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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서 회고전 연 원로작가 이우환




여느 돌밭에서 주워온 듯한 투박한 돌 두 개가 서로를 마주본다. 그 돌 사이를 가로막는, 붉은빛 철판이 견고하다. 돌은 건너편 돌에 말 걸기를 시도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높디높은 철판에 가 닿을 뿐이다. 현재 현대미술의 최전방인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1층에 전시된 한국 작가 이우환(75·사진)의 작품 <대화>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옆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선 9월 28일까지 한국 미술가 이우환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이우환: 무한의 제시(Lee Ufan: Marking Infinity)>는 2000년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의 회고전 이후 구겐하임에서 처음 열리는 한국 작가 전시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 작가는 “내 작품은 최첨단의 시대에 빠져있는 현실성과 구체성을 표현한다. 몸을 써서 작품을 하는 세대는 우리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일본에서 생활하고 1970년대 이후 일본과 유럽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 왔다. 회화, 조각, 설치미술을 아우르는 세계적 작가로 꼽히며 미술 평론가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가는 1960년대부터 최신 작품까지, 90여점을 선보인다. 회화 작품을 나선형 벽을 따라 걸고 사이사이 무심한 듯 돌과 금속, 솜 등으로 만든 설치작품을 배치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구겐하임 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먼로씨는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는 모더니즘의 과거를 돌아보며 비(非)미국, 비유럽 작가의 작품을 발굴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이우환은 이런 맥락에서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가 중 하나다”고 말했다.

연간 1백만명이 찾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의 대표작이다. 나선형으로 6층까지 이어지는 흰 벽의 전시 공간은 사각의 흰 공간에 익숙한 작가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라이트는 “이 건물은 그 자체로 작품이기 때문에 다른 전시물을 걸 필요가 없다”고 자평했다.

이우환 작가는 6층 건물 전체를 채우는 이번 전시를 위해 꼬박 22일을 미술관에서 보냈다. 그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사진 공간이 처음에는 두려웠다. 그러나 이 난해한 공간에 작품을 배열하다보니 나 자신이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며 ‘현실성’ ‘신체’ ‘몸’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현대 사회에 살며 현실성을 잊어 가는 관람객들이 ‘몸’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받아들이길 바란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언덕을 연상시키는 나선형 통로를 따라 오르내리도록 설계된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 작가의 작품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이 작가가 현실성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소재 중 하나는 돌. 그는 특히 전시를 하는 지역의 돌을 직접 가져다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시를 위해서는 뉴욕주(州) 남동부 롱아일랜드의 돌을 썼다. 그가 전시를 위해 정성스레 돌을 고르는 작업을 <뉴욕타임스>는 한 면을 할애해 소개했다.

수십 년간 돌과 씨름하면서 이 작가는 “돌은 그 돌이 놓인 환경,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일본 돌은 세밀하고, 한국의 돌은 유연하다. 미국의 돌에 대해선 “조임이 약한, 어벙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백남준 이후 11년 만에 초대한 첫 한국 작가라는 점에 대해선 ‘한국인’보다 ‘작가’로 자신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휴대전화를 세계 곳곳에 수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업인과 자신이 비슷하다고도 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를 먼저 내세우기보단 훌륭한 제품이라는 점을 내세워야 세계 시장에서 먹힌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내 모국이 한국이라는 자부심이 나의 밑바탕에 분명히 깔려 있다. 그러나 나는 아프리카를 가든, 뉴욕을 가든, 서울에 가든 어느 곳에서도 통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품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분청사기전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왜 한국적인가’가 아니라 ‘왜 훌륭한가’를 설명해야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굉장히 신선하고, 그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어떤 일이든 금방금방 해낸다. 감각을 살리기 위해 자기 역사와 세계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글·김신영 (조선일보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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