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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여성의 친정엄마 관악경찰서 조경숙 경위




서울 관악경찰서 보안과 조경숙(50) 경위는 탈북여성들에게 ‘엄마’라 불린다. 그는 14년째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 업무를 맡아 북한이탈주민들을 돕고 있다.

혼주 자리도 세 번이나 앉았다. 조 경위를 엄마처럼 의지하는 탈북여성들의 간곡한 부탁에서였다. 지난 4월 30일에도 결혼식 참석을 위해 강원도 춘천을 다녀왔다. 탈북여성 김은주(35)씨가 ‘조 형사님은 고아처럼 자라온 제게 진짜 엄마처럼 든든한 존재’라며 자신의 결혼식 때 부모님 자리에 앉아주길 부탁했다고 한다.

“은주씨와는 지난해 7월 제가 담당형사일 때 알게 됐어요. 은주씨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한번 얼굴을 보자고 했죠. 남자가 성실해 보이고 둘이 서로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어요.”


김씨는 결혼식장에서 조 경위를 ‘우리 엄마’라고 소개했고 다행히(?) 닮은 외모 덕에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주례를 맡은 분이 주례사에서 ‘신부 측에 앉은 조 경위는 실은 은주씨가 한국에 와서 처음 만난 담당형사’라고 사연을 밝혔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신랑 측 하객으로 참석한 어르신들이 달려와 제 손을 붙잡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본의 아니게 밝혀져서 살짝 낯이 뜨겁기도 했지만 매우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조 경위가 처음 혼주를 맡은 것은 2002년 구로경찰서에서 근무할 때였다. 당시 담당했던 한 탈북여성이 한국인 사업가와 결혼한다고 해서 조 경위는 이것저것 친정엄마처럼 챙겨줬다고 한다. 그 여성이 ‘믿고 의지할 사람은 형사님밖에 없다’며 혼주 자리에 앉아줄 것을 부탁했고 40세의 젊은 나이에 처음 혼주 자리에 앉았다.

“혼주 자리에 앉는 것도 경찰관 업무의 연장이라 여기니까 긴장이 되진 않았어요. 그런데 한복을 차려 입고 제가 담당하던 탈북여성의 친정엄마 자리에 앉으니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우리 딸은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세 번이나 혼주 자리에 앉았네요. 제 딸 결혼식에는 연습 안 해도 잘하겠죠?(웃음)”

조 경위는 조만간 혼주 자리에 또 앉기로 예약된 상태다. 은주씨 결혼식에 친구로 참석한 또 다른 탈북여성의 부탁을 받은 것. 그는 조 경위가 이날 결혼식에서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탈북여성은 신부의 어머니로 참석한 조 경위를 보고는 마치 자신의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그러고는 조 경위에게 자신의 결혼식에도 꼭 혼주 역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조 경위가 지금까지 담당한 북한이탈주민은 약 2백명이다. 이 중 대부분이 여성이다. “전체 북한이탈주민 중 여성의 비율이 70퍼센트 이상으로 높아요. 북한 여성들은 생활력이 강한 편이지만 가족을 떼어놓고 온 그리움과 외로움, 자기 혼자만 왔다는 죄책감 등이 커서 심리적 안정이 많이 필요해요.”

이 때문에 조 경위는 담당 북한이탈주민들과 수시로 만나고 연락하며 지낸다. 그가 북한이탈주민 관리업무를 처음 맡은 초임 형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강조하는 것도 이런 ‘친분 쌓기’이다.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안정적으로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주요한 업무예요. 상대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신변보호가 어려워요. 자녀문제, 취업문제 등 북한이탈주민들의 다양한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 신변보호 업무의 첫걸음이죠.”

조 경위는 1981년 경찰이 됐다. 초등학교 교사를 준비하던 중 지인의 권유로 경찰시험을 봤는데 8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한번에 합격했다. 여경이 흔치 않던 시절, 조 경위는 당시 광화문 사거리에서 교통 수신호를 실시한 최초의 여경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후 14년간 수사업무를 담당해 오다 1998년부터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 업무를 맡게 됐다.

“1998년 경찰서 내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 업무가 처음 생겼어요. 이전까지 북한이탈주민들은 ‘귀순용사’라 불리며 군이나 국정원에서 관리하고 대대적으로 홍보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북한이탈주민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경찰이 그 업무를 담당하게 된 거죠.”

현재 전국적으로 북한이탈주민은 2만1천여 명이다. 각 지역 경찰서는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온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신변에 가해질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신변보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제가 맡은 북한이탈주민 신변 보호는 참 보람된 일이에요. 경찰관이라는 직업도 보람된 일인데,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죠.”

조 경위는 탈북여성 이외에 청소년에도 관심이 많다. 그의 주선으로 탈북 청소년 2명이 매달 지역단체로부터 5만원씩 장학금을 받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탈북 청소년들이 요리·IT 분야 등의 직업교육을 무료로 받고 취업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관내 직업전문학교와 취업 MOU를 맺었다.




강남의 한 변호사사무실에 부탁해 북한이탈주민들이 법률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최근에는 사비를 털어 탈북 청소년 6명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탈북 청소년들의 경우 엄마가 없거나 엄마가 있어도 일이 바빠 놀이공원에 가기가 힘든데, 아이들이 놀이공원에 가니까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경제적으로나 몸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이럴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경찰관이라는 본분 안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요.”

조 경위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돕는 일이 통일을 준비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은 통일을 준비하는 정책실험장의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해요.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의 한마디는 통일 후 어떤 정책 홍보보다 남북주민 통합에 효과적일 것입니다.”

글ㆍ이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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