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강형철 감독은 담담했다. 데뷔작 <과속스캔들>에 이어 <써니>로 연타석 홈런을 쳤는데도 달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화를 걸어 흥행 소감을 묻자 “제가 지금 오랜만에 머리를 하고 있어서요.
한 시간 뒤에 전화 드릴게요”라는 공손한 답이 돌아왔다. 꼭 한 시간 만에 전화가 걸려 왔다.
강 감독은 “주변에서 축하한다고들 하는데 너무 들뜨지도 않고 담담하다”고 말했다. 축하턱을 내느라 바쁠 법도 하지만 그는 너무 과로해서 조용히 집에서 쉬고 있었다며 웃었다.
사실 강형철 감독은 현재 <써니> 디렉터스 컷(감독버전)을 개봉시키기 위해 작업에 한창이다.
<써니> 감독 버전은 현재 극장 개봉 버전보다 좀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의붓엄마와 갈등을 겪는 수지가 욕설을 퍼붓는다든지, 면도칼을 씹어대는 무서운 언니들이라든지. 하지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으면서 현재 15세 이상 관람가로 조정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
강 감독은 “손익분기점인 3백만명이 넘으면 감독 버전을 개봉하자고 약속을 했었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분명하게 선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써니> 흥행을 “과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 담백한 웃음 때문인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강형철 감독은 2008년 한국영화계에 등장한 ‘앙팡 테리블’ 중 한 명이다. 그를 비롯해 <추격자>의 나홍진,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등 비슷한 또래인 세 감독은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로 한국영화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강 감독은 <써니>를 선보였다. <써니>는 고교시절 칠공주였던 아줌마가 친구들을 찾아 나서면서 과거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현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 강 감독은 1980년대를 즐거운 한때로 추억하며 영화적 재능을 입증했다.
<써니>는 할리우드 영화 공습 속에서도 2백80만 관객(지난 5월25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동원하며 쾌속질주 중이다.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부모와 자녀들이 손을 잡고 즐겁게 관람하는 문화가 생기고 있다.
강 감독은 남자 감독이 여자, 더군다나 아줌마 이야기를 착안한 데 대해 “우리 엄마도 첫사랑이 있었을 텐데 라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이모가 굉장히 즐거운 소녀시절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모 이름 남희를 따서 시나리오를 쓰다가 오타가 나서 나미로 썼다고 한다. 나미라는 이름을 쓰니 그의 노래를 따올 수 있었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계속 풀어 나갔다.
제목도 ‘칠공주파’ 이름으로 하고 싶었다. 보니엠의 노래 <써니>가 떠오르면서, 의미도 좋고 아이들이 춤추는 모습도 연상돼 지금의 제목으로 정했다.
<써니>는 정치적으로 우울했던 1980년대를 고통이나 회한으로 그린 여느 영화들과 달리 즐거웠던 한때로 표현했다. 전경과 데모대가 충돌하는 데 칠공주파들이 한데 어울려 싸우고 그 배경에 조이의 노래 <터치 바이 터치>가 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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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감독은 “1980년대가 정치적으로 우울했던 시대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는 소녀들의 시대를 그리고 싶었다. 나뭇잎이 굴러도 웃는 소녀들의 시대였으니까”라고 말했다.
<써니>는 패거리들이 우르르 대결하는 장면이라든지, <라붐> 패러디라든지, 의도적으로 촌스러운 표현을 써서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진다. 전작인 <과속스캔들>과도 많이 달라졌다. 강 감독은 “전형적이고 유치한 콘티인 게 맞다”며 “진지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웃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진지한 데 웃긴 모습, 우리들 청춘의 단면이기도 하다.
<과속스캔들>이 강 감독의 입문기라면 <써니>는 강 감독의 자신감이 드러난 작품이다. 막대한 음악저작권을 사전에 기획하고 쓸 수 있었던 것은 <과속스캔들>의 성공 덕이 크다. 그는 2년차 징크스를 두려하기보단 “전편의 성공으로 원하는 것을 더 쉽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강 감독은 <써니>에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한 컷에 담는 원신 원컷을 적절히 사용해 재능을 입증했다. 남용하기보다는 여고 교실 소개 첫 장면이나 과거 비디오 장면 등을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강 감독은 후반부 갈등을 주는 인물의 설명이 부족한 데 대해 “영화 <칼리토>에서 알파치노를 죽이는 게 별 비중 없는 인물이었다”며 “그게 인생의 아이러니고 그런 것을 넣고 싶었는데 ‘아직 공부 할 게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혹도 많았다. 데뷔작 제작사를 떠나 더 좋은 조건으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다.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가장 좋은 관계가 ‘내가 이렇게밖에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해 줬는데 너무 고마워’라고 말하는 관계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것밖에 못해 줘’라고 하는 건 나와 안 맞는다. 토일렛픽쳐스에서 <과속스캔들>로 데뷔 시켜 줬고, 정말 잘해 줬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같이 한 것 뿐이다.”![]()
그의 영화도 착하다. 마지막 장면이 너무 친절하지 않냐는 지적도 있지만, 강 감독은 “‘그 뒤로 그들은 잘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적인 화법으로 끝을 내고 싶었다. 돈으로 다 해결한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있다면 저렇게 쓰면 멋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 돈보다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편 연속 흥행에 성공했기에 강 감독의 주가는 더욱 올라갔다.
각 영화 제작사마다 그를 찾는다. 강형철 감독의 다음 이야기가 어떨지도 궁금해진다.
강 감독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래도 유머가 있는 것을 할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보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종교영화를 만든다면 “끝날 때까지 종교 영화인 줄 모르다가 극장을 나서면서 성경의 어떤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전형화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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