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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영암댁들, F1 성공의 숨은 주역




지난 10월 14~16일에 영암에서 열린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는 3일간 관람객 16만여명(외국인 1만명)이 몰려 단일 스포츠 사상 국내 최다 인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대회 결승전 전날인 토요일엔 고급숙박시설이 모두 동이 나고 조직위원회에서 추산한 가용객실 4만2천 실 중 75.8퍼센트인 3만2천 실이 사용되는 등 영암의 숙박업소는 말 그대로 ‘불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인원이 몰려들었어도 지난해에 영암을 찾은 외국인들이 큰 불편사항으로 지적했던 ‘의사소통 문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편리한 호텔 이용에 감사한다’는 인사말이 쇄도할 정도였다.

1년 사이에 달라진 평가를 이끌어낸 데는 이주여성 14명으로 구성된 ‘F1 호텔운영요원(통역요원)’의 공이 컸다.

F1 조직위원회 숙박팀의 문권옥 차장(46)은 “지난해에는 숙박과 관련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언어 문제였다”며 “올해에는 언어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영어와 우리말에 능한 다문화가정여성 14명을 선발해 호텔운영요원으로 둔 것이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지난 8월부터 조직위 숙박팀에서 외국인들의 숙박예약을 지원하고 통역서비스를 했는데, 이것이 전남에 대한 애향심과 소속감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2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댁’ 마리벨 압신(34·영암군 삼호읍) 씨는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 실력을 발휘해 8월부터 F1대회조직위원회 숙박교통안내 콜센터에서 근무했다. 필리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마리벨 압신씨는 영암지역 자활센터에서 원어민강사로 활동해 왔는데, 정확한 발음과 소신 있는 지도법으로 영암에선 실력파 영어선생님으로 이름을 얻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형인 마리벨 압신 씨는 “집안일과 병행해야 하는 일이라 힘들었지만 F1 대회 성공을 위해 일하게 된 점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최선을 다해 외국인에게 콜센터 안내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마찬가지로 필리핀 출신인 파토농곤 에이안(33·해남 북평면) 씨는 “세계적인 스포츠행사인 F1 대회에 숙박업소 통역으로 참여하게 돼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9년에 전남 해남으로 이주해 온 파토 농곤 씨는 필리핀의 명문 STI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다. 6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 필리핀에선 관광가이드로 직장생활을 했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고모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을 만나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을 왔지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찾지 못해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고 한다.

한국어와 한국 생활을 익힌 후로는 유창한 영어실력과 결혼 전의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해남종합사회복지관 아동센터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원어민 영어강사로 활동하는 등 사회참여를 해오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지 9년째 된다는 로린 다나오 다몬동(39) 씨는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 힐사이드모텔의 카운터에서 일했는데 밥을 먹으러 갈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다”고 말했다. 주된 업무는 숙박 시설, 인터넷 문제 등에 대한 불편사항을 접수하고 세탁 등 호텔서비스에 관한 문의를 받는 일.

작년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외국인 손님들의 항의도 빗발쳤고 그에 대처하지 못하는 모텔 측의 불편함도 컸는데, 로린 다나오 다몬동 씨가 카운터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동안에는 그런 불편이 말끔히 해소됐다. “모텔 사장님과 다른 스태프들이 지난해에 비해 너무 편해졌다고 감사인사를 하셨는데, 그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원어민영어강사로 5년간 활동해 온 그는 “가사와 육아, 원어민강사 일을 하면서 호텔운영요원을 한다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다른 대한민국 아줌마들도 자원봉사에 나서는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지난해보다 나은 대회를 만드는 데 동참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내 능력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습니다”며 활짝 웃었다.

뒤에서 묵묵히 통역요원들을 도와준 자원봉사자도 있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 나카자와 노리코(44·서울 마포구) 씨는 다른 자원봉사자들에게 점심도시락을 배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나카자와 씨가 영암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부터다. 사무직으로 봉사에 참여했던 한국인 남편을 따라 일본어 통역요원으로 활약했던 것. 2005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그는 “남편과 같은 일을 하고 싶어 올해는 사무직으로 지원했다”며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글·이윤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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