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누구도 몰랐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버스터미널을 집으로 삼아 자란 어린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부모의 이혼으로 세 살 때 서울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던 아이가 심한 구타에 못 이겨 보육원을 도망나온 게 다섯 살, 우연히 올라탄 버스가 도착한 곳이 대전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그때부터 소년은 버스터미널을 집 삼아 터미널 주변 유흥가에서 껌팔이 소년으로 살아왔다. 엄마의 손길과 아빠의 보호가 절실했을 나이에 춥고 두려웠을 매일 밤을 건물 계단과 공중화장실에서 보낸 그 소년이 한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천상의 목소리로 ‘넬라 판타지아(나의 환상)’를 불렀다.
“저는 스물두 살 최성봉이라고 합니다…” 하는 자기 소개와 함께.
지난 6월 4일 밤 11시 방영된 케이블채널 tvN의 리얼리티프로그램 <코리아 갓 탤런트> 첫날 방송에서 ‘넬라 판타지아’를 부른 최성봉씨는 폭풍 같은 감동을 몰고 왔다. 다소 쑥스러운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그가 심사위원 앞에서 담담하게 털어놓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마치 ‘한국판 올리버 트위스트’ 같았다. 그리고 불우함과 대비되는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부른 ‘넬라 판타지아’는 당장 방송 녹화 현장부터 감동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심사위원인 음악감독 박칼린씨도, 여배우 송윤아씨도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장진 감독도 눈을 껌벅였다. 객석에서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넬라 판타지아’의 감동은 안방극장과 온라인에서도 뜨거웠다. 온라인을 통해 해외로 전달된 그의 영상은 ‘껌팔이 폴 포츠’ ‘제2의 수잔 보일’로 불리며 전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지상파 방송 ABC에서는 ‘제2의 수잔 보일’이란 애칭과 함께 최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후 CBS와 CNN 등의 TV뉴스와 <TIME> 등 미국 언론에서 앞다퉈 그의 사연을 다뤘다.
또 세계적인 아이돌스타 저스틴 비버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갓탤> 동영상을 게재했다. 미국의 유명 엔터테인먼트 블로그 ‘페레즈힐튼닷컴’에도 그의 영상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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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모델’로도 언급됐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6월 24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임기말 참모진의 책임감을 강조하며 최씨를 언급, “국민을 감동시키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우리가 여기서 일하는 의미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방송이 나간 뒤 한때 그가 대전예고를 졸업한 사실을 감췄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tvN이 편집 과정에서 그의 말을 잘라낸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사실 껌팔이 소년이 부모 지원을 받는 아이들도 가기 어려운 예고에 입학한 것 자체도 기적 같은 일이다.
껌팔이뿐 아니라 신문배달, 전단 돌리기 등 험한 일을 마다 않던 그를 포장마차 아주머니 한 분이 눈여겨보았고, 공부를 권했다.
처음으로 따뜻한 충고를 들은 그는 14세인 그때 비로소 터미널 주변 야간학교에 들어갔고 초·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6세가 된 그는 한 나이트클럽을 갔다가 인생의 방향을 성악으로 바꾸는 경험을 한다.
“어떤 분이 나이트클럽에 와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한마디로 홀딱 반해버렸어요.”
성악 배울 곳을 찾았다. 이때 조건 없이 그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이 성악가 박정소(37·루체음악학원장)씨다. 그는 박씨를 만나 열심히 연습했고, 2006년 대전예고 성악과에 입학했다.
예고 2학년 때 겨우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책정됐던 그는 저녁에는 여전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고3을 앞둔 무렵부터 성악가가 되려는 그의 꿈은 흔들리게 된다. 부모 지원을 받아도 어려울 텐데, 생계냐 공부냐 갈림길에 섰던 그는 학업에 충실하기 힘들었고, 고교 졸업 후 일용직을 전전하게 됐다.
어려움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그는 2007년 12월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중 다쳐 입원 중이던 대전 건양대 병원에서 열린 자선음악회에서 노래를 불러 당시 지역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예고 시절 한국어린이재단 후원을 받았던 그는 졸업으로 후원이 종료되는 즈음 재단 게시판을 빌려 자신의 후원자에게 “남들과 똑같이 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7월 9일 <코갓탤> 방송에 다시 출연한다. 이날 최씨를 포함한 예선통과자 40명의 본선 방송 날짜가 결정된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본선은 7월 16일부터 8주 동안 진행된다.![]()
그가 부른 ‘넬라 판타지아’의 감동이 클수록 왜 이 청년이 소설과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더욱 안타깝다. 최근 복지 사각지대에 눈을 돌리고자 하는 정책적 흐름도 그래서 더욱 절실함을 갖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7일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서울 광진구 공중화장실에서 발견된 최씨와 비슷한 처지의 3남매의 예를 들며 “복지 혜택이 가장 시급한 분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도 없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모든 국민이 같은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 이전에 이런 분들부터 먼저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맞춤형 복지에 힘쓰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넬라 판타지아’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평범한 삶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 되길 바라는 최성봉씨를, 제2, 제 3의 최성봉씨를 응원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나는 환상 속에서 모두 정직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봅니다… (넬라 판타지아의
가사)”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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