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저에게 국악이 무엇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 땅에서 국악은 모르는 음악이 아니냐’고 반문하지요.
국악 음반을 만들어본들 국내에서 겨우 수십 장 정도 팔리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죠.”
가곡은 우리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를 노랫말로 하는 전통 성악곡으로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단소, 장구 등의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아정(雅正)한 노래다. 김영일(49) ‘악당이반’ 대표는 15년 전부터 홀로 심산유곡에 내려앉은 국악 가곡을 일구고 찾아 나섰다. 그러면서 녹음 원본을 계속 만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지난 9월 초 김 대표는 우연히 자신의 이메일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당신이 보낸 ‘정가악회 풍류Ⅲ-가곡’이 제54회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라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그래미상은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NARAS)가 해마다 우수한 레코드와 앨범을 선정해 주는 상으로 영화 아카데미상에 견줄 만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세계적 권위의 음악상이 아닌가.
‘정가악회 풍류’는 ‘월드뮤직’과 ‘녹음기술’ 등 동시에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는 국내 음반 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특히 소외된 국악 음반으로 해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김 대표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성북동에 있는 주식회사 ‘악당(樂黨)이반’을 찾았다. 조용한 골목에 한옥을 약간 개조한 건물이었다.
그에게 ‘악당’은 얼추 알겠는데 ‘이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물었다. 그는 “원래 사진을 했는데 그때가 1학년 1반이라고 하면 음악을 하는 지금은 2학년 2반이다. 굳이 한자로 쓰자면 ‘이롭게 모여서 같이 나누자’는 뜻에서 이반(利班)이다”라며 웃는다.
“2~3년 전부터 우리의 (음악) 모습을 보니 모조리 케이팝입니다.
가끔 음악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해 보면 대부분 케이팝에 관심이 많더군요. 우리 음악의 앞날을 얘기하는 자리인데 계승 발전시켜야 할 국악은 뒷전으로 밀리고, 참 큰일이구나 싶더군요.”
김 대표는 이런 상황을 씁쓸하게 여기면서 “케이팝이든 대중음악이든, 클래식이든 국악이든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우리의 음악이다. 차라리 ‘케이뮤직(K-Music)’이라고 해서 발전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정책적으로 관심을 갖고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국악 발전을 위해서는 “재능 있는 국악인 중에 상 운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국악을 하면서 음반 하나 내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음반 하나를 만들어주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면 얼마나 신이 나서 노래를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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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에게 어떻게 해서 그래미상을 노크했는지 물었다.
“지난 3월부터 무역협회에 정식 등록을 해서 본격적으로 해외 수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미국에 에이전트를 두었지요. 그 에이전트가 그래미상에 대한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래미상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아는 게 전부였지요. 그런데 미국의 에이전트가 제게 틈틈이 정보를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시장에서 반드시 팔리고 있어야 하고, 그래미상 운영자 70퍼센트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폐쇄적이고 정치적 성향이 있으며, 또 월드뮤직 부문에서 한 개의 상을 준다는 것 등을
전해 들었지요. 결국 에이전트를 통해 신청을 했고 이번에 뜻밖의 소식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미상 측이 어떻게 해서 우리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후보에 오른 음반은 전통 가곡 ‘우조 이수대엽’(羽調二數大葉) ‘태평가’ ‘편수대엽’ 등 9곡으로, 여류명창 김윤서씨의 노래와 국악실내악단 ‘정가악회’의 연주로 담았습니다. 특히 이 음반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경북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의 대청마루에서 녹음을 했지요. 한옥은 말 그대로 맞춤형 스튜디오입니다. 마당 넓은 집에서는 판소리가 어울리고 대청 넓은 집에서는 가곡과 같은 음악이 기가 막히게 어울립니다. 또 한옥의 사랑채와 안채에서는 산조 독주가 어울립니다. 아마 이런 녹음 기술 때문에 이번 ‘서라운드 사운드’ 부문에 후보로 오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번 그래미상은 오는 12월 말에 본선을 치른 뒤 내년 2월 시상식을 갖게 된다.
김 대표는 대학에서 사진학과를 나와 일찍부터 초상 작가로 출발했다. 그런 그가 국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한 잡지사로부터 젊은 음악가들의 인물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당시 채수정씨라는 국악인의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저는 카메라를 들었고 채씨는 ‘아서라 세상사 쓸 것 없다~’(단가 편시춘)라고 소리를 했습니다. 셔터를 누를 수가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훌륭하다는 사람들을 많이 찍어 봤지만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몸이 얼어붙었다고나 할까요. 결국 사진을 못 찍고 채씨와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국악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저절로 국악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후 녹음기를 들고 전국 각지에 흩어진 소리꾼들을 찾아 나섰다.
지리산에 북을 들고 들어가 7년이나 안 나온 배일동씨 등 산자락에서 홀로 가곡을 부르는 외로운 국악인들과 만나 밤을 새우며 이야기하고 소리를 채록하곤 했다.
그렇게 소리 채집자로 돌아다니다 보니 마스터 테이프가 3백 장(음반 1백 장 분량)에 이르렀고, 2005년엔 아예 음반 제작사를 차렸다. 그동안 사진으로 번 돈을 몽땅 투자했다. 팔리든 안 팔리든 상관없이 매년 10여 장씩 꾸준히 음반을 제작했고 지금까지 52장의 음반을 냈다.
그는 “국악 음반 1백 장을 찍으면 판소리는 10장, 산조는 20장 정도 팔린다”면서 “전망은 밝지 않더라도 그 안에 들어 있는 것 자체가 문화적 가치가 아니냐”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러한 가치를 들고 매년 그래미상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김 대표는 매년 1월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미뎀(Midem)이라는 음반 박람회에 5년째 참석하고 있다. 우리 국악 음반을 묵묵히 세계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글·김문 (서울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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