 그리곤 보유하고 있던 수억여 원대의 치과기자재를 연일학교에 기증했다.
그뿐만 아니라 연일학교 1층에 ‘치과보건관리소’를 꾸려 휴일과 방학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13년 동안 이곳에서 학생들의 치아를 관리해 주고 있다. ‘소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순수한 무료봉사직이다.
“처음 이곳에 와서 아이들을 치료할 때 대화라고는 전혀 통하지 않았어요. 치료할 때 느끼는 통증이나 공포감 때문에 진료소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도 않고, 앉혀놓아도 마구잡이로 저항하는 통에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되곤 했죠.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듯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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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진료 40년 경력의 그는 치술에 있어서는 자신 있었지만, 다운증후군이나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장애아동을 치료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아이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했다. 정신지체아들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탐독하고 아동심리를 연구하기 위해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치료했다.
아이들을 이해하며 치료하기를 3년, 그를 거부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치료보호대를 하지 않아도 얌전히 있거나 알아서 의자에 앉아 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많아져 한결 수월해졌죠.”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은 그를 ‘우리 할아버지’로, 그는 아이들을 ‘우리 애들’로 부를 정도로 친해졌다.
“보건소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자 아이를 치료한 적이 있어요. 치석으로 온통 뒤덮여서 치아가 안 보일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어요. 치료를 하면서 아이는 물론이고 저항하는 아이를 잡고 있던 엄마, 저와 간호사 모두 엉엉 울면서 치료를 했죠. 그때 느낀 게 있어요. ‘진정한 봉사는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이구나!’라는 것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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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박사의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연일학교 학생들의 치아상태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치과보건관리소가 개소할 당시 심각한 충치와 치과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전체 학생수의 절반을 넘었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그 수가 점점 줄어 현재는 학생 대부분이 충치 없는 건강한 치아를 갖게 됐다. 요즘은 치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두고 정기적으로 전교생들에게 불소액을 발라주며 치아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연일학교 강병훈 교장은 “아이들의 치아상태가 진료소 생기기 전보다 굉장히 건강해졌다”며 “우 소장님의 봉사정신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저를 비롯해 교사들과 학부모님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고마운 벗이 있다. ‘우치과’ 시절부터 22년 동안 우 박사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신옥경 간호사다. 우 박사가 병원을 정리한 후에도 신 간호사는 13년째 연일학교에서 봉사하며 아름다운 동행을 함께하고 있다.
“잠깐 돕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하루 10명 이상 치료하던 날은 정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남을 위해 여생을 바치는 소장님을 보면 그런 마음을 가진 게 부끄러워지곤 했죠.”
오랜 동반자답게 신 간호사는 우 박사의 건강 또한 잊지 않는다.
“소장님만큼 이 학교 아이들의 치아상태를 잘 아는 사람도 드물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많이 연로하셔서 조금은 걱정입니다. 소장님이 안 계시면 진료소 운영은 누가할지도 걱정이고요.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셨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우 박사는 요즘 들어 귀가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해지며 점점 기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불소도포 등 일반적인 치아관리는 문제없지만 치석 제거나 신경 치료처럼 힘과 집중력이 필요한 치료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후배 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곳 인천에서 개업한 후배들을 찾아보니 꽤 있더군요. 그래서 ‘장비는 다 있으니 매주 목요일마다 연일학교에서 치료봉사 좀 해달라’고 제안했죠. 그 결과 후배 8명이 저와 아이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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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박사의 나눔과 봉사는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 연일학교의 치과보건관리소가 인천시내에 알려지자 관할 보건소에서 직접 운영하는 형식으로 다른 특수학교 두 곳에 치과진료소가 생겼다. 한 미술학원 원장은 우 박사의 선행에 감동받아 봉사동아리를 만들어 회원들과 함께 그림 봉사에 나서고 있다.
우 박사도 어렸을 적 ‘덕적도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최분도 신부를 통해 나눔과 봉사가 무엇인지를 배웠단다.
“봉사자는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그분을 통해 배웠죠.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도움을 받게 되잖아요. 그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도리이고, 저는 그 도리를 지킬 뿐입니다. 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남은 생을 나눔과 봉사로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우광균 박사, 그의 황혼은 누구보다 밝고 아름답게 빛을 내며 어려운 이웃을 훈훈하게 감싸고 있다.
글·공감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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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